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는 글쓰기



  배우기는 쉽다. 참말로 배우기란 참 쉽다. 학교를 다녀도 되고, 강좌나 강의를 찾아서 들어도 되며, 책을 읽어도 된다. 그러나 익히기란 쉽지 않다. 익히려면 품을 들이고 뜸을 들여야 한다.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설익고 만다. 설익은밥은 못 먹는다. 설익은밥은 버려야 한다. 생각해 보자. 익은밥 아닌 설익은밥을 먹으면 배앓이를 하고 말아 버려야 한다면, 익은글 아닌 설익은글을 썼다면? 우리 글이 ‘설익은글’이라면? 잘 삭이고 뜸을 들여서 빚은 ‘익은글’을 못 쓴 줄 알아채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다면? 남한테서 듣거나 남이 지은 책을 읽을 적에는 틀림없이 ‘배운’다. 이렇게 배운 여러 가지를 스스로 돌아보고 되새기고 삭이는 길을 지나야 비로소 ‘익히는’ 삶이다. 익히는 길을 걸으면서 하루를 보내고 한 해를 지내면서 차근차근 짚을 수 있을 적에 드디어 말하거나 글쓰는 눈을 뜬다. 밥을 지으면서 제대로 뜸을 들여서 우리 몸을 살찌우는 살림을 깨닫기에 온식구가 밥상맡에 둘러앉으면서 도란도란 웃음꽃을 피운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적에 생각을 제대로 지으면서 제대로 삭이는 마음을 가꾸는 길을 깨닫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서로 상냥하고 따스하게 마주하면서 호호하하 춤추는 몸짓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직 익히지 못했대서 부끄러울 일이란 없다. 아직 설익은글밖에 못 쓴대서 감출 까닭이란 없다. 설익은글인 줄 또렷이 낱낱이 드러내야 어디가 어떻게 설익은가를 우리 스스로 느껴서 가다듬을 수 있다. 설익은글을 자꾸 감추거나 숨기려 하면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 우리 글이 얼마나 설익어서 배앓이(또는 마음앓이)로 나아가는 어정쩡한 겉치레인가를 배울 수 없으니, 익힐 수도 없고, 한 걸음을 기쁘게 내딛을 수도 없다. 2017.12.2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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