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는 분홍고래 9
호르헤 루한 글, 치아라 카레르 그림, 김정하 옮김 / 분홍고래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67



바위야, 넌 예전에 멋진 하늘이었구나

― 나는 무엇이었을까

 호르헤 루한 글

 치아라 카레르 그림

 김정하 옮김

 분홍고래 펴냄, 2016.6.15. 12000원



  문득 아이한테 넌지시 물어봅니다. “사랑하는 아이야, 너는 예전에 무엇이었을까?” 아이가 따로 생각할 틈이 없이 슬쩍 묻는데, 거꾸로 내가 물음을 받기도 합니다. 또는 내가 나 스스로 묻지요. 길을 걷다가, 밭에서 함께 씨앗을 심다가, 자전거를 달리다가, 골짜기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합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툭툭 말마디를 내뱉습니다. “나는 돌이었어. 이 골짜기에 흐르는 조약돌.” “나는 구름이었어. 어디이든 맘대로 돌아다녔어.” “나는 제비였지. 먼 바다를 신나게 가로질러서 여기에 왔어.” “나는 바람이었어. 토끼 몸으로도 들어갔다가 곰 몸으로도 들어갔다가 사람 몸으로도 드나들던 바람이었어.”


  우리는 예전에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예전에 ‘똑같은 사람’이었을까요? 예전에도 똑같은 사람으로 살았다면, 노예나 임금이나 장사꾼이나 농사꾼으로 산 적이 있었을까요?



“바위가 되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을까?” 바위가 루시아에게 물었어. “너는 바다의 섬들이었어.” 루시아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어. (6∼8쪽)



  호르헤 루한 님이 글을 쓰고, 치아라 카레르 님이 그림을 그린 《나는 무엇이었을까》(분홍고래,2016)를 천천히 읽고 다시 읽어 봅니다. 거듭거듭 그림결을 느끼면서 새롭게 읽고,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새삼스레 읽어 봅니다.


  이 그림책에는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아이들입니다. 둘째는 바위입니다. 아이들은 으레 바위 앞으로 지나가기를 즐깁니다. 바위는 바위 앞을 지나가는 아이들한테 꼬박꼬박 똑같은 말을 묻는데, 거의 모든 아이들은 바위하고 상냥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에 스스럼없이 지나갑니다. 이와 달리 꼭 한 아이만 바위한테 퉁명하게 말을 내쏠 뿐 아니라, 이 아이만 바위 앞을 지나가지 못해요.



“바위가 되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을까?” 바위가 나에게 물었어. “너는 하늘이었어.” 나는 곧바로 대답했어. “불타는 하늘.” “통과!” 바위가 한쪽으로 움직이면서 나에게 말했어.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아. 오히려 틀리는 게 어렵지. (16∼18쪽)



  어릴 적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나는 어릴 적에 동무들하고 ‘바위놀이’를 한 적이 있어요. 어쩌면 ‘피라밋놀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한 사람이 바위처럼 우뚝 서서 꼼짝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바위처럼 꼼짝하지 않는 사람 앞으로 다가옵니다. 바위가 묻지요. 수수께끼를 내거나 뭔가를 물어요. 이때에 바위 마음에 들도록 말하면 지나가도록 하고, 바위 마음에 안 들면 못 지나가요.


  그림책 《나는 무엇이었을까》에 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생각을 밝히면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바위가 오늘 이곳에서는 ‘그냥 바위’로 있지만, 예전에 이 바위는 바다에 뜬 섬이기도 했고, 바람이기도 했고, 생쥐 몸에 달린 한쪽 다리이기도 했고, 하늘이기도 했다고 말해요. 바위는 아이들이 들려주는 말이 모두 즐겁고 반갑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아이는 언제나 바위 앞을 즐겁게 지나가요. 아이들은 늘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바위는 늘 다른 ‘옛 삶’을 되새기지요.



페드로의 발소리가 들렸어. 그 소리는 고집스럽기까지 해. “바위가 되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을까?” 바위가 물었어. “바위!” 페드로가 소리쳤어. “전에도 너한테 말했잖아. 너는 계속 바위였다고!” (22쪽)



  오늘 이곳에서는 ‘그냥 바위’인 바위한테 ‘넌 예전에도 늘 바위일 뿐이었어’ 하고 외치는 아이가 있어요. 이 아이는 바위 앞을 지나가지 못합니다. 이 아이는 투정을 부리고 악을 쓰지만 바위는 꿈쩍을 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왜 바위는 이 아이만 못 지나가게 막을까요? 그리고 이 아이는 왜 바위가 예나 이제나 늘 그냥 바위이기만 하다고 여길까요?


  그림책 《나는 무엇이었을까》를 덮고서 우리 집 아이들한테 물어봅니다. 자, 우리 어여쁜 아이들아, 너희는 예전에도 그냥 아이였을까? 너희는 앞으로도 그냥 아이일까? 우리는 오늘 이 모습 그대로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하나도 안 바뀐 모습으로 있을까?


  아이는 어버이와 어른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아 천천히 자라 시나브로 철이 들면서 어른이 됩니다. 어른은 아이를 낳아 돌보는 동안 어버이라는 새로운 몸을 입고, 이윽고 슬기로운 꿈을 사랑스레 가꾸는 살림을 짓는 길을 새삼스레 익힙니다.


  한 자리에 머무는 사람은 없어요. 늘 한 걸음씩 새로운 자리로 나아갑니다. 한 가지 모습에 얽매이는 사람은 없어요. 늘 한 가지씩 새롭게 배우면서 아름답게 거듭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걸음씩 새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넌 예나 이제나 똑같이 그냥 바위일 뿐이야!’ 하는 생각만 하고 만다면, 스스로 새롭게 생각을 꽃피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때에 우리는 어떤 숨결이 될까요?


  “나는 무엇이었을까?”라고 하는 짧막한 물음 하나를 둘러싸고 수많은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어른으로서 내 모습을 되새기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모습을 새롭게 그립니다. 오늘 내가 좀 잘 한다 싶은 모습은 더욱 슬기롭고 훌륭하게 잘 하도록 가다듬는 앞날을 그립니다. 오늘 내가 좀 못 한다 싶은 모습은 차근차근 갈고닦거나 갈무리하면서 야무지고 알차게 거듭나는 꿈 같은 새날을 그립니다. 2016.7.1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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