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청소부는 언제나 즐겁다



  영화 〈메리 포핀스〉는 참 자주 다시 본다. 아이들이 다시 보고 싶다는 말을 틈틈이 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노래를 화면과 함께 다시 보고 싶어서 참 자주 틀곤 한다. 처음에는 노래 한두 가지만 들을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끝까지 달리고야 만다.


  오늘은 〈메리 포핀스〉를 다시 보면서 “굴뚝청소부는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고 하는 ‘버트’ 대사를 눈여겨본다. 버트는 ‘뱅크스’ 씨네 굴뚝을 뚫으면서 아이들한테 ‘굴뚝’이라는 곳은 “그림자 반 빛 반이 있는 세계”라는 말을 들려주는데, ‘그림자’라기보다는 ‘어둠’이나 ‘고요’로 번역하면 한결 잘 어울리겠다고 느낀다. 버트는 굴뚝에 낀 검댕을 모두 털어서 뚫으면 아주 멋지고 놀라운 곳으로 나간다고 말하는데, 어둡고(고요하고) 밝은(빛나는) 흐름이 함께 어우러진 곳을 빠져나가서 만나는 새로운 누리는 그야말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러한 삶을 늘 겪으면서 돈까지 버는 굴뚝청소부는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고 아이들한테 노래하고 춤추면서 말한다.


  아이들하고 춤노래에 빠져들어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해 본다. 아직 오른무릎이 낫지 않아 춤을 못 추지만, 굴뚝청소부들이 잔뜩 모여서 즐기는 신나는 춤을 나도 아이들하고 추고 싶다.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일, 참말 언제나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일을 해야 기쁜 삶이 될 테니까.


  오늘날 사람들 삶이 즐겁거나 기쁘지 않다면, 노래하거나 춤추지 못하는 채 ‘실적을 맞추기만 해야 하는 일’에 얽매여야 하기 때문이리라 싶다. 노래하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이나 공무원이 노래하면서 일할까? 의사나 변호사가 일하다가 노래를 할까? 가게 일꾼은 어떠한가? 전문 댄서가 아니라, 여느 사람으로서 춤추면서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가?


  먼 옛날부터 지구별 모든 숲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면서 일했다. 웃고 이야기하면서 일했다. 현대 물질문명 사회가 된 뒤부터 사람들은 일터에서 노래와 춤을 빼앗긴다. 아니, 스스로 노래와 춤을 버린 채 일을 한다. 따로 노래방이라는 곳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몸을 뒤흔들고 소리를 빽빽 내지르기만 한다. 노래나 춤이 아니라 ‘악’을 쓴다.


  우리는 걸레를 빨고 밥을 지으면서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춤출 수 있어야 한다. 길을 걸으면서 노래하고, 버스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춤출 수 있어야 한다. 이래야 비로소 삶이다. 4348.9.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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