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개천 책읽기



  한 해에 두 차례씩 마을 어귀에 걸개천이 붙는다. 설날하고 한가위에 붙는데, 그동안 예전 걸개천을 쓰기도 했지만, 요즈음 들어 때마다 새 걸개천을 붙이는구나 하고 느낀다. ‘고향 방문을 반기는 뜻’을 적은 걸개천을 보면서 생각한다. 도시로 가서 사는 딸아들하고 형제 자매가 보라고 붙인 걸개천은 무엇을 말할까 하고.


  시골마을을 자주 찾아오는 딸아들이나 형제 자매라면 굳이 걸개천까지 붙이지는 않으리라. 모처럼 찾아오는 딸아들이나 형제 자매일 터이니 이렇게 걸개천으로까지 반갑다는 말을 하는 셈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도시에서 혼자 살 적에는 으레 ‘고향 잘 다녀오십시오’ 같은 걸개천을 보았다. 도시에서는 ‘시골로 얼른 댕겨 오쇼’ 같은 걸개천을 나붙여서 등을 민다면, 시골에서는 ‘시골로 얼른 오쇼’ 같은 걸개천을 붙여서 얼싸안으려고 한달까.


  시골에서 살며 시골에서 지내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걸개천은 내 삶하고 동떨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시가 고향이면서 도시에서 죽 지내는 사람한테도 이러한 걸개천은 이녁 삶하고 동떨어질 테지. 인천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어릴 적에 설이든 한가위이든 어디 가는 데가 없었기에 ‘텅 빈 도시’에서 조용히 지내기 일쑤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입시공부를 하느라 그저 집에서만 보냈다.


  아무튼, 이런 걸개천이 있든 저런 걸개천이 있든 우리 집 아이들은 그저 뛰고 달리면서 논다. 그래, 우리는 우리 삶을 누리면 된다. 아름다운 한가을에 아름다운 마음으로 새 하루를 맞이하자. 4348.9.2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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