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8.10.

 : 나무노래를 듣고 싶어



곁님이 자전거를 타겠다고 한다. 반갑다. 모처럼 넷이 함께 자전거를 달릴 수 있다. 네 사람이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곁님이 하얀 자전거롤 혼자 몰고, 나는 두 아이를 이끈다. 네 사람이 자전거를 달리는 만큼 물병을 하나 더 챙긴다.


어디로 갈까. 넷이 함께 어디로 갈까. 우리 네 사람은 자전거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오늘은 우체국에 먼저 들러야 한다. 곁님 동생한테 옷을 두 상자 부치기로 한다. 우리 집 두 아이가 그동안 입은 옷을 신나게 다시 빨고 며칠 동안 땡볕에 새롭게 말려 놓았다. 곁님 동생이 낳은 아기한테 물려줄 옷을 두 상자 챙겼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이제 못 입는 조그마한 옷을 다시 빨고 새롭게 말리는 동안 옛 생각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고작 예닐곱 해밖에 안 된 옛 생각이지만, 이 조그마한 옷을 꿰고 신나게 뛰고 달리고 웃고 노래하고 놀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옷을 물려주거나 물려받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저 옷만 건네주거나 건네받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옷에 얽힌 삶을 물려주고, 옷에 깃든 사랑을 물려주며, 옷에 스민 숱한 놀이와 이야기를 고스란히 물려준다.


작은아이가 앉은 수레에 옷 상자를 둘 끼워넣으니 작은아이 자리가 매우 좁다. 그래도 작은아이는 씩씩하게 “나 괜찮아.” 하면서 웃는다. 어쩌면 작은아이는 ‘좁아진 자리’를 즐기는지 모른다.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시골길은 조용하다. 이런 시골길은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고, 걷기에도 좋다. 나무 그늘이 있거나 새가 노래할 수 있다면 훨씬 좋을 텐데, 아직 이 길에 나무를 심으려는 몸짓은 찾아볼 수 없다. 깊은 시골마을까지 수도물을 끌어들이겠다면서 공사를 벌이는 몸짓은 있고, 흙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바꾸겠다면서 공사를 벌이는 몸짓은 있다. 그렇지만 시골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몸짓이나 시골사람이 시골을 더 넉넉하게 누리도록 북돋우려는 몸짓은 드물다. 나라에서는 ‘논농사를 줄이라’고도 하고 ‘쌀 수매를 줄이겠다’고도 하지만, 정작 이런 정책을 외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생각조차 못 하지 싶다. 나무가 자라서 그늘이 드리울 만한 자리(논 가장자리)를 나라에서 사들인 뒤, 시골버스가 다니는 시골길을 따라서 차곡차곡 나무를 심어서 가꾸는 정책은 언제쯤 나올 만한지 궁금하다.


논 가장자리를 2미터쯤 ‘나무가 자라는 자리’로 삼아서 열 해만 가꾸어도 나무 그늘이 짙푸르게 생긴다. 스무 해를 가꾸면 나무 그늘이 이어지는 길이 무척 아름답다. 서른 해를 보살피면 이제 이 ‘나무 그늘 길’은 ‘걷고 싶은 길’이라는 이름을 얻겠지.


시골은 시골 그대로 두어도 아름답지만, 곳곳에 나무노래가 흐르고 나무바람이 퍼질 수 있으면 훨씬 아름답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시골이든 찾아가고 싶을 수 있을 테지만, 한결 아름다운 시골이 있다면 한결 아름다운 시골로 찾아가고 싶으리라.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란 마당이 있는 집’하고,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서 길마다 가득한 마을’로 가꾸면, 이러한 삶터는 아이들이 자라기에 아주 좋다.


네 사람이 자전거를 달린다. 네 사람은 느긋하게 자전거를 달린다. 빨리 달려야 할 까닭이 없다. 빨리 달린다고 해서 더 먼 길을 다닐 만하지 않다. 빨리 달리고 싶다면 버스나 자동차를 타면 된다. 자전거를 달리는 까닭은 빨리 더 멀리 가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철마다 다른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구슬땀을 흘리는 기쁨을 누린다.


두 다리하고 두 바퀴로 이 땅을 천천히 밟으면서 이웃을 돌아볼 수 있으니 자전거를 달린다. 쨍쨍 내리쬐는 여름볕을 누리면서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으니 자전거를 달린다.


제비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왜가리나 해오라기는 왜 논에 좀처럼 내려앉지 못할까. 아직 여름인데 왜 논개구리는 울지 않을까. 잠자리와 나비는 이 시골길에서 왜 춤추지 않을까. 수수께끼 아닌 수수께끼를 헤아려 본다. 논마다 농약을 엄청나게 뿌려댔기에 제비도 참새도 멧비둘기도 까치도 까마귀도 그림자조차 안 보인다. 왜가리나 해오라기가 논에 내려앉아 보았자 개구리 그림자를 찾아볼 길이 없다. 농약이 흐르는 논물에서 노래하던 개구리는 배를 까뒤집고 숨을 거둔다. 잠자리와 나비는 농약바람을 맞고 비실거리다가 길바닥에 떨어져 숨을 거둔다.


앞으로 시골이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 시골에서 아이들이 나고 자라도록 하려면 시골이 달라져야 한다. 그냥 시골이 아니라, 농약바람이 부는 시골이 아니라,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온갖 새가 춤추고 개구리가 노래할 수 있는 시골이어야 한다. 나무가 커다란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짙푸른 그늘을 선물할 수 있는 시골이어야 한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등에 이고 집으로 달린다. 이 들길이 아름다운 들길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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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8-14 07:43   좋아요 0 | URL
하늘도 좋고 길도 정말 좋아요. 햇볕은 뜨거웠겠지만 사진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옷을 물려주는 일이 그리 선뜻 해지는 일이 아니게 되는것 같아요.
나름 깨끗하게 입혔다고는 하지만 브랜드가 어쩌고 저쩌고 스타일이 어쩌고 저쩌고 이런저런 말 들을까 우려스럽기도 하구요~~
그래서 작은 옷나오면 고민하다가 그냥 헌 옷상자로 들어가 버린일이 다수 였던것 같아요~~ ㅎㅎ
준다는 말도 달라는 말도 거시기해져요~~ ㅎㅎㅎ

숲노래 2015-08-14 08:17   좋아요 0 | URL
아이들 옷은
가까운 사이라든지 믿을 만한 사이에서만
물려주고 물려받을 만하지 싶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에서 개구지게 놀기에
둘레에서 아이 옷을 물려주면 늘 고맙게 받는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큰아이한테 옷을 물려줄 수 있는 이웃님을
이제 슬슬 찾아보아야 할 텐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