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1
츠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45



마음으로 담은 사랑을 사진으로 찍다

―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1

 츠키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4.25. 4500원



  사진기가 있으니 사진기를 손에 쥐고 찰칵 하고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손전화 기계라면 사진을 찍는 소리가 안 들리도록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손전화 기계는 사진을 찍는 소리가 안 들리지만,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사진을 찍는 일이 아주 흔하고 쉽습니다. 누구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참말 누구나 사진을 봅니다. 증명사진이 아니어도 사진이 많고, 재미나게 놀면서 찍는 사진이 많아요.


  그러면, 사진에 찍힌 삶과 사진에 안 찍힌 삶은 어떻게 다를까요? 사진에 찍히기에 더 오랫동안 남을 만한 이야기가 될까요? 사진에 안 찍히기에 곧장 잊히는 이야기가 될까요?



‘3학년이 되니, 학교에 가는 것은 좀 우울해진다. 그래도, 시내에는 강이 여러 군데 흐르고, 아침마다 자전거로 다리를 건너 학교에 간다. 맑은 날이면 딱 다리 위에서 산이 보여서, 그 풍경은 언제나 내 등을 힘차게 밀어 준다.’ (3∼4쪽)


‘아아, 어쩌면 저렇게 햇빛이 어울릴까. 빛나는 땀방울 건강한 향기. 자기에게 자신이 넘쳐 반짝반짝해 보여. 그리고 남자고, 분명, 유키가 말하는 동물 같은 소리도, 내게 만들 수 있겠지.’ (56쪽)



  츠키코 님이 빚은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학산문화사,2015)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만화책은 여고생 두 사람과 남고생 한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애틋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세 사람은 서로서로 마음이 있으나 마음을 드러내는 몸짓을 잘 모르고, 마음을 드러내는 몸짓을 보여주다가 자칫 앞으로는 동무 사이로 지내지 못할까 하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세 사람은 가까운 듯하면서 멉니다. 또 멀어진다 싶다가도 늘 곁에 있습니다. 사진을 찍든 안 찍든 세 사람 사이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진에 찍히는 모습이 꽤 많으나, 사진에 안 찍히는 모습은 훨씬 많습니다. 이를테면 굳이 찍지 않는다면, 밥 먹는 모습이나 잠을 자는 모습이나 교실에서 수업하는 모습은 사진으로 안 남습니다. 애써 남겨 놓기에 함께 공원이나 길을 거니는 모습이라든지 학교 골마루에서 달리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 사이에서 살갑고 사랑스레 흐르는 이야기는 ‘사진에 남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 사람이 애틋하고 살가우면서 사랑스레 주고받는 이야기는 모두 ‘마음에 남는 이야기’입니다.



“무지개를 찍었더니 같이 나와 버렸네! 게다가 입은 벌리고!” (22쪽)


“아, 그대로 있어. 먹는 모습 찍는 걸 좋아하거든.” (26쪽)


“알바는 오늘 쉴 수 있는 거지?” “응!” “그럼 오늘 하루는, 같이 사진 찍으면서 보내자. 걸어가는 모습도, 이야기하는 것도, 하늘도, 길을 가는 사람도, 고양이도.” (123쪽)



  끼니마다 사진을 찍어 놓아야 ‘오늘은 무엇을 먹었는가’를 알지 않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 꼬박꼬박 일기를 써 놓아야 ‘오늘 밥차림’을 되새길 수 있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거나 글로 써야 ‘기록’이지 않습니다. 흔히들, 사진이나 글로 남아야 비로소 나중에 되새길 수 있다고 하지만, 사진이나 글로 남길 수 있는 발자국은 우리 삶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조각일 뿐입니다. 동영상으로 하루 스물네 시간을 찍는다고 하더라도 몸짓은 찍어도 마음이나 사랑을 오롯이 담지 못해요. 가만히 드러누워서 마음으로 짓는 꿈을 동영상이 담을 수 없습니다.


  기록만 움켜쥐면 기록만 생각합니다. 사진만 바라보면 사진만 생각합니다. 내가 너를 애틋하게 여기면서 기쁘게 사귀고 싶다면, 사진에 대고 말하지 말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얘기해야 합니다. 내가 네 손을 잡고 싶으면, 사진을 보며 손을 잡으려 하지 말고, 만나자고 불러서 손을 살포시 잡아야 합니다.



‘이 즐거운 시간은, 끝이 있는 거구나. 더욱더, 소중하게, 오래오래 곱씹을 수 있도록, 보내야겠다.’ (79쪽)


‘아무도, 인구 30만인 이 지방도시에 남을 생각은 안 하는구나.’ (81쪽)


‘무서워. 아무 생각도 없었던 것들이. 난 어떻게 하지? 좌우간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나?’ (87쪽)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은 책이름에 적은 세 가지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엮어서 보여줍니다. 여고생 두 사람, 여고생 두 사람이 손에 쥐는 사진기, 여고생 두 사람이 풋풋하게 무르익으면서 철이 들 무렵 가슴속에 담는 꿈,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를 차근차근 엮습니다.



“아카리는 귀여워.” “응?”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똑같은 표정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언제나 즐거운 듯하고. 그런 감정이 안쪽에서 흘러넘쳐 빛나고 있어.” “설마, 그런.” (124∼125쪽)


‘이 작은 35mm 필름만이 아니라, 내 안에도, 이 그림을 새겨서 잊지 않도록 하자. 언제든지 오늘 아침을 떠올릴 수 있도록.’ (154쪽)


‘상대의 기억 속에 들어가고 싶은 기분. 유키의 앨범에 조금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이 장면을 잊고 싶지 않다.’ (171쪽)



  아름다운 하루이기에 언제나 마음에 새깁니다. 아름다운 하루로 여겨서 마음에 새길 만한 이야기이기에 사진으로도 찍습니다. 먼저 사진으로 찍는 ‘아름다운 하루’가 아닙니다. 먼저 ‘아름다운 하루’를 기쁘게 누리고 나서야 이러한 삶을 사진으로도 찍거나 글로도 씁니다.


  웃고 우는 삶이 있으니 ‘기록’이 있습니다. 기록이 먼저가 아닙니다. 기록이 모두 다일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역사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책은 조선 왕조 이야기조차 모두 보여주지 않습니다. 몇 가지 조각만 어렴풋이 보여줄 뿐입니다. 이러한 책에 안 실린 이야기는 훨씬 많고, 이러한 책이 굳이 담지 않으려고 한 수많은 여느 사람들 삶과 노래와 꿈과 사랑이 아주 깊고 넓습니다.


  마음으로 담은 사랑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음으로 가꾼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음으로 누린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음으로 아끼는 동무랑 이웃이랑 곁님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4348.8.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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