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류동수 옮김 / 양철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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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09



기저귀도 달거리천도 손빨래하는 사내

―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글

 류동수 옮김

 양철북 펴냄, 2016.9.7. 14000원



  지난 2009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플라스틱 행성〉이라는 영화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책으로도 나왔고, 한국에서는 2014년에 한국말로 옮겼습니다. 오늘날 지구에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이 쏟아져나오는가를 다루고, 이 플라스틱을 기업과 정부가 얼마나 많이 쓰는가를 보여주며, 지구에서 얼마나 많은 목숨이 이 플라스틱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죽는가를 밝힌다고 해요.


  오스트리아에서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린 어느 날, 수수하게 살림을 꾸리던 부부가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하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아이들하고 얘기를 나누었대요. ‘영화를 본 일’로 그치지 말자고, ‘우리 집부터 플라스틱을 없애야겠다’고 했대요.


  그런데 막상 ‘우리 집 플라스틱 없애기’를 하자니 밑도 끝도 없었다지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플라스틱을 얼마나 많이 썼는가’를 날마다 새삼스레 깨달았다지요. 게다가 플라스틱을 따지고 보니 ‘자동차’는 몇 가지 쇠붙이를 빼고는 온통 플라스틱이었대요. 자가용을 안 타려 해도,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에도 플라스틱이 엄청나게 쓰이니, ‘플라스틱 없이’ 살자면 자전거만 타거나 두 다리로 걸어야만 했대요.



우리는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믿을 만한 정보를 확보하는 일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을. 즉 어디서 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고, 또 어떤 재료 속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는지 알아낸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만일 우리가 어느 슈퍼마켓에 가서 판매직원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실례지만 이 맥주병 마개는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혹시 무슨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 건 아닌가요?” 판매직원의 뜨악해 하는 표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45∼46쪽)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님이 쓴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양철북,2016)는 글쓴이 말을 따르자면 ‘오스트리아에서 아주 수수한 아줌마 아저씨’가 아이들하고 함께 ‘플라스틱을 어떻게 줄이면서 없애는 살림’을 꾸릴 수 있는가를 적은 책입니다. 자연이나 생태에 좀 눈길을 두기는 했어도 딱히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던 수수한 사람들이요, 여느 회사원이자 여느 살림꾼으로 여느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녁은 처음에는 ‘수수한 집’에서 ‘수수한 살림’을 가꾸면서 어느 만큼 ‘플라스틱 없는 삶’이 될 만한가 궁금했답니다. 얼마든지 잘 할 만했다고 여겼대요. 그런데 막상 플라스틱이 없이 살려고 하니, 저잣마실을 가 보고서 아무것도 못 샀대요. 친환경이라든지 생태를 헤아린다는 제품조차 비닐로 포장을 하고, 생협매장에서도 거의 모두 비닐로 포장을 해 놓았으며, ‘비닐로 포장을 안 한 물건’을 거의 볼 수 없었대요.


  페트병이야 안 쓰기는 쉽지만, 맥주 뚜껑 안쪽에까지 플라스틱이 깃들었다지요. 손전화 기계도 온통 플라스틱이지요. 반찬을 담는 그릇도 플라스틱 아닌 유리나 스텐을 찾기 어려웠고, 애써 유리나 스텐 그릇을 찾아내어도 뚜껑은 온통 플라스틱이었다지요. 셈틀도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볼펜이나 만년필 껍데기까지, 잇솔이나 치약 튜브도, 샴푸를 담는 통도, 비누를 담는 껍데기도, 어디를 보아도 온통 플라스틱투성이였으니, 기막힐 뿐 아니라 코도 입도 눈도 막힐 노릇이었다고 합니다.



슈퍼마켓에서 마주치는 플라스틱의 홍수는, 꼭 그런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법한 채소 및 과일 코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기농 과일이나 채소를 왜 굳이 비닐로 포장해야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73쪽)


시어머니는 느긋하게 반응했다. “네 말이 맞구나. 요새는 정말 쓸데없는 것들이 많기도 하지. 예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잖니. 그때는 포장이 다 뭐냐, 죄다 그냥 팔았지. 그래도 우리는 잘 살았단 말이지.” (93쪽)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쓰신 분처럼 우리 집에서도 ‘플라스틱 안 쓰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셈틀 글판도 플라스틱이고, 아이들하고 흔히 쓰는 연필도 ‘그림이나 무늬’가 들어간 연필은 ‘플라스틱(석유 원료)으로’ 그림이나 무늬가 들어가기 미련이에요. 아이들이 쓰는 공책조차 ‘코팅 없는’ 공책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고, 우리가 흔히 읽는 책도 겉그림(표지)을 플라스틱 코팅을 하기 마련입니다. 책에 깃든 사진이나 그림도 ‘플라스틱(석유 계열) 잉크’로 찍기 마련이지요.


