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2.10.


어젯밤에는 그냥 잤다. 개수대에 가득한 빈 그릇을 보고서 설거지를 할까 살짝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이 빈 그릇을 쓴 사람 가운데 누구라도 설거지를 하기를 바라 보았다. 새벽이 되어 부엌을 들여다보니 빈 그릇이 그대로. 아무도 안 건드렸구나. 이 빈 그릇을 모조리 그대로 두면 아침에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아이들 그릇이나 수저를 모두 지저분한 채 두어도 아이들은 저희 그릇이나 수저를 설거지할 생각을 안 할까? 설거지를 마치고, 쌀을 씻어서 불리고, 미역을 끊어서 불린다. 해가 갈수록 난날(생일)이라는 날짜가 가물가물하다. 내가 난 날도, 곁님이나 아이들이 난 날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 형이 난 날도, 곁님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이 난 날도, 동무들 난날도 모두 잊는다. 몸을 얻어 이 땅에 나온 날은 하루뿐일 터이나, 우리는 날마다 아침에 새롭게 깨어나기에 난날이란 삼백예순닷새 내내라고 느낀다. 설거지를 한창 할 즈음 새끼 고양이가 운다. 마당을 보니 겨울비가 내린다. 고흥에 살면서 아이들한테 눈을 보여주기 매우 어렵다. 한겨울에도 으레 찬비가 내릴 뿐이다. 마루에 앉아서 아이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고양이밥은 아이들이 손수 주라고 이야기할 생각이다. 눈 아닌 비를 보면서 그림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를 읽어 본다. 비를 보면서 눈 이야기 그림책을 넘긴다. 투박한 그림결이 겨울 곡성 시골마을 눈밭하고 잘 어울리는구나 싶다. 다른 고장에는 눈송이가 날리려나? 다른 고장은 눈잔치를 누리려나? 눈발이 날리는 고장에서는 길고양이도 무척 춥겠구나.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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