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영어는 없었다 - 영어와 프랑스어의 언어 전쟁
김동섭 지음 / 책미래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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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48



영국은 셰익스피어가 ‘새 영어’를 일으켰다면

―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

 김동섭 글

 책미래 펴냄, 2016.3.10. 14000원



  영어로 된 책을 읽고, 영어로 된 노래를 듣습니다. 요즈음 들어서 아이들하고 함께 영어로 놀이를 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즐길 영화를 살피다 보면 한국에 있는 극장에 걸리지 못한 영화가 무척 많아서, 이런 영화는 영어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말로 나오지 않은 재미나며 훌륭한 그림책도 많아요. 한국말로 나온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보다가도 번역이 그리 알맞지 않다고 느끼기도 하기에, 아예 영어로 된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따로 장만해서 읽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저절로 영어를 새로 배우는 어버이가 되면서, 아이들한테도 영어를 즐거운 놀이로 가르칩니다. 무엇보다 신나는 가락하고 섞어서 노래를 부르면 퍽 재미있습니다.



(1066년) 윌리엄의 영국 정복은 문화적으로는 대륙의 프랑스 문화의 유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정치적으로는 노르망디의 법률과 행정 제도가 영국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45쪽)


윌리엄 정복 이후 1399년 리처드 2세가 왕위에서 내려올 때까지 프랑스어는 333년 동안 왕의 모국어였고, 헨리 2세(1152년)부터 헨리 6세(1445년)까지 300년 동안 모든 영국의 왕은 프랑스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다. (57쪽)



  영어로 된 말을 듣다 보면 소릿값을 처음부터 알아차리기 어려운 낱말이 꽤 있습니다. 영어에도 사투리가 있으니 표준 영어가 아니라면 말소리도 다르기 마련일 테지만, 표준 영어에서도 소릿값은 글꼴하고 사뭇 다르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 ‘글꼴하고 소릿값이 다를까’ 하는 수수께끼를 잘 풀지 못한 채, 이 낱말은 그저 이렇게 소리내야 하는구나 하고만 여겼습니다.


  김동섭 님이 쓴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책미래,2016)를 읽으면서 영어하고 얽힌 실타래를 찬찬히 돌아봅니다. 《영어의 탄생》(책과함께,2005)이라는 책을 읽으며 실타래를 조금씩 풀었고,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를 읽으면서 이 실타래를 조금 더 환하게 풀어 봅니다.


  영어는 처음부터 영어였을 테지만, 이웃에서 여러 나라가 영국이라는 곳으로 쳐들어오면서 수많은 ‘다른 말’이 들어왔다고 해요. 영국이라는 곳으로 쳐들어온 ‘숱한 다른 겨레’는 ‘다른 겨레가 쓰던 말’을 영어에 남겼고, 이러한 흐름은 ‘프랑스말을 쓰는 겨레’가 11세기부터 수백 해에 이르도록 그곳을 정치 권력으로서 다스리면서 영어는 더욱 크게 달라졌다고 합니다.



노르만 정복 이후 노르만 방언을 통해 영어에 들어온 새로운 철자는 x, q, z였는데, 이 철자들은 고대 프랑스어에서 사용되던 철자였다. (66쪽)


영국 왕실에 시집을 온 프랑스 공주들은 많은 식솔을 데리고 도버 해협을 건넜다. 그중에는 요리사, 재단사, 유모, 침모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프랑스 하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대개 영국 사회에서 상류 계층의 문화적 활동에 관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모국어, 즉 프랑스어 어휘들이 자연스럽게 영어에 들어갔을 것이다. (81쪽)



  1066년 뒤로 수백 해에 걸쳐서 영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말이 두루 쓰였다고 합니다. 첫째, 이 나라를 이루는 바탕이 되는 여느 사람들, 이른바 땅을 갈고 시골살이를 누리는 수수한 사람들은 ‘그냥 영어’를 씁니다. 둘째, 이 나라에서 정치 권력이나 문화 권력을 거머쥔 사람들은 ‘프랑스말’을 씁니다. 셋째, 행정이나 종교나 법에서는 ‘라틴말’을 씁니다.


