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보이 그림책 보물창고 9
모디캐이 저스타인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0



사랑받으며 놀고 싶은 ‘숲아이’

― 와일드 보이

 모디캐이 저스타인 글·그림

 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펴냄, 2005.8.10. 9000원



  조금 높은 곳이 있으면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펄쩍 뛰어내리려 합니다. 조금 너른 곳이 있으면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싱싱 달리려 합니다.


  아이들은 바람을 타고 뛰어내립니다. 아이들은 바람을 가르면서 달립니다. 뛰거나 달리는 아이들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립니다. 땀이 흐르면 바람이 말려 주고, 까르르 웃거나 노래하는 소리는 바람결에 실려 멀리멀리 퍼집니다.



아이는 바람을 좋아했습니다. 아이는 눈을 좋아했습니다. 아이는 보름달을 좋아했습니다. (9∼10쪽)




  모디캐이 저스타인 님이 빚은 그림책 《와일드 보이》(보물창고,2005)를 읽습니다. 영어 ‘와일드(wild)’는 ‘들에서 사는’이나 ‘숲에서 사는’을 가리키기도 하고 ‘길들지 않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들이나 숲에서 사는 숨결 눈높이로 바라보자면 “들에서 사는 아이(들아이)”인 셈이고, “숲에서 사는 아이(숲아이)”입니다. 그리고 문명 사회나 도시 사회에서 바라보자면 “길들지 않은 아이”나 “사회를 모르는 아이”예요.



과학자들은 아이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싶어했습니다. 아이는 마차에 실려 숲에서 500킬로미터나 떨어진 파리로 갔습니다. 마차가 덜컥거리며 도시로 들어섰지만, 아이는 창 밖을 내다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 아이가 아는 것은 오직 숲뿐이었고, 도시엔 숲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0쪽)



  도시에서 문명을 세워서 문명을 누리는 사람들은 ‘들아이’나 ‘숲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도시에 있는 어른들은 ‘들아이’나 ‘숲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지 않아요.


  왜 그러할까요? 도시에 있는 과학자나 학자나 전문가나 교육자는 ‘들아이’나 ‘숲아이’가 ‘저희(도시사람)가 쓰는 말’을 모른다고 여깁니다. 거꾸로 바라볼 줄은 몰라요. 도시에 있는 과학자나 학자나 전문가나 교육자들이 ‘들아이가 쓰는 말’이나 ‘숲아이가 아는 말’을 하나도 모르는 줄 생각하지 못해요.


  숲에서 마음껏 잘 살던 아이를 사로잡은 사냥꾼과 과학자는 숲아이를 숲으로 돌려보낼 마음이 없습니다. 도시에 있는 사냥꾼은 돈을 받습니다. 도시에 있는 과학자는 숲아이를 ‘실험실 연구 대상’으로 삼습니다.


  숲아이는 아주 외롭고 힘들며 슬픕니다. 제 고향과 보금자리를 잃었을 뿐 아니라, 숲아이가 좋아하던 바람도 눈도 보름달도 냇물도 골짜기도 숲도 모두 빼앗겼거든요.




이타르 박사는, 그 누구도 품에 안아 주거나 노래를 들려준 적이 없고 함께 놀아 준 적도 없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25쪽)



  외로운 숲아이를 돌보려고 하는 과학자나 전문가나 교육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한 사람이 나타나서 숲아이한테 ‘도시 문명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동안 숲아이를 마주한 여느 과학자나 전문가하고 좀 다르다면, ‘이타르 박사’라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았고, 따스한 손길로 품으려고 했습니다. 다만, 이타르 박사도 숲아이한테 ‘이타르 박사가 아는 말과 문명’만 가르치려고 했어요. 이타르 박사는 ‘숲아이한테서 삶을 배울 뜻’이 없었어요. 숲아이가 보름달을 쳐다보는 까닭을 알려 하지 않고, 숲아이가 왜 알몸으로 눈밭을 뒹굴며 놀고 싶은가를 알아차리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렇게 함께 놀지 못하지요. 이타르 박사는 숲아이를 돌보아 주기는 했으되, 이녁도 ‘새로운 눈길로 숲아이를 바라본 뒤 보고서를 써서 학계에 내놓아 인정받을’ 뿐이었습니다.


  숲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숲아이는 ‘옷을 입을’ 줄 알고, 맨발이나 알몸으로 돌아다니지 않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끝내 ‘도시 문명 말’은 한 마디도 안 했다고 해요. 무엇보다도 몇 해 살지 못하고 죽었다지요.


  숲아이는 숲에서 그대로 살았으면 몇 해 못 살고 죽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숲아이는 숲에서 제 나이만큼 즐겁게 살았으리라 느껴요. 옷 한 벌 없어도 추위를 모르고, 포크나 칼이 없어도 밥을 찾아서 먹을 줄 알며, 맨손과 맨몸으로 나무를 잘 타고 바위도 잘 타며 어디로든 마음껏 뛰거나 달릴 수 있던 숲아이였어요.




맑고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빅토르(숲아이)는 창 밖 하늘과 나무를 쳐다보며 천천히 물을 마시곤 했습니다. 바람이 살랑이는 소리와, 눈송이가 흩날리는 풍경과, 구름 뒤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부신 햇살에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37쪽)



  교육은 교육이어야 합니다. 교육은 길들이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은 삶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손길이어야 합니다. 교육은 어떤 전문지식을 아이가 외우도록 시키는 얼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가 똑같은 지식을 머릿속에 넣은 뒤 똑같은 도시 사회에서 똑같은 도시 문명인으로 살아야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만 산다면, 모든 사람은 굶어야 해요.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만 산다면, 모든 사람은 겨울에 추위에 떨어야 해요.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노동자로만 지낸다면, 모든 사람은 옷도 못 입고 아무것도 못 하지요.


  삶을 짓는 길을 아이한테 가르칠 수 있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삶을 가꾸는 사랑을 아이와 함께 새롭게 배울 줄 아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돈을 벌면 돈으로 척척 무엇이든 사들여서 쓸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돈이 아니라 삶을 가꾸어서 삶을 누리는 하루입니다.


  그림책 《와일드 보이》는 ‘숲아이’를 보여줍니다. 숲아이를 사로잡아서 돈을 벌거나 실험 연구 대상으로 삼으려던 어른들을 보여줍니다. 숲아이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 숲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받아야 하는데, 어떤 사랑을 받아야 하는가를 《와일드 아이》를 빌어서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그저 따뜻한 품으로만 안는 사랑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제 삶을 가꾸고 일구며 돌볼 수 있도록 이끄는 너그러운 사랑일 때에 비로소 사랑이리라 느낍니다. 아이가 바람을 알고, 비와 눈을 알며, 하늘과 땅을 알고, 숲과 들을 넉넉히 품도록 이끄는 사랑일 때에 비로소 삶을 짓는 사랑이리라 느낍니다. 4348.9.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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