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는 부끄럼쟁이
오장환 지음, 도종환 엮음, 곽명주 그림 / 실천문학사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시를 사랑하는 시 57



포근한 마음을 꿈꾸는 노랫가락

― 부엉이는 부끄럼쟁이

 오장환 글

 도종환 엮음

 곽명주 그림

 실천문학사 펴냄, 2014.9.15.



  어버이가 밥을 지으면서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은 밥 익는 냄새를 큼큼 맡으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가 빨래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은 마당에서 신나게 뛰놀면서 조잘조잘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가 밥을 지으면서 투덜거리거나 골을 부리면, 아이들은 밥을 먹는 자리에서 주눅이 들거나 쭈뼛거립니다. 어버이가 빨래나 청소를 하면서 잔소리만 잔뜩 늘어놓으면, 아이들은 어버이가 내쏘는 잔소리를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 빨래 합니다. / 빨래 합니다. // 엄마는 내 옷, / 나는 풀각시 / 시집가는 때때옷 ..  (빨래)



  오장환 님 동시집 《부엉이는 부끄럼쟁이》(실천문학사,2014)를 가만히 읽습니다. 동시집인 만큼 어린이가 읽도록 쓴 시입니다. 누구보다 어린이가 즐겁게 읽으면서 마음밭에 생각 씨앗을 곱게 심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쓴 시입니다.


  이 동시집에 깃든 동시는 일제강점기에 썼겠지요. 이웃나라 군홧발에 짓밟힌 아이들한테 새로운 꿈을 심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썼겠지요.


  아픈 아이들한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총칼을 앞세워 쳐들어온 사람들하고 총칼로 맞서서 싸우자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요? 아니면, 총칼을 모두 내려놓고 사이좋게 이웃이나 동무가 될 수 있는 길을 밝혀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요?



.. 봉사 씨는 / 톡, 톡, 튀어 / 땅으로 떨어졌었어요. / 올여름에 / 빨간 꽃이 다시 피려고 / 한겨울을 / 땅속에서 지냈답니다 ..  (봉사꽃)



  사랑은 언제나 사랑을 낳습니다. 꿈은 언제나 꿈을 낳습니다. 콩씨를 심으니 콩이 자라고, 팥씨를 심으니 팥이 자랍니다. 민들레씨가 퍼지면 민들레가 새로 돋고, 봉숭아씨가 퍼지면 봉숭아가 새로 돋지요. 그러니까, 미움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미움이 자랍니다. 따돌림이나 괴롭힘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따돌림이나 괴로움이 자라요. 전쟁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마땅히 전쟁이 불거지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아이들 마음에는 입시지옥에 얽매이는 이야기가 자랍니다.



.. 개똥불은 / 초롱에 불을 밝히고 / 메뚜기 새끼, 불빛 찾아 나온다. / 올챙이는 헤엄 배우고 / 어린 개구리가 / 이 논, 저 논, 건너뛰어도 / 개굴개굴, 점잖은 개구리는 / 울기만 한다 ..  (여름밤)



  스스로 겪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추위나 더위도 스스로 겪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기쁨이나 슬픔도 스스로 겪을 때에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웃음이나 눈물도 스스로 겪기에 비로소 알 수 있어요.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눈부신 별빛은 우리가 스스로 바라볼 때에 알 수 있습니다. 깜깜한 밤이 없는 하늘도 스스로 바라볼 때에 알 수 있습니다. 조용하게 부는 산들바람도 스스로 쐬어야 알 수 있고, 거세게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도 스스로 맞아야 알 수 있습니다. 번갯불을 보지 않고서 번갯불을 알 수 없고, 개똥불을 만나지 않고서 개똥불을 알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이 스스로 겪거나 만나거나 마주할 만한 삶을 헤아려서 동시라는 이야기를 엮습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스스로 가꾸거나 일굴 만한 아름다운 삶을 헤아려서 동시라는 노래를 엮습니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동시를 쓰고, 미움이 아닌 사랑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동시를 씁니다.



.. 돌이는 숨바꼭질 하느라고 화초밭에 엎드렸다가 벌한테 쏘여도 아무 소리도 안 했습니다. 그렇지만 순이가 찾아내니까 으애― 하고 울었습니다 ..  (숨바꼭질)



  일제강점기에 동시를 쓴 오장환 님은 ‘으애―’라든지 ‘조―그마하게’처럼 글을 씁니다. 이런 글투는 일본 글투입니다. 한국사람은 이렇게 글을 쓰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이라면 ‘으애―’가 아닌 ‘으앵’이나 ‘으애앵’이라고 말을 하면서 글을 쓰고, ‘조―그마하게’가 아닌 ‘조그마하게’나 ‘조오그마하게’라고 말을 하면서 글을 씁니다.


  아무래도 예전에는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으로서 씩씩하게 서기 어려웠으니 이 같은 말투가 동시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구나 싶습니다. 《부엉이는 부끄럼쟁이》는 자료집으로 내는 책이 아닌, 오늘날 어린이한테 읽히려고 새로 엮어서 내놓은 책인 만큼, 이 같은 대목은 손질하거나 꼬리말을 붙여서 알려주어야지 싶습니다.



.. 누나야, 편지를 쓴다. / 뜨락에 살구나무 올라갔더니 / 웃수머리 둥구나무, / 조―그만하게 보였다. / 누나가 타고 간 붉은 가마는 / 둥구나무 샅으로 돌아갔지 ..  (편지)



  포근한 마음을 꿈꾸는 노랫가락으로 동시를 씁니다. 따스한 마음을 바라는 노랫가락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도, 아이가 어버이한테 알려주는 말도, 언제나 포근하거나 따사롭게 흐릅니다.


  어버이는 사랑을 물려주려는 뜻으로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는 사랑을 물려받으려는 뜻으로 태어납니다. 어버이는 사랑을 베풀며 아이를 돌봅니다. 아이는 사랑을 고이 받으며 씩씩하게 자랍니다.


  쓸쓸하거나 슬프거나 아픈 아이들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손길은 바로 사랑입니다. 배고프거나 고단하거나 힘겨운 아이들 몸을 보살필 수 있는 손길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사랑스레 말 한 마디를 들려주고, 사랑스러운 몸짓으로 밥을 차립니다.


  말치레로 꾸미는 거짓스러운 사랑이 아닌, 가슴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사랑이 되어 함께 누리는 동시를 쓸 때에 즐겁습니다. 우리는 시인이 아니어도 시를 써서 아이와 함께 나누는 어버이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시를 쓰듯이 말을 하는 어른입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노래하듯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4348.5.8.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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