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사람들 눈빛사진가선 18
오상조 지음 / 눈빛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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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40



사진이 ‘기록’을 넘을 수 있다면

― 남도 사람들

 오상조 사진

 눈빛 펴냄, 2015.11.20. 12000원



  예나 이제나 시골에서는 일찌감치 하루를 엽니다. 다만 예나 이제나 시계를 보면서 하루를 열지 않아요. 몸이 저절로 움직이면서 하루를 열고, 몸에 기운이 다하면 하루를 닫습니다. 바쁜 일철이든 한갓진 철이든 새벽 서너 시 무렵이면 시골집마다 복닥이는 소리가 마을에 퍼집니다. 닭도 울고 개도 짖고 소도 울지요. 할매와 할배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리고, 아직 풀벌레 밤노래가 고즈넉하며, 일찍부터 날아다니는 멧새도 노래합니다.


  새벽 서너 시라든지 너덧 시는 시골에서는 그냥그냥 모든 집이 조용히 일어나서 하루 일을 벌이는 때입니다. 도시에서는 새벽 서너 시부터 하루를 여는 집은 드물리라 느껴요. 도시에서 하루를 일찍 연다고 해도 대여섯 시쯤 되겠지요. 하루를 일찍 여는 시골이기에 하루를 일찍 닫지만, 하루를 느즈막하게 여는 도시이기에 하루를 늦게까지 닫지 않는 도시가 될 테고요.


  시골이라 해도 모든 시골이 같지 않으니, 어느 시골은 그야말로 자동차 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어느 시골은 자동차가 꽤 많습니다. 그래도 오늘날 한국에서 시골마다 거의 비슷하거나 같은 모습은 몇 가지 있어요. 첫째, 아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둘째, 나이 일흔을 넘긴 분들이 마을을 이룹니다. 셋째, 아이와 젊은이가 시골에 거의 없기에 시골일을 물려받을 일손이 없고, 이 흐름은 더 많은 농약과 기계에 기대는 농업으로 나아갑니다.


  홰를 치는 소리를 들으며 부엌에서 새벽일을 하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비록 오늘날 시골에 아이들이나 젊은이가 모조리 빠져나갔다고 하더라도 씩씩하게 남은 이웃이 있고, 기운차게 시골살이를 꿈꾸며 새롭게 찾아오는 이웃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나가는 사람이 시골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아직 더 많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어도 시골사람이 되겠다는 뜻을 품는 이웃이 차츰 늘어납니다.


  지난날 새마을운동은 시골사람이 도시로 빠져나가도록 북돋았고, 아직 시골에는 마을 어귀나 읍내나 길가에 새마을 깃발이 펄럭이는데, 이 흐름을 거스르려는 손길이 조금씩 퍼집니다.



이 책의 사진들 대부분 1970∼80년대에 촬영한 것이다. 이때는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개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던 시기였다. 이른 새벽부터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확성기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되곤 하였다. 이 시기부터 이 땅을 지켰던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로 떠나면서 도농 간의 격차가 심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아담한 초가지붕과 아름답던 돌담들도 헐리며 수많은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때 수시로 고향 언저리 여기저기를 찾아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진학도였다. 애경사나 명절 때 친인척들 이웃사람들의 기념사진, 가을 행사,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 평범한 일상 등을 기록하였다. (3쪽)



  오상조 님이 1970∼80년대에 ‘남도’를 담았다고 하는 사진책 《남도 사람들》(눈빛,2015)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에 담긴 모습은 ‘지나간 모습’입니다. 아스라이 멀어진 모습입니다. 1970년대에도 늙은 할매와 할배가 이 사진책에 나옵니다. 1980년대에 아직 시골에서 살던 어린이가 이 사진책에 나와요.


  사진책은 흑백이라 더욱 예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어쩌면 이 땅에 이 같은 모습은 너무 오랜 옛날 일이라는 느낌이 들고, 더는 붙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되찾을 수 없겠네 싶은 느낌까지 들어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도 사람들 사진책을 읽다가 문득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1970∼80년대 남도 시골사람하고 시골마을을 흑백사진이 아닌 칼라사진으로 담았다면 어떤 느낌이 되었을까 하고요. 낡고 스러지고 아련하고 잊혀지고 사라지는 옛 모습을 남기려고 하는 흑백사진이 아니라, 1970년대에는 1970년대대로 즐겁게 일하며 사는 모습하고 1980년대에는 1980년대대로 기쁘게 놀며 어우러지는 모습을 칼라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으면 어떤 이야기가 남았을까 하고요.


  전남 광주에서 열 몇 해째 나오는 잡지 〈전라도닷컴〉은 시골마을하고 시골사람을 늘 칼라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칼라사진이어도 시골은 시골이기에 돌담이나 멧논이나 고샅은 그야말로 오래된 자취가 물씬 풍겨요. 그렇지만 아득히 먼 옛날 옛적 모습이 아닌, 바로 오늘 우리 곁에서 살아서 펄떡이는 이웃 숨결을 살필 만합니다.


  사진책 《남도 사람들》은 ‘그리운 옛 시골 이웃’을 잘 보여줍니다. 그무렵에 이렇게 지냈지 하는 그림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리운 그무렵’으로만 그치기 때문에, ‘오늘 이 시골에는 어떤 마을이 어떤 사람들 손길로 새롭게 흐르는가’ 하는 대목까지는 새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200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2020년대에도 틀림없이 남도 시골마을에 깃들어 남도 시골사람으로 오순도순 어우러지는 웃음꽃하고 눈물나무가 있어요. 새마을운동 같은 ‘새마을’이 아닌, 조촐한 시골잔치와 시골일과 시골놀이를 더 바라보면서, ‘기록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되는 사진이 나올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9.2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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