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거즐튼무아 알맹이 그림책 30
마츠오카 쿄오코 글, 오오코소 레이코 그림, 송영숙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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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3



우리는 늘 “아무튼 즐거워” 노래하지요

― 워거즐튼무아

 마츠오카 쿄오코 글

 오오코소 레이코 그림

 송영숙 옮김

 바람의아이들 펴냄, 2013.5.20. 9000원



  아홉 살이 된 큰아이가 저녁에 일기를 씁니다. 큰아이한테 ‘일기’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글’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큰아이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로는 마당에서 아버지가 웃몸을 안고서 빙글빙글 돌려 준 놀이입니다. 저랑 동생을 마당에서 갈마들며 빙글빙글 돌려 준 놀이가 오늘 하루 놀이 가운데 가장 크게 남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제는 흙놀이를 한 일이 남길 만한 이야기였다고 적습니다. 이제 하룻밤을 자고 새로운 날이 찾아오면 어떤 이야기를 일기에 적을까요? 오늘이나 어제하고 똑같은 놀이를 누린 이야기를 적을 수 있고, 다르거나 새로운 놀이를 누린 이야기를 적을 수 있겠지요.



땅을 파고 씨앗을 심는 내내, 아줌마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나팔꽃이랑 맛 좋은 수박이 번갈아 가며 떠올랐습니다. ‘나팔꽃일까, 수박일까? 아무튼 즐거운 일이야.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구 말구.’ 하고 아줌마는 생각했습니다. (17쪽)




  마츠오카 쿄오코 님이 글을 쓰고, 오오코소 레이코 님이 그림을 그린 《워거즐튼무아》(바람의아이들,2013)를 읽습니다. ‘워거즐튼무아’는 ‘아무튼 즐거워’를 거꾸로 적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놀이라고 할까요. 말장난일 수 있고요. ‘어싫튼무아’라 하면 ‘아무튼 싫어’일 테고, ‘네밌재튼무아’라 하면 ‘아무튼 재밌네’예요.


  나는 집에서 아이들한테 곧잘 ‘거꾸로 말하기’를 해 봅니다. 그러면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어리둥절해 합니다. 이러다가 큰아이가 먼저 눈치를 채고 ‘아하, 또 뒤집어서 말하네?’ 하면서 웃어요. 이를테면, 나물을 먹을 적에 ‘물나’라 말한다든지, 수박을 먹자고 하면서 ‘박수’ 먹으라 한다든지, 고기를 차린 저녁밥을 ‘밥기고’라 해요.



왕자님도 모르는 것이 있었답니다. 왕자님이 모르는 것은, 성 밖에 사는 왕자님 또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들이지요. 성 밖에서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고 있습니다. 봄이 오고 사과나무에 꽃이 피면, 아이들은 나무 밑에서 술래잡기를 하기도 하고 숨바꼭질을 하기도 합니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은 벌거벗고 시냇물에서 헤엄도 칩니다. 가을에도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어요. 낙엽을 모아서 산처럼 쌓아 놓고 그 가운데로 풀쩍 뛰어들어 낙엽 속에 파묻히는 것이에요. (22쪽)




  아무튼, 《워거즐튼무아》에는 ‘뚱보 아줌마’하고 ‘왕자’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뚱보 아줌마는 어느 날 부엌을 치우다가 묵은 씨앗을 찾아냈고, 이 묵은 씨앗을 밭에 심기로 합니다. 밭을 갈아서 씨앗을 심으려는 뚱보 아줌마를 본 이웃사람은 그 씨앗이 ‘나팔꽃’ 씨앗이라고도 하고, ‘수박’ 씨앗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씨앗을 심고 보니 호박이 나왔다지요.


  뚱보 아줌마는 씨앗을 심은 뒤 푯말을 세웠대요. ‘라몰도지일꽃팔나’, ‘라몰도지일박수’, ‘워거즐튼무아’ 이렇게 세 마디를 적은 푯말이에요. 그러나, 거꾸로 읽으니 이런 말일 뿐, 뚱보 아줌마는 ‘나팔꽃일지도몰라’하고 ‘수박일지도몰라’하고 ‘아무튼즐거워’라 적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나팔꽃 씨앗하고 수박 씨앗을 모를 수 있을까요? 호박 씨앗하고 수박 씨앗은 크기부터 많이 다른데, 이 대목을 모를 수 있을까요? 뭐, 아무튼 모를 수 있겠지요. 이 그림책은 아무튼 이런 줄거리로 흐르니까요.