  이 책을 쓰신 분은 ‘플라스틱 안 쓰는 살림’을 꾸리려 하면서 적어도 한 가지는 안 할 수 있어서 한숨을 돌려요. 무엇인가 하면 ‘종이기저귀’를 안 써도 되기 때문입니다. 세 아이가 있으나 세 아이 모두 기저귀를 떼었다고 해요.


  아하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우리 살림을 돌아봅니다. 나는 우리 집 두 아이를 오로지 천기저귀로 키웠습니다. 천기저귀를 쓰신 분은 알 텐데, 천기저귀로 아이들 똥오줌을 가리려면 돌이 될 무렵까지 날마다 서른∼마흔 장을 갈아야 합니다. 이 말은 날마다 서른∼마흔 장을 손빨래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아기만 천기저귀를 대면 될까요? 아니지요. 아기를 낳은 어머니도 달거리대(생리대)를 화학종이 아닌 천으로 써야지요. 아기 오줌기저귀뿐 아니라 어른 달거리천도 ‘화학소재 종이’가 아닌 ‘천’으로 써야 몸을 아끼는 길이 되니까요.


  나는 지난 열 해 동안 이런 손빨래를 열 해 즈음 해 왔습니다. 틀림없이 손이 제법 가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손빨래를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살림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느껴요.



기존 제품을 ‘대체’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절약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것이다. 절약 가능성은 정말 과감히 대폭 줄이거나 아예 없앨 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232쪽)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상품은 너무 많은데 품질은 너무 시원찮다. 하지만 더 주된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너무 많이, 너무 값싸게 옷을 사는 건 아닐까. (280쪽)



  적잖은 사람들은 우리 살림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되묻습니다. 우리라고 플라스틱이 아예 없는 살림은 아닙니다만, 줄이거나 안 쓰거나 없애려 하면 얼마든지 줄이거나 안 쓰거나 없앨 수 있어요. 기저귀도 달거리천도 ‘아버지(사내)’가 손수 빨래를 해서 말리고 개며 살림을 가꿀 수 있으면 집안이 더욱 넉넉하면서 평화로울 만해요.


  집안이 넉넉하면서 평화로울 수 있으면, 마을살이도 넉넉하면서 평화로운 길로 갈 테고, 나아가 나라살림도 달라질 만하리라 느껴요. 그러니까 이 나라 ‘아버지(사내)’들은 아기 기저귀하고 곁님(가시내) 달거리천을 손수 조물조물 빨래하고 삶으면서 ‘살림짓기’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이럴 때에 비로소 평화와 평등이 무엇이요 어떻게 이루는가를 몸으로 깨달을 테니까요.


  우리 집에서는 설거지나 빨래를 할 적에 비누나 세제를 안 씁니다. 이엠발효액을 씁니다. 이엠발효액도 집에서 손수 마련합니다. ‘비닐 아닌 종이에 담긴 세제나 비누’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스스로 지어서 쓰면 ‘종이 포장 물건’을 애써 안 찾아도 됩니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는 수수한 집안에서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한 다짐을 이루기가 얼마나 까마득하면서 어느 모로는 재미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은, 이 책을 쓴 분이 ‘집에서 손수 짓는 살림’까지 말하지는 못해요. 우리가 플라스틱 무덤에 둘러싸이는 까닭은 집에서 손수 짓는 살림하고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밥도 옷도 집도 집에서 스스로 지을 수 있다면 플라스틱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알맞게 쓰면 좋을 자리’에는 알맞게 쓰면서 더욱 즐거운 살림이 될 만합니다.


  한 가지를 덧붙여 본다면, 학교나 사회에서 성교육을 할 적에 ‘성’을 넘어서 ‘살림’도 함께 가르쳐야지 싶어요. 아기를 낳고 집일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내와 가시내 모두 기저귀와 달거리천을 손수 마련해서 손수 빨래하도록 가르치고 이끌 수 있으면 ‘플라스틱 말썽’뿐 아니라 ‘즐거이 짓는 삶’을 한결 깊고 넓게 돌아볼 만하지 싶습니다. 2016.10.3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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