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4.11.


1991년에 나온 황지우 시집을 읽어 본다. 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에서 《게 눈속의 연꽃》을 보았다. 2017년이라는 오늘 1991년은 아득한 옛날이다. 1991년은 나로서는 고등학교 1학년. 1991년 눈길로 이 시집을 돌아보자니 그즈음 1991년에는 시를 쓴다는 이들이 한자를 여러모로 부려썼다. 이름이나 글줄에 한자를 안 넣으면 마치 시가 아니라는 듯 여기기도 했다. 2017년에도 시인은 이름이나 글줄에 한자를 안 넣으면 시가 아니라고 여길까? 가볍게 거닐듯 가볍게 이야기를 이루는 시가 있고, 가볍게 떨어지는 가랑잎처럼 슥 읽고 지나치는 시각 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하려고 텔레비전 꼭지를 아무리 꽁꽁 숨겨도 아이들은 바로 찾아내어 텔레비전 앞에서 명상을 하듯이 멍하니 빠져든다고 하는 시가 재미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치우면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안 볼 수 있을 텐데. 집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쓰는 시가 사뭇 달라질 텐데. 1991년으로서는 사내가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거나 아이들 옷가지를 손수 빨래하거나 아이들을 가만가만 재우거나 하는 살림을 짓기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살림을 조금 지어 보았으면 시에도 그런 수수하면서 평화로운 이야기가 더욱 가붓하면서 상냥하게 흐를 만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고흥으로 달리는 시외버스가 춤을 춘다. 시외버스는 110킬러미터 넘게 못 달린다고 들었으나, 오늘 이 시외버스는 130쯤은 밟는 듯하다. 고속도로에서 이 시외버스는 모든 자동차를 앞질러 버린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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