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4
츠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76



‘사진 만화’에서 ‘짝짓기 만화’로 바뀐

―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4

 츠키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1.25. 4500원



  츠키코 님이 빚은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은 처음에 ‘사진 만화’로 이야기를 열었습니다. 첫째 권을 보면 온통 사진 이야기입니다. 사진 이야기 사이사이에 ‘풋사랑’ 이야기를 조금 곁들였지요. 둘째 권을 보면 사진과 풋사랑 이야기가 반쯤 섞입니다. 셋째 권은 사진 이야기가 크게 줄어들면서 풋사랑 이야기가 훨씬 넓게 자리를 잡고, 넷째 권에 이르면 온통 풋사랑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제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은 ‘그녀와 카메라’가 아니라 ‘그녀와 그녀’로 이야기가 바뀝니다. 누가 누구하고 짝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가 이 만화책에서 한복판을 차지합니다.



‘학교에 갈 마음도 사라지고, 늘 가던 공원, 늘 가던 카메라 가게, 사진관도. 내가 얼마나, 사진 중심으로만 살았는지 실감이 나. 그래도, 달리 하고 싶은 일이나 갖고 싶은 게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아.’ (6쪽)


‘신기하다. 산은 거기 있을 뿐인데, 힘을 주는 것 같아.’ (38쪽)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넷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넷째 권에서는 두 가시내 사이에 얼키고 설킨 응어리를 푸는 징검돌로 사진을 끼워넣습니다. 이러면서 두 사람(두 가시내)이 바라보는 사진 이야기는 곁두리 노릇일 뿐입니다. 사진하고 얽힌 새로운 이야기도 없고, 사진을 새롭게 바라보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흔한 사진 이야기에다가, 흔한 풋사랑 이야기로 흐릅니다.


  그렇다고 흔한 이야기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냥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만화책에서만 흐를 수 있는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고, 그냥 흔하게 어느 만화책에서든 어슷비슷하게 흐를 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린타로도 그랬지. 우리는 시간이 없어. 이 교복을 입을 날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고.’ (125쪽)


‘어떤 기분으로 이 사진을 찍었는지, 왜 내게 보여주고 싶어했는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어.’ (147쪽)



  아이들한테는 시간이 없지 않습니다. 어른들한테도 시간이 없지 않습니다. 시간은 왜 없을까요? 스스로 시간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선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가를 제대로 모르기에 시간이 어떠한 줄 모릅니다. 열다섯 살이나 열일곱 살이나 열아홉 살은 오직 한 번뿐입니다. 그리고, 스물한 살이나 스물다섯 살도 오직 한 번뿐이에요. 서른다섯 살하고 마흔다섯 살하고 쉰다섯 살도 늘 한 번뿐입니다.


  그러니, 우리한테 시간이 없을 수 없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이 언제나 한 번뿐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시간이 없으면 앞으로도 늘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한 번 누리는 삶에 즐겁게 마음을 쏟지 않으면, 앞으로도 꼭 한 번만 마주하면서 누릴 삶에 제대로 즐겁게 마음을 쏟지 못합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구나, 유키. 나는 어떨까. 혼자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뿐인 세계에 뛰어들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유키라도 문득 불안해지진 않을까?’ (150∼151쪽)


‘어느 쪽이든 좋아. 시간이 지나면, 유키를 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오늘, 도쿄에 와서, 유키가 눈에 들어온 순간, 그렇지는 않겠구나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찰칵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도리 없이 유키를 떠올리고 있겠구나라고, 쭈욱. 앞으로도 쭈욱, 내 안에서 유키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겠구나 하고.’ (169∼171쪽)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저마다 알맞게 짝을 지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저마다 제 삶을 찾으면 됩니다. 제 삶에 따라 제 짝은 눈부시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눈부시거든요. 이 아이는 이 아이대로 눈부시고, 저 아이는 저 아이대로 눈부셔요. 그리고, 사진기를 더 오래 쥐었기에 사진을 더 잘 찍지 않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유키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사진을 찍었으나,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넋이 못 되었기에, 사진기를 손에 쥔 지 몇 달이 안 되는 미야마처럼 사진을 못 찍습니다. 왜냐하면, 미야마는 사진기를 손에 쥔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사진 한 장을 찍을 적마다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넋이 되거든요.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넷째 권을 읽으니, 이 만화는 셋째 권에서 마무리를 짓는 쪽이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나올 다섯째 권은 어떠할는지 모르지요. 다섯째 권에서 이야기가 사뭇 달라지면서, 이 만화를 이루는 뼈대가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되살릴는지 모르지요. 부디 두 가시내하고 한 사내가 맺고 풀고 얼키고 설키는 풋사랑 이야기가 사진이라고 하는 징검돌 사이에서, 또 사진이라고 하는 삶이랑 나란히, 고우면서 애틋한 노래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만화를 그리는 분이 ‘사진’하고 ‘풋사랑’ 두 가지를 모두 거머쥐려고 하면서 외려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리는 어설픈 길을 가는 듯하다는 느낌이 앞으로 나올 다섯째 권에서는 사라질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1.1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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