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하고 다섯



  자전거 사고가 난 지 나흘째 되는 날까지 너무 아프고 괴로워서 그야말로 아이들하고 함께 놀지도 못할 뿐 아니라, 밥을 가까스로 차려 주었고, 잠자리에서 노래도 못 불렀다. 그래도 나흘째 밤에 도무지 노래를 안 부를 수 없구나 싶어서 쩍쩍 마르고 활활 타는 입으로 침을 꿀꺽 삼켜서 노래를 다섯 가락 불렀다. 용하게 다섯 가락까지 부를 수 있었고, 아이들은 이동안 잠들어 주었다.


  오른다리를 못 써서 못 걸은 지 닷새째인 날에는 고름을 다섯 차례 짰다. 한 차례만 고름이 조금 나왔고 네 차례는 고름이 참 많이 나왔다. 오른다리가 왼다리와 대면 1.5곱으로 부풀었으니 이만 한 고름이 줄줄줄 흐를 만했다. 낮에 처음 고름을 짜고 난 뒤에는 전기에 옮은듯이(전기에 옮아 본 사람은 알 텐데) 찌릿거리면서 갑자기 힘이 다 빠졌다. 넋을 잃고 한 시간 넘게 자빠져서 끙끙 앓았다. 두 차례째 고름짜기에서는 넋을 잃지 않았으나 머리가 어지러웠다. 세 차례와 네 차례째 고름짜기에서는 등허리를 펼 겨를마저 없네 싶어서 힘들었고, 이날 마지막인 다섯 차례째 고름짜기에서는 고름을 짜는 손가락이 저렸다. 손가락이 저려서 고름을 더 짜기 어려웠다. 고름을 짤 적에 쓸 탈지면을 거의 다 쓴 탓에 더 짜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다섯 차례째 고름을 짜고 나서 자리에 드러누운 뒤 아이들을 옆에 누이고 나서 노래가 고요히 흘러나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 낮까지만 해도 목이 타고 입안이 갈라지려는 듯했는데, 닷새째 저녁에 내 목소리는 마치 새로운 몸에 깃든 새로운 목소리와 같았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두 아이한테 “벼리야, 보라야, 너희 아버지가 너희한테 얼마나 많은 노래를 불러 주었는지 아니? 너희들은 노래가 하나도 생각 안 난다고 하지만, 마음속을 잘 헤아려 봐. 그동안 수없이 듣고 들어서 너희 마음에 새겨진 노랫말하고 노랫가락이 있어. 오늘은 딱 한 번씩 여러 노래를 들려줄 테니 귀여겨들어 봐. 한 번만 듣는다고 해도 마음으로 들으면 다시 떠올릴 수 있어.”


  한 시간 남짓 노래를 부르니 큰아이가 먼저 꿈나라로 가고, 작은아이도 이윽고 꿈나라로 간다. 한 시간 즈음 넘어설 무렵부터 목이 갈라지면서 잠기려 한다. 몸이 많이 나아졌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섣불리 더 쓰면 안 된다고 깨닫는다.


  나흘을 잘 견뎠다. 닷새를 잘 보냈다. 아이들도 나흘하고 닷새를 씩씩하고 당차게 심부름을 해 주고 여러 집일도 맡아 주면서 잘 놀아 주었다. 이제 곧 아버지는 새롭게 일어난다. 다만, ‘예전처럼’ 일어나지는 않는다. ‘새롭게’ 일어난다.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삶을 일구는 새로운 어버이로 사랑을 지으려 하니, 한결 맑고 밝게 웃고 노래하는 우리 숲집을 가꾸자. 4348.9.6.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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