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세 알의 비밀 알이알이 명작그림책 17
제럴드 맥더멋 글.그림, 노계순 옮김 / 현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2



이 땅에 겨울이 생긴 까닭은?

― 석류 세 알의 비밀

 제럴드 맥더멋 글·그림

 노계순 옮김

 현북스 펴냄, 2012.10.15. 11000원



  아이들은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모두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말을 받아들여서 익히고 싶기에 어버이가 읊는 말을 찬찬히 살피면서 받아먹습니다. 어버이가 고운 말을 쓰면 아이는 저절로 고운 말을 씁니다. 어버이가 미운 말을 쓰면 아이도 저절로 미운 말을 써요.


  어버이가 바쁘고 힘들다면서 미운 말을 자꾸 쓰면, 아이는 ‘어버이가 바쁘고 힘들다’는 대목은 살피지 않고 ‘미운 말’만 받아들입니다. 아이로서는 ‘어버이가 새로 하는 말’이나 ‘어버이가 늘 쓰는 말’에 눈길이 갑니다.


  이를테면, 아이가 가게에 어버이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간다면, 아이는 ‘아이 스스로 갖고 싶은 장난감’에 손을 뻗습니다. 아이는 값을 따지거나 바라보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살펴서 고릅니다. 이때에 어버이는 어떻게 마주할까요? 아이가 고른 장난감을 기꺼이 장만할까요, 아니면 ‘값’을 따질까요? 값을 아예 안 볼 수 없을 터이나, 값을 먼저 보느냐, 아니면 아이가 바라는 곳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그 날도 데메테르는 여느 때처럼 대지를 가꾸었어요. 데메테르 옷이 닿는 곳마다 밀이 솟아오르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예쁜 꽃들이 피어났어요. 일을 다 마친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에게 말했어요. “다른 신들을 만나고 올 테니 멀리 가지 말고 여기서 퀴아네와 놀고 있으렴.” (8쪽)



  제럴드 맥더멋 님이 빚은 그림책 《석류 세 알의 비밀》(현북스,2012)을 읽습니다. 석류 한 알도 아니고 왜 석 알일까 하고 궁금해 하면서 이 그림책을 읽습니다. 그림책에는 ‘여신’이 나오고, ‘여신이 낳은 딸’이 나옵니다. 딸도 여신이니, 지구별은 두 여신이 따사롭게 보듬는 손길을 받아서 풀이 돋고 꽃이 피며 나무가 자랍니다. 두 여신은 이 지구별에 아름다운 숲을 사랑스레 가꾸어 줍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이 지구별에서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삶을 짓습니다.




페르세포네는 퀴아네가 말릴 틈도 없이 연못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으로 가 버렸어요. 한 팔 가득 꽃을 꺾은 페르세포네가 돌아가려고 할 때였어요. “어머나! 이렇게 예쁜 꽃은 처음 보는걸.” 페르세포네는 마지막으로 한 송이만 더 꺾으려고 수선화 줄기를 힘껏 잡아당겼어요. 그러자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쩌억!’ 하고 갈라졌어요. (10쪽)



  그런데, 두 여신 가운데 ‘딸아이 여신’은 어머니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니 귓등으로 넘겼지요. 어머니 여신이 살짝 자리를 비운들 무슨 큰일이 있으랴 여겼고, 그저 새로운 놀이나 즐거움을 찾아서 ‘어머니가 가지 말라고 하던 곳’으로 갑니다. 어쩌면, 어머니가 ‘가지 말라’고 했기에 더 가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아이한테 ‘가지 말라는 곳’을 말했기 때문에, 아이 마음에는 ‘가지 말라는 곳’이 오히려 마음에 남습니다. 이를테면, ‘먹지 마’ 하고 말하면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들 듯 말이지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거친 말 쓰지 마’라든지 ‘동무나 동생을 괴롭히지 마’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아이들한테 들려준다고 해서 아이들은 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왜?’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무엇을 하지 마’ 하고 말해서는 ‘무엇을 해’라는 뜻밖에 안 돼요. 하지 말라고 말하지 말고, 아이들이 즐겁게 할 일과 놀이를 보여주거나 함께할 노릇입니다. ‘자, 우리 이것을 해 볼까’ 하고 말한다든지 ‘이것을 해 보렴’ 하고 나긋나긋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할 노릇이에요.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를 찾아 곳곳을 헤맸어요. 슬픔에 잠긴 데메테르가 지나가자 새들은 노래를 멈추었고, 나무와 풀은 시들어 검게 바뀌어 버렸어요. (17쪽)



