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 신나는 새싹 15
길상효 글, 안병현 그림 / 씨드북(주)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8



아파트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한테 골목이란

―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

 길상효 글

 안병현 그림

 씨드북 펴냄, 2015.9.18. 11000원



  내 어릴 적을 떠올리면, 그무렵에는 누구나 목소리로 서로 부르며 살았습니다. 대문을 두드린다든지 단추를 눌러서 사람을 부르지 않았어요. 목소리를 높여서 서로서로 불렀어요. 놀자고 할 적에도 소리를 내어 부르고, 심부름을 할 적에도 소리를 내어 부릅니다.


  이 집에 누군가 있으면 이 집에서 고개를 내밀고, 이 집에 아무도 없으면 이웃집에서 고개를 내밀면서 ‘그 집에 아무도 없는데’ 하고 알려줍니다. 손전화가 없고 집전화가 없어도 몸소 찾아가서 만났고,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웃집이 건너건너 얘기를 들려주었어요.


  오늘날에는 집 주소를 놓고 무슨무슨 길이라거나 번지 숫자가 빼곡하지만, 목소리로 이웃집을 부르던 지난날에는 주소나 번지 숫자가 아니라 ‘집에 사는 사람’ 이름으로 서로 알았습니다. 아무개네 집이 어딘가 하고 찾았지, 몇 번지 몇 통 몇 반으로 집을 찾지 않았어요. 그리고, 감나무가 있는 집이라든지, 대문이 무슨 빛깔인 집이라든지, 집마다 다른 모습과 숨결을 살펴서 서로 알음알음했습니다.



골목은 누구의 것도 아니에요. 누구나 지나다닐 수 있어요. 그런데도 눈이 오거나 가랑잎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자기 집 앞 골목을 쓸어요. (5쪽)



  길상효 님이 글을 쓰고, 안병현 님이 그림을 빚은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씨드북,2015)는 오늘날 어린이한테 골목마을이 어떤 삶터인가를 들려주려고 하는 그림책입니다. 오늘날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골목이나 골목마을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더구나 무척 많은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자랍니다. 통계청 자료를 살피면 2005년에 41.7퍼센트가 아파트에서 살고, 2010년에 47.1퍼센트가 아파트에서 산다고 해요. 2015년 통계는 2016년에 나올 텐데 50퍼센트를 웃돌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50퍼센트가 넘는다 하더라도 아파트와 비슷하다고 할 만한 건물에서 사는 사람이 무척 많지요. 다세대 주택에 사는 사람도 많고요. 골목마을에도 2층이나 3층짜리 낮은 집이 꽤 있습니다만, 이 그림책에서 다루는 골목마을 같은 골목집에서 사는 사람은 무척 적어요. 더욱이 골목마을에서 사는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줄어듭니다.




골목을 지나가면 많은 이야기가 들려와요. 귀가 어두운 어느 집 할아버지가 크게 켜 놓으신 텔레비전 뉴스 소리도 들리고. (10쪽)



  골목마을에서 사는 사람은 골목마실을 따로 다니지 않습니다. 골목길을 늘 지나다니기는 하되 굳이 이 골목이나 저 골목을 빙글빙글 돌면서 다니지 않아요. 골목마을에서 살지 않는 사람이 골목마실을 다니기 마련이고, 이들은 이 골목과 저 골목 사이에서 흐르는 곱고 따순 숨결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아무래도 아파트와 골목집은 사뭇 다르기 때문일 텐데, 아파트는 이웃집이 어떠한 숨결인지 알기 어렵고, 알 수 없기도 합니다. 골목집은 담벼락이 있어도 까치발을 하면 들여다보이기도 할 뿐 아니라, 골목길을 따라서 골목밭이 있기도 하고, 골목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는 골목집보다 높이 솟아서 어디에서나 잘 보입니다.


  골목마실을 하는 ‘골목 밖 사람’은 골목길을 거닐면서 꽃도 보고 나무도 봅니다. 수수한 사람들이 정갈하게 보듬는 골목길을 거니는 동안 수수한 이야기를 느끼고, 수수한 살림을 마주하며, 수수한 사랑이 어떻게 마을을 가꾸는가를 바라볼 만합니다.




골목은 그냥 지나만 다녀도 놀이터가 돼요. 언제 어디서 친구들이 나타날지 몰라요. 꺾인 모퉁이 뒤에서 갑자기 ‘왁!’ 하고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어요. (14쪽)



  그림책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는 아직 아파트 바람이 휭휭 불기 앞서까지 골목마을이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던 조촐한 재미와 기쁨을 새록새록 보여주려고 합니다. 골목을 뛰노는 아이들을 보여주고, 골목 한쪽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어우러지는 이웃들을 보여줍니다. 허물이 없는 삶을 보여주고, 도란도란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보여주지요.


  가만히 보면, 골목집은 햇볕을 골고루 나누어 받습니다. 햇볕을 더 잘 받는 집은 따로 없습니다. 올망졸망 담벼락을 맞대고 이어지는 작은 집들은 해가 흐르는 결에 따라 찬찬히 따스한 손길을 받습니다. 작은 집이 서로 모여서 시끄러운 소리가 골목마을로 스며들지 못하고, 작은 집이 나란히 붙은 터라 한겨울에도 한결 따스한 기운이 감돕니다.




나를 등지고 반대쪽으로 뛰어가던 친구가 어느새 내 앞에서 뛰고 있기도 해요. 꺾이고 갈라지는 골목에는 숨을 곳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숨바꼭질은 매일 해도 재미있어요. (17쪽)



  집과 집 사이에 난 길을 골목이라고 합니다. 길게 맞붙은 집 사이로 흐르는 길이 골목입니다. 이 골목은 이 집 것도 저 집 것도 아닙니다. 함께 나누어 쓰는 길이고, 함께 걷는 길입니다. 함께 오가는 길이요, 함께 누리는 길이에요.


  골목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골목을 쓸고 치웁니다. 함께 누리는 삶자리이니까요. 골목마을에서는 누구나 이웃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언니 오빠 누나 동생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마을은 들과 숲과 냇물을 함께 누리는 삶자리이고, 골목마을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는 삶자리입니다.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나누고, 큰 것은 큰 것대로 나눕니다. 웃음은 웃음대로 나누며, 눈물은 눈물대로 나누어요.


  그림책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한테 이웃이 누구인가를 보여주면서, 바로 우리 누구나 서로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되면서 오순도순 삶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알려주려고 하지 싶습니다. 어깨를 겯는 동무가 되고, 손을 맞잡는 이웃이 되어, 우리 삶터를 우리 사랑으로 곱게 가꾸자는 꿈을 넌지시 들려주려고 하지 싶습니다. 4348.11.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