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려고 책을 덮다



  여섯 달 남짓이 되어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시를 쓴다. 시외버스를 타는 사이, 시외버스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움직이는 사이, 전철을 기다리는 사이, 수첩을 꺼내어 시를 적어 본다. 처음에는 책을 좀 읽으려 했으나 어느새 머릿속에서 수많은 노래가 어우러지거 얽히고 흐르면서 ‘얘야 책을 덮으렴, 얘야 이 노래를 들으렴’ 하면서 싯말이 자꾸자꾸 흘러넘쳤다. 이리하여 나는 책을 고이 덮고 가방에 넣었다. 한손에 연필을 쥐고 한손으로 수첩을 받치면서 자꾸자꾸 시를 썼다. 서울마실에서 만날 살가운 이웃님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시를 한 자락 쓰고, 또 한 자락, 다시 한 자락, 그야말로 술술 바람이 불듯이 썼다. 시를 쓰려고 책을 덮었다. 노래가 흘러넘쳐서 책을 덮었다. 춤을 추면서 웃고 싶어서 책을 덮었다. 2016.5.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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