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서 그림책 읽기



  예쁜 그림책은 우리 가슴속에 있는 고운 빛을 살려 주는구나 싶어요. 어린이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가슴속에서 고운 빛이 자라는구나 하고 문득 느끼거나 시나브로 깨달으리라 봅니다. 어른도 그림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에서 고운 숨결이 샘솟는구나 하고 문득 알아차리거나 시나브로 배우리라 봅니다.


  《와일드 보이》라는 그림책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숲에서 숲에서 태어난 뒤로 혼자 살아가는데, 이 숲아이는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숲에서는 외로울 틈이 없기도 하지만 날마다 새로운 일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배고픔을 알다가 배부른 기쁨을 배웁니다. 무서움을 느끼다가 무서움을 떨치는 길을 스스로 배웁니다. 이러던 아이는 그만 사냥꾼한테 사로잡혀서 도시에서 실험 대상이 되었고, 실험 가치가 없다고 내팽개쳐지면서 더욱 슬픈 나날을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이 숲아이를 건사한 과학자 한 사람이 숲아이를 다른 과학자하고 달리 따스하게 보살피려고 했다는데, 막상 그 과학자도 이 아이를 지켜본 실험보고서를 쓸 뿐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빚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사람과 삶과 아이’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이를 어떻게 보살필 마음일까요? 과학자 자리에 서는 어른이라면 숲아이가 되든 도시아이가 되든 실험 대상이나 연구 대상으로만 바라보아도 될까요? 회사나 공장이나 일터에서 바쁘기 때문에 어버이 자리에 선 어른들은 집밖에서 돈 버는 일에만 바빠도 될까요?


  나라에서는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라에서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어도 우리는 우리 보금자리에서 우리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꿈으로 가르치며 노래로 즐겁게 놀 수 있는 살림이어야지 싶어요. 무엇보다도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가르칠 수 있는 삶을 지어야지 싶습니다.


  어른으로서 그림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우리 아이들하고 읽을 그림책을 ‘전문가 추천’에 맡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아이들하고 읽을 그림책이니 어른이자 어버이인 내가 스스로 하나하나 챙기고 살피고 읽은 뒤에 아이한테 건넵니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밥으로 삼을 그림책이니 어른이자 어버이인 내가 손수 찬찬히 돌아보고 따지고 느낀 뒤에 아이하고 함께 누립니다. 그리고, 그림책을 때때로 덮은 뒤에 종이랑 연필이랑 크레파스를 꺼내어 아이하고 함께 그림을 그리지요. 우리 살림을 북돋울 우리 그림을 그려요. 아이하고 어버이가 함께 지을 삶을 꿈꾸면서 우리 그림을 새롭게 그립니다.


  어른으로서 그림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배우도록 이끄는 즐거운 그림책을 어른으로서 꼼꼼히 살핍니다. 아이들이 따사로운 살림을 가꾸도록 돕는 신나는 그림책을 어른으로서 바지런히 헤아립니다. 2016.3.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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