  그림책 《석류 세 알의 비밀》은 지구별 어느 곳에서 고이 흐르는 옛이야기를 되살립니다. 이 지구별 ‘땅 위쪽 나라’에서 사랑스레 살던 사람들이 누리던 ‘언제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철’이 왜 바뀌었는가를 들려주려는 옛이야기입니다.


  땅 위쪽 나라를 보듬던 두 여신 가운데 딸아이 여신은 땅 아래쪽 나라 남신(남자 신)한테 사로잡혔고, 딸아이 여신은 땅 아래쪽 나라에서 배고픔을 꿋꿋하게 참다가 그만 석류 세 알을 먹습니다. 이 모습을 들켰어요. 땅 아래쪽 나라에 있는 밥을 한 숟갈이라도 먹으면 땅 위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데, 그만 석류 세 알을 먹었다는군요.


  그러나 ‘세 덩이’가 아니라, 석류 한 덩이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알갱이 셋만 먹었기에, 딸아이 여신은 땅 위쪽 나라에서는 아홉 달을 살고, 땅 아래쪽 나라에서는 석 달을 살아야 하는 몸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그러니, 딸아이 여신이 땅 아래쪽 나라로 떠나야 하는 석 달 동안, 땅 위쪽 나라에서는 어머니 여신이 슬픔에 겨워 풀도 꽃도 나무도 돋지 않는 추운 겨울이 되었다고 해요.




다시 만난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는 뛸 듯이 기뻐했어요. 둘은 예전처럼 정성스럽게 대지를 돌보고 가꾸었어요. 그렇지만 한 해에 한 번, 페르세포네는 하데스 지하 왕국으로 가야만 했어요. 그러면 땅 위는 춥고 어두운 겨울이 되었어요. 그러다 다시 페르세포네가 땅 위로 나오면 온 세상은 봄을 맞는 기쁨으로 가득 찼답니다. (31쪽)



  언뜻 보기에 그림책 《석류 세 알의 비밀》에서 딸아이 여신이 참 바보스럽네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고작 석류 석 알이라면 조금 더 참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데, 딸아이 여신이 땅 아래쪽 나라로 끌려가서 지내야 하는 석 달 동안 땅 위쪽 나라에 겨울이 흐른다면, 이 겨울도 어느 모로 보면 재미있는 삶자락입니다. 이 땅에는 겨울이 있어서 풀이 시들어 흙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는 겨울이 있어서 온갖 벌레가 겨울에 죽거나 겨울잠을 잡니다. 이를테면, 겨울에는 모기가 몽땅 얼어죽거나 잠들지요. 겨울은 그야말로 ‘쉬는 철’이라고 할까요. 겨울이 있기에 살그마니 한숨을 돌리면서 쉴 만하고, 겨울이 있기에 아이들은 새롭게 ‘눈놀이’를 즐기기도 합니다.


  좋고 나쁨이라는 대목이 아니라, 잘하고 못하고를 가르는 대목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가꾸려는 이야기로 바라본다면 《석류 세 알의 비밀》은 앞으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어떤 삶을 지을 때에 아름답고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들려주려는구나 싶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다시 찾아올 적에 기쁜 그 마음처럼, 여름을 북돋우고 가을에 거두는 즐거운 그 땀방울처럼, 이러면서 다시 맞이하는 겨울에 차분히 쉬는 그 몸짓처럼, 삶을 어떻게 지을까 하고 돌아볼 일이지 싶어요.


  노래하고 꿈꾸며 춤출 수 있는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새롭고 즐거운 말을 들려줄 줄 아는 어버이로 살자고 생각합니다. 오순도순 기쁜 웃음으로 아침을 열고, 도란도란 보드라운 자장노래로 저녁을 마무리하자고 생각합니다. 4348.11.1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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