  이러한 얼거리가 무척 오래도록 이어졌다고 하는 영국이에요. 이러는 동안 수많은 프랑스말이 영어로 흘러들었다고 합니다. 영국하고 프랑스 사이에 백년전쟁이 벌어지면서 이 흐름은 수그러들었다는데, 백년전쟁이 끝난 뒤 영국이 바닷길을 뚫어 다른 여러 나라로 손길을 뻗는 동안, 이제는 ‘또 다른 새로운 나라와 겨레’에서 쓰는 말을 영어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영국은 백년전쟁을 통하여 귀중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자신들은 브리튼 섬의 영국인이고, 자신들의 모국어가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159쪽)


셰익스피어와 초서는 영어를 문학어로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초서는 수백 년 간의 프랑스 지배에서 영어를 독자적인 문학 언어로 독립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반면, 셰익스피어는 새로운 영어 어휘와 표현을 통해 ‘셰익스피어 영어’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164쪽)



  바깥으로 본다면, 영어는 어떤 말이든 저희 품으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은 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도 그럴 까닭이 ‘영국에 없는 삶이나 살림’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영국에 없는 말’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나 겨레에서 쓰는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지만 영국 영어는 ‘다른 나라 말’이나 ‘다른 겨레 말’을 무턱대고 받아들이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셰익스피어 영어’가 일어났듯이, 영국사람 스스로 ‘새로운 영어’를 지어서 ‘새로운 삶과 살림’으로 나아가는 길도 씩씩하게 열었다고 해요. 셰익스피어가 나타나기 앞서는 다른 나라나 겨레에서 ‘다른 말’을 곧이곧대로 영어로 받아들여서 썼을 뿐이라 한다면, 셰익스피어가 나타난 뒤에는 ‘새로운 삶과 살림’을 바로 ‘영어로 스스로 짓는 슬기로운 생각’을 빛냈다고 합니다.



영어 어휘 중에서 빈도수가 가장 높은 단어들은 대부분 영어 고유어에서 유래한 말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빈도수가 적을수록 프랑스어의 비율은 거의 절반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용자도 일상생활에서는 대부분 고유어들을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전문 분야, 특히 학문과 예술 등의 전문 분야에서는 한자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188쪽)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를 쓴 김동섭 님은 책 끝자락에서 한국말 이야기를 살짝 들려줍니다. 한국에서 한국사람은 ‘여느 말(일반 의사소통)’은 수수한 한국말로 쓰지만, 문화나 정치나 학문이나 교육이나 종교나 …… 이런저런 자리로 가면 으레 한자말로 쓴다고 이야기해요.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아이들한테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 어버이는 드물거나 없다시피 해요. 그런데, ‘우리 집 아이’가 아닌 ‘학교에 있는 학생’ 앞에만 서더라도 말이 달라지지요. 회사에서 말이 달라지고, 가게에서도 말이 달라져요. 그나마 오래된 저잣거리에서는 수수한 한국말을 쓴다고 할 테지만, 경제나 유통이나 대형할인마트 같은 곳에서는 수수한 한국말이 사라집니다.


  영국에는 ‘셰익스피어 영어’가 있다고 하지만, 한국에는 ‘어떤 한국말’이 있다고 할 만할까요? ‘박경리 한국말’이나 ‘홍명희 한국말’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셰익스피어 영어’는 문학에서뿐 아니라 여느 삶자리에서도 두루 쓰는 영어로 퍼진다고 하는데, ‘한국 문학에 나오는 말’은 ‘문학말’을 넘어서 ‘삶말’이나 ‘살림말’로도 퍼진다고 할 만할까요?


  다른 문화나 사회를 일컫는 모든 바깥말을 ‘영국에서는 영어’로만 담아내거나 ‘한국에서는 한국말’로만 담아내야 할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바깥말도 즐겁게 받아들여서 재미나게 쓸 만합니다. 다만, 스스로 삶과 살림을 가꾸는 자리에서는 나 스스로 새로운 말을 슬기롭게 짓는 생각을 함께 펼칠 수 있어야지 싶어요.


  가만히 보면, 영국 정치를 이루던 이들은 영어가 아닌 프랑스말이나 라틴말을 오랫동안 썼다고 하더라도, 나중에는 ‘수수한 영국사람’이 쓰던 영어로 돌아갑니다. 한국 정치를 이루거나 한국 문화나 학문을 이루는 이들은 오늘날 어떤 말을 쓸까요? 이들은 한국에서 앞으로 어떤 말로 나아갈까요? 2016.3.3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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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a 2016-03-3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도 진화하고 변천한다는데 그렇군요. 괜히 세익스피어가 아니네요. 영국이 세익스피어를 높이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네요. 좋은 소개 고맙습니다. ^^

숲노래 2016-03-31 09:57   좋아요 0 | URL
한국말도 아름답게 거듭나면서 나아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에요.
한국에서도 문학에서만 빛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널리 사랑하면서 살림을 북돋울 말이 태어난다면 참 아름답겠지요.
이 책을 pada 님한테 이어 주는 징검다리 구실을 했다면
제가 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