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 짝지, 짝님

  마음에 드는 동무가 짝이 되면 기뻐서 웃음이 나와요. 마음에 안 드는 동무가 짝이 되면? 이때에는 서운하거나 섭섭하거나 싫을까요? 그런데 나하고 짝이 되는 동무는 나를 마음에 든다고 여길 수 있고, 나랑 똑같이 서로 마음에 안 든다고 여길 수 있어요. 내가 누군가를 마음에 안 든다고 여긴다면, 남도 나를 마음에 안 든다고 여기기 마련이랍니다. 둘이나 여럿이 서로 어울릴 적에 다 같이 ‘짝’이라고 해요. 둘이서 짝일 수 있고, 셋이나 넷이서 짝일 수 있어요. 그리고, 둘만 따로 ‘짝’이 되기도 해요. 이때에는 ‘홀짝’이라고 해서, 하나는 홀이고, 둘은 짝이지요. 나랑 너랑 짝이 되면 둘은 ‘짝꿍’인데, ‘짝지’라고도 해요. ‘짝꿍·짝지’는 뜻이나 마음이 매우 잘 맞으면서 가까운 사이를 한결 힘주어서 나타내는 이름이에요.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서로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사이로 거듭나면 ‘짝님’으로 여기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할 수 있어요. 가장 아끼거나 사랑한다고 할 만한 사이라면, 이를테면 ‘너나들이’ 같은 사이가 되면, 서로 고운 ‘님’이 되어요.

+

온누리

  ‘온누리’를 적시는 비가 내립니다. 빗방울은 두릅나무 잎사귀에도 내리고 단풍나무 작은 꽃망울에도 내리며 화살나무 잘디잔 꽃봉오리에도 내립니다. 바람은 온누리 골골샅샅 불어요. 브라질 숲에서 태어난 바람이 너른 바다를 지나고 시베리아를 거쳐서 한국으로 찾아옵니다. 지리산 둘레 작은 마을에서 깨어난 바람이 하늘 높이 떠올라 일본을 거치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작은 섬마다 살몃살몃 깃듭니다. 빗물도 눈송이도 바람도 햇볕도 온누리를 골고루 돌면서 우리 곁에 있어요. 지구라는 별에서 온누리는 서로 이웃으로 지냅니다. ‘온’은 “모든”하고 같은 뜻인 낱말로, 옛날에는 “숫자 100”을 가리키기도 했어요. 아기가 태어나서 백 날이 되거나, 마음에 드는 동무하고 사귀에 백 날이 되면 ‘온날’이 된 셈이에요. ‘온’을 붙여서 ‘온음표’나 ‘온통’이나 ‘온갖’이나 ‘온몸’이나 ‘온마음’ 같은 말을 써요. 그러니까 모든 땀방울을 바치는 ‘온땀’이라든지, 모든 사랑을 쏟는 ‘온사랑’이라든지, 모든 꿈을 싣는 ‘온꿈’ 같은 말을 쓸 수도 있어요. ‘온말’이나 ‘온글’이나 ‘온책’이나 ‘온빛’이나 ‘온넋’이나 ‘온집’이나 ‘온길’이라고 하면 이러한 말마디에는 어떤 뜻이나 느낌이 담길까요?

+

고양이밥

  집에서 개를 키우면 ‘개밥’을 줍니다. 고양이를 키우면 ‘고양이밥’을 줘요. 예부터 사람이 키우던 소한테는 ‘여물’이나 ‘소죽’을 주었어요. 닭한테는 ‘닭모이’를 주어요. 가만히 보면, 닭 같은 날짐승한테 밥(먹을거리)을 줄 적에는 ‘모이’라 해요. 병아리나 비둘기나 참새한테도 모이를 주는데, 새는 부리로 콕콕 쪼아서 먹어요. 소나 돼지 같은 네발짐승한테는 ‘먹이’를 줍니다. ‘소먹이’나 ‘돼지먹이’나 ‘말먹이’나 ‘토끼먹이’인데, 네발짐승은 입으로 먹어요. 사람은 ‘밥’을 밥그릇에 담아서 손이나 수저를 써서 먹어요. 새한테는 모이그릇을 챙겨 주고, 네발짐승한테는 먹이그릇을 챙겨 주지요. 우리는 마음을 붙이면서 아끼는 짐승하고 한집에서 살며 “‘밥’을 준다”고 말해요. ‘개밥·고양이밥’은 바로 개나 고양이를 아끼는 마음에서 쓰는 말이에요. 금붕어를 키울 적에도 “밥을 준다”고 해요. 소나 돼지를 키우면서 이 짐승을 아낄 적에도 “밥을 준다”고 말할 테지요. 요새는 일본 한자말 ‘사료’를 흔히 쓰는데 ‘사료’는 “먹이”를 뜻할 뿐입니다.

+

흰김치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서 맵게 담근 김치는 빨갛습니다. ‘빨간김치’는 매워서 ‘매운김치’예요. 고춧가루를 넣지 않으면서 담근 김치는 하얗습니다. ‘하얀김치’는 맵지 않으니 ‘안매운김치’라 할 수 있을까요? 고춧가루를 안 넣은 ‘하얀김치’는 ‘흰김치’이기도 합니다. 겨를 살짝 벗겨서 씨눈이 곱게 드러나는 쌀이라면 ‘누런쌀’이고, 겨를 많이 벗겨서 속살이 하얗게 드러나는 쌀이라면 ‘하얀쌀’이나 ‘흰쌀’이에요. 한여름에 햇볕에 까무잡잡하게 살갗을 태우면 ‘까만살’이 될 만해요. 한여름에도 살갗이 타지 않는다든지 햇볕을 오래도록 못 보면 ‘하얀살’이나 ‘흰살’이 되겠지요. 살갗이 하얗다고 할 만한 사람도 있고, 햇볕을 못 쬐어 핏기가 없다 싶은 사람한테는 ‘해쓱하다’나 ‘파리하다’고 해요. 송이송이 내리는 눈이 쌓이면 온통 하얗기에 ‘하얀눈·흰눈’이라 해요.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를 잡아서 먹을 적에 ‘흰살물고기’도 먹고 ‘붉은살물고기’도 먹으며, ‘등푸른물고기’도 먹어요. 그런데, ‘등푸른물고기’는 풀빛(푸르다)이라기보다는 하늘빛을 닮은 파랑이에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