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처벌의 나날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42
이승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노래하는 말 250



벽을 헐어 다리를 놓고 싶어 노래해요

― 감시와 처벌의 나날

 이승하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6.5.16. 8000원



  시집 《감시와 처벌의 나날》(실천문학사,2016)을 읽습니다. 2016년에 나온 시집은 이름부터 “감시와 처벌” 이야기를 드러냅니다. 2010년대에서 2020년대로 흐르는 오늘날은 1960∼70년대처럼, 또는 1980∼90년대처럼 사람들을 무시무시하게 짓누르거나 다그치지는 않는다고 할 만합니다. 언뜻 보면 평화로우면서 민주가 흐르고 자유롭기도 한 사회라고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물대포에 맞아서 죽는 사람이 있으며, 삶터를 빼앗기면서 죽는 사람이 있고, 고단한 삶을 이기지 못해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벽 저쪽에 있는 자들의 울음을 / 벽 이쪽에 있는 우리는 / 들을 수 없다 (벽)


닭들이 철망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 세상 궁금하다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다 / 층층이 실려 있는 수많은 닭 / 죽으러 가는 중인지도 모른 채 / 하늘 올려다보는 닭 땅 내려다보는 닭 / 옆 차선 내 얼굴도 보고 / 도리도리 까닥까닥 고갯짓이 재미있다 (아우슈비츠 행 열차)



  시집 《감시와 처벌의 나날》을 쓴 이승하 님은 벽 저쪽하고 이쪽 이야기를 적습니다. 벽 저쪽에서 우는 이들이 있는데, 벽 이쪽에 있는 이들은 그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가 될 텐데, 벽 이쪽에 있는 이들이 하는 말을 벽 저쪽에 있는 이들은 못 듣겠지요. 벽 저쪽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를 벽 이쪽에 있는 사람은 도무지 모를 테고요. 거꾸로 벽 이쪽에 사는 사람들이 짓는 살림을 벽 저쪽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도 모를 만해요.


  죽음으로 가는 줄 모르는 채 철망이 가득한 짐차에 실리면서 고개를 내밀며 바깥을 구경하는 닭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철망이 가득한 짐차조차 타 보지 못한 채, 햇볕도 햇빛도 햇살도 한 번 누려 보지 못한 채 알만 낳다가 죽는 닭도 있어요. 알에서 깨어난 지 두어 달밖에 안 되지만 곧장 죽음으로 날아가서 사람들 밥상에 오르는 닭도 있지요.



아무도 구경 오지 않는 썰렁한 시화전 / 작품들 강당 한 구석에 어색하게 서 있다 / 어디로 갈까 어디에 처박혀 있다 어떻게 버려질까 // 그래도 꿈이 있구나 바리스타가 되고 쉐프가 되고 / 그래, 사랑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구나 (소년원에 가서 시화전을 보다)



  닭장에 갇힌 채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 닭하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우리들 삶은 얼마나 다르거나 같다고 할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2020년대를 바라보는 오늘날 한국 사회는 참말로 ‘감시’가 없으며 ‘처벌’이 없다고 할 만한가 하고 돌아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가 물결이 치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여길 만할까 궁금합니다.


  시인은 묻고 또 묻습니다. 이러다가 시인은 그예 혼잣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벽 저쪽하고 벽 이쪽이 서로 막혔기 때문이에요. 저쪽하고 이쪽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저쪽도 이쪽도 없이 서로 마음껏 오가거나 넘나들면서 어깨동무하는 다리가 놓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혼잣말을 하듯이 시인 한 사람이 시를 적습니다.


  사랑하고 싶은 아이들 꿈을 옮겨서 적습니다. 요리사도 되고 커피도 내려 보고 싶은 아이들 꿈을 듣고서 가만히 시 한 줄로 옮겨서 적습니다. 그리고 시인네 누이 이야기를 조용히 적습니다.



내 사랑 내 자랑아 돌아가보렴 / 어린 시절 우리는 만화가였다 / 재미있는 것뿐인 세상 / 구름을 보고 있으면 구름으로 변하는 세상/ 달을 보고 있으면 달을 따라 흘러가는 세상 / 세상은 그때, / 눈물 속에서도 아름다웠다 (누이의 초상 2)



  벽을 헐어 다리를 놓고 싶은 시인은 중앙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일한다고 합니다. 이녁이 2016년에 선보인 시집은 2016년 가을에 천상병귀천문학대상을 받는다고 합니다.


  눈물 속에서도 아름다웠다는 누이를 그리는 시 한 줄은 벽이 아닌 다리를 꿈꿉니다. 그지없이 착한 눈망울로 오늘도 밥 한 그릇을 고이 받는 누이를 바라보는 시 두 줄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숨결로 거듭날 수 있는 꿈길을 노래하려고 합니다.



때 되어 밥 주면 밥을 먹고 / 때 되어 약 주면 약을 먹고 / 한없이 선량해진 누이 /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으니 /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니 / 네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병동은 천국인가 (별유천지비인간)



  벽을 높이 올린들 느긋하지 않습니다. 벽을 높이 올린 다음에 병조각을 촘촘히 박는들 걱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병조각 벽으로도 모자라 경호원을 두거나 보안시설을 놓는다 해서 근심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총을 갖추고 탱크를 두며 미사일을 거머쥔다고 해서 평화로울 수 없어요.


  들에서 일하는 시골지기는 맨몸에 맨발이기 일쑤입니다. 들에서 일하는 시골지기는 낫을 쥐어 풀을 벨지언정 총을 들어 누구를 쏠 일이 없습니다. 이 가을에 들에서 나락을 베는 시골지기는 아무런 무기가 없이, 아니 오로지 넉넉한 마음으로 즐거운 가을걷이를 꿈꾸면서 싱그러운 가을바람을 쐽니다.


  시골에는 군대가 덧없어요. 논이나 밭을 지키는 군대란 없어요. 서울이나 부산을 지킨다는 군대이고, 청와대나 핵발전소를 지킨다는 군대이지요. 시골 논밭에 보안시설을 세우는 시골사람은 없어요. 햇볕이 드나들고 바람이 드나들며 풀벌레하고 멧새가 홀가분하게 드나드는 들이요 시골이요 마을입니다. 이곳은 전쟁무기 없이 언제나 너그러우면서 평화롭습니다.



세상의 모든 길은 지금, 차단되어 있다 / 세상의 구둣발 소리는 모두 / 미행하는 이의 구둣발 소리 같다고 // 지금, 세상의 하고많은 눈이 / 그대 그림자를 뒤쫓고 있다 (탈옥수의 하루)



  작은 시인 한 사람이 노래하는 ‘다리 놓기’는 바로 시골사람다운 시골스러운 꿈이리라 생각해요. 감시와 처벌로 그악스럽게 억누르는 거짓스러운 평화가 아니라, 사랑과 웃음으로 어깨동무하면서 노래할 수 있는 참다운 평화를 바라는 꿈이 시 한 줄로 태어나지 싶어요.


  슬프게 죽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기에 시를 씁니다. 기쁘게 노래하는 이웃하고 손을 잡고 싶어서 시를 읽습니다. 안타깝게 죽는 사람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시를 씁니다.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신나는 나라를 꿈꾸면서 시를 읽습니다. 2016.10.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