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26] 마른천



  아이들을 씻긴 뒤에 마른천으로 몸을 닦습니다. 몸에 묻은 물기는 마른천으로 훔칩니다. 햇볕에 잘 말려서 보송보송한 천으로 몸을 닦으면 햇볕을 듬뿍 머금은 냄새가 살포시 퍼지고, 바람내음이 함께 퍼집니다. 빨래를 널어서 말리면, 햇볕과 바람이 찾아들어 보송보송하게 해 주기에, 마른천을 손에 쥐면 두 가지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집에서는 ‘마른천’이라는 낱말을 써도, 바깥에 나가면 이 낱말이 아닌 다른 낱말을 듣습니다. ‘수건·손수건·발수건’이라는 낱말을 들어요. ‘수건(手巾)’이라는 낱말은 “물을 닦는 천”을 가리킵니다. 이 한자말에서 ‘巾’은 “천”이나 “수건”을 뜻한다고 하는데, 이 한자를 ‘수건 건’이라고 가리킨다면 아주 얄궂습니다. ‘巾’이 ‘수건 건’이면, ‘수건’이라는 낱말은 “수수건”을 뜻하는 셈이고, 다시 “수수수건”이나 “수수수수건”이 되는 꼴이니까요. 게다가, ‘손 수(手)’라는 한자이니 ‘발수건’이나 ‘손수건’처럼 쓰는 말도 얄궂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앞서도 ‘수건·손수건·발수건’이라는 낱말이 너무 얄궂어서 도무지 쓸 수 없었고,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아이들한테 이런 낱말을 차마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손 닦는 천’이나 ‘발 닦는 천’이라 말하고, 여느 때에는 ‘마른천’이라고 말합니다. 짧게 줄이면 ‘손천·발천’으로 쓸 만할 텐데, 한국에서 수많은 어른들은 왜 이런 겹말을 아무렇지 않게 그냥 쓸까요? 왜 이 낱말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까요? 4348.5.7.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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