“이제부터 요리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만, 이것을 먹을 때는 몇 가지 꼭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사옵니다. 우선 이 ‘라몰도지일꽃팔나’이옵니다만,” 하고 아줌마는 첫 번째 호박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먹으려면 바깥에서, 그것도 시냇물가의 풀밭에서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외의 장소에서 먹는다면, 목구멍이 막혀서 죽게 될 것입니다.” (51쪽)




  그림책 《워거즐튼무아》에 나오는 왕자님은 궁궐에서 공부만 해야 합니다. 공부만 하느라 지칩니다. 공부 빼고는 할 수 있는 일도 놀이도 없기에 머리가 아픕니다. 이러던 어느 날 마차를 타고 어느 마을을 지나가다가 뚱보 아줌마가 세운 푯말을 보아요. 왕자님은 푯말에 적힌 글을 거꾸로 읽었기에 ‘라몰도지일꽃팔나’가 뭔 소리인지 알 길이 없지만 무척 재미난 주문이라고 여깁니다. 공부에 공부만 거듭하는 나날이 이어지니 그만 꽝 터지면서 ‘라몰도지일꽃팔나’라든지 ‘라몰도지일박수’ 같은 말을 마구 읊었다고 해요. 이러면서 ‘워거즐튼무아’를 주지 않으면 밥을 굶겠다고 외쳤다고 하는군요.


  궁궐에서 왕자님을 가르치거나 모시는 이들은 어쩔 줄 몰라 하지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요. 이러다가 왕자님이 읊은 말은 ‘어떤 아줌마가 세운 푯말에 적힌 글을 거꾸로 외웠을 뿐’인 줄 알아냅니다. 그러나 차마 그 대목을 왕자님한테 밝히지 못합니다. 이때에 뚱보 아줌마는 좋은 생각을 하나 내놓아요. ‘워거즐튼무아’이든 ‘라몰도지일꽃팔나’이든 모두 ‘여느 호박’일 뿐이지만, 왕자님한테 재미있게 ‘호박 요리’를 베풀어 주자고 생각합니다.



임금님은 “공부는 잘 하고 있었나?” 말씀하시고, 왕자님에게 여러 가지를 질문하셨어요. 그러자 왕자님은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임금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시냇가의 풀밭에는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가 어디에 있으며 물이 흐르는 구멍이 어디에 있을까, 또 성 옆 밀가루 가게의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에는 새끼가 몇 마리가 있는지, 거미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 등의 질문이었지요. 물론 임금님은 그 어떤 질문에도 만족스럽게 대답하지 못했지요. 그러자 왕자님은 자랑스럽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임금님에게 가르쳐 주었답니다. (61쪽)




  뚱보 아줌마는 왕자님한테 호박 요리를 줄 적에 늘 토를 붙입니다. 그냥 먹어서는 안 되고, 냇가에 가서 풀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먹어야 한다고 토를 붙여요. 그리고 혼자 먹으면 안 되고 시골마을 아이들하고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토를 붙입니다. 왕자님 곁에서 심부름을 하는 신하는 이런 토달기, 그러니까 궁궐 바깥에서 햇볕을 쬐면서 ‘워거즐튼무아’를 먹도록 하는 일이 못마땅합니다. 더군다나 뚱보 아줌마는 왕자님한테 입힌 거추장한 옷을 모두 벗긴 뒤 가벼운 차림새가 되어서 ‘왕자님 또래인 시골아이’하고 신나게 뛰놀기를 바라고, 이대로 하도록 북돋웁니다.


  자, 이제부터 왕자님은 어떻게 될까요?


  ‘워거즐튼무아’를 맛나게 먹은 왕자님은 공부가 아닌 놀이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립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또래 아이들하고 뒤섞여서 온갖 놀이를 처음으로 겪으면서 웃습니다. 허옇던 살갗하고 얼굴은 까무잡잡하게 탑니다. 신하들은 이런 일을 몹시 못마땅해 하는데, 공부에 등을 돌릴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실컷 놀면서 ‘모든 짜증과 괴로움’을 풀어낸 왕자님은 온마음을 바쳐서 공부를 해요. 공부만 시킬 적에는 공부가 죽도록 싫었다면, 실컷 놀면서 바깥바람이랑 햇볕을 쐬도록 한 뒤에는 공부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림책 《워거즐튼무아》를 살며시 덮으며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와 푸름이는 얼마나 마음껏 뛰어놀 만할까요?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은 햇볕은커녕 비도 눈도 제대로 맞지 못하면서 입시지옥에서 허덕여야 하지 않나요? 입시지옥을 지나갔어도 어떤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떨어졌느냐에 따라 또 고단한 길이 이어져요.


  아이들은 공부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은 삶을 모르는 채 공부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은 동무나 이웃조차 없이 공부만 해야 할까요? 나팔꽃도 수박꽃도 호박꽃도 모르는 채 공부만 한 아이들이 국회의원이나 판사나 의사가 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동무도 이웃도 없이 ‘궁궐 울타리’에서만 자란 왕자님은 어떤 임금님 노릇을 할까요? 한국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들은 반지하도 옥탑방도 버스삯도 모르기 일쑤였어요. 대통령 자리에 앉은 분들은 어떤 이웃을 두거나 어떤 동무를 사귀면서 어린 나날을 보냈을까요? 아무튼 《워거즐튼무아》라는 그림책을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읽으면서 “아무튼 즐거워”가 온누리에 가득 퍼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434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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