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면서 읽는 책



  큰아이가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 자꾸 이렇게 책을 읽는다. 이 아이 모습을 바라보면 내 어릴 적 모습이 겹치니 싱숭생숭하다. 나는 책돌이로 살지 않았으나, 국민학교를 지나 중학생이 된 때부터 갑자기 책돌이가 되었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에는 노느라 바빠서 놀이돌이일 뿐이었는데, 중학교에 들어서니 그야말로 ‘남자 중학생’은 이렇게 바보에 멍텅구리로구나 하고 느껴서 ‘여기에서 더 바보에 멍텅구리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책돌이로 거듭났다.


  아마 열네 살 적부터 책돌이였을 텐데, 국민학생일 적에도 가끔 학급문고를 빌려서 책을 읽다가 푹 빠져서, 학교에서 집 사이를 걸어서 삼십 분 즈음 오갈 적에 ‘길에서 책읽기’를 으레 했다. 그때에는 몰랐으나 오늘에 와서 돌아보니, 《초원의 집》 해적판(계몽사에서 나온 판)이라든지, 한낙원 공상과학소설이라든지, 모비딕이라든지, 홍당무나 린드그렌 소설이나 이원수 동화나 메리포핀스나 소공녀나 닐스 같은 책을 손에 쥘 적에는 어떠한 소리도 모습도 못 느꼈다. 건널목을 건너면서도 책을 손에 쥐다가 길 한복판에 우뚝 서느라 빵빵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적이 잦다.


  삽차가 파헤친 길을 지나가면서까지 만화책을 손에 쥔 큰아이를 뒤에서 지켜보다가 ‘얘야, 책은 집에 가서 보기로 하고, 집에까지 하늘도 보고 신나게 달리면서 가야지.’ 하면서 책을 가방에 넣도록 한다.


  길을 가면서 읽는 책이란 참 재미있지. 나도 그렇게 해 봐서 알지. 그런데, 우리는 시골에서 사니까, 나무를 보고 숲을 보고 구름을 보고 하늘을 보고, 가을에 무르익는 들녘을 보자. 책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지만, 가을날 높은 하늘은 바로 오늘 보아야 한단다. 4348.9.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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