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77 왜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 모르기에 궁금합니다. 어떻게 그처럼 돌아가는지 모르니 궁금합니다. 까닭을 몰라 알고 싶으며, 영문을 몰라 알려 합니다. 궁금함을 풀려는 마음이고, 까닭을 알아내려는 마음이며, 영문을 찾으려는 마음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한 마디 말을 터뜨립니다. “왜?”


  아이들은 늘 묻습니다. 아이들은 아주 짧게 묻습니다. “왜?” 아이들은 그야말로 궁금합니다. 옳거나 그른 것을 안 따지면서 그저 궁금합니다. 어른들이 어느 것이 옳다고 하면 왜 옳은지 궁금하고, 어른들이 어느 것이 그르다고 하면 왜 그른지 궁금합니다. 옳음과 그름을 구태여 왜 나누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옳거나 그르다고 따지기 앞서 즐겁거나 기쁜 삶을 생각하면 될 텐데 하고 궁금합니다.


  새롭게 알려는 마음이기에 “왜?” 하고 묻습니다. 아직 듣지도 보지도 겪지도 않았으니 “왜?” 하고 묻습니다. 스스럼없습니다. 거침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마음으로 묻습니다. 사회의식이나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묻지 않고, 티없이 열리고 가없이 넓으며 끝없이 깊은 마음으로 묻지요, 꼭 한 마디를, 바로 “왜?”라고 하면서.


  어른들이 “왜?”라는 말을 쓸 적에는 아이들과 사뭇 다릅니다. 아이들은 티없고 가없으며 끝없이 묻지만, 어른들은 으레 ‘두려움’과 ‘무서움’과 ‘걱정’과 ‘근심’을 부여잡고서 묻습니다. 어른들은 스스로 틀에 갇히고 굴레에 사로잡힌 채 묻습니다. 어른들은 ‘왜’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어른들은 ‘왜’ 알아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어른들은 ‘왜’ 따라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른들은 하기 싫고 알기 싫으며 따르기 싫습니다. 어른들은 마음을 조금도 안 열면서 묻는데, 마음을 안 연 채 읊는 ‘왜’는 궁금함이 아닙니다. 거스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른들은 손사래치면서 눈을 감고 싶기에 ‘왜’라는 말마디로 고개를 홱 돌립니다.


  아이들은 “왜?” 하고 물으면서 하나도 안 두렵습니다. 새로운 것을 바라보거나 듣거나 겪으니 즐겁게 묻습니다. 아이들은 “왜?” 하고 물으면서 새로운 마음이 되기에 기쁩니다. 앞으로 새로운 숨결로 새로운 이야기를 누릴 만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똑같이 쓰는 ‘왜’입니다.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같은 말로 쓰는 ‘왜’인데, 막상 다른 마음으로 쓰고 마는 ‘왜’입니다. 이리하여, ‘여는 마음’으로 묻는 “왜?”는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고, ‘갇힌 마음’으로 대꾸하는 “왜?”는 두려움으로 치닫는 제자리걸음이 됩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우리는 새로움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두려움에 스스로 갇히려 할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사회의식을 붙잡은 채 종으로 얽매인 수렁에 빠지고 말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하느님인지 안 알아보려 할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웃음과 노래를 길어올려 스스로 사랑스러운 삶을 지으려는 몸짓을 잃을까요?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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