나를 떠난 글



  내가 쓴 글은 언제나 나를 떠난다. 나를 떠나기에 나는 내 글을 더욱 새롭게 읽을 수 있고, 한결 차분히 돌아볼 수 있으며, 무척 신나게 곱씹을 수 있다. 나를 떠난 내 글은 이웃이나 동무를 만나서 새롭게 읽힌다. 좋게든 궂게든 이웃이나 동무는 나를 떠난 글을 돌아보면서 이녁 삶을 새롭게 바라본다. 나는 나를 떠난 글을 붙잡을 수 없는데, 애써 붙잡으려 할 까닭이 없기도 하다. 내가 밭자락에 심은 씨앗을 굳이 캐내야 하는가? 씨앗을 심었으면 잘 자라도록 북돋우면 된다. 줄기가 곧게 오르든 옆으로 눕든 대수롭지 않다. 모든 씨앗은 저마다 다르게 자란다. 나로서는 늘 한 가지이다. 즐거이 심은 씨앗은 이 씨앗이 스스로 잘 자라도록 마음으로 빌어 주면 된다. 내가 심었기에 더 매달리거나 얽히지 말자. 씨앗 스스로 뿌리를 내리도록 지켜보면 될 뿐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씨앗을 새로운 자리에 심는 길에 마음을 쏟을 노릇이지 싶다. 나를 떠나는 씨앗이다. 나를 떠나면서 새롭게 피어나는 씨앗이다. 씨앗을 떠나보내면서 한결 튼튼하고 씩씩하게 거듭나는 내 살림이다. 2017.12.2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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