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89] 마을이란

― 바라보는 길대로



  마을은 한두 사람 손으로 가꾸지 않습니다. 마을은 여러 사람 손으로 함께 가꿉니다. 한 사람 손으로 가꾸는 삶터는 보금자리입니다. 내 보금자리라면 내 손으로 가꾸고, 우리 보금자리라면 곁님과 아이와 내 손으로 가꿉니다.


  올해 첫무렵에 마을 뒤쪽 비탈밭에 햇볕전지판이 잔뜩 들어섰습니다. 두 달 남짓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끄러운 쇳소리가 나더니, 꽤 넓다랗구나 싶은 자리에 이런 시설이 들어섭니다. 이렇게 햇볕전지판이 크게 하나 생긴 뒤 다시 한 달이 지나니 옆쪽 비탈밭에도 새로운 햇볕전지판이 들어서려 합니다.


  마을 어르신이 땅을 내놓았으니 군청에서든 전기회사에서든 햇볕전지판을 땅에 박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을사람들 뜻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땅임자가 땅을 팔겠다고 하니 땅임자 마음입니다. 땅임자가 더는 밭으로 일구지 않겠다고 하니 햇볕전지판을 박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설을 마을에서 거리끼지 않고 합니다. 이제 이 마을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앞으로 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한 분씩 더 저승길로 떠나고 빈집이 늘면, 다른 비탈밭도 이렇게 햇볕전지판 시설로 바뀌어야 할까요. 아니면,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도시사람한테 이 땅을 내주어 집을 새로 짓고 가꾸면서 살도록 해야 할까요.


  나무를 심은 자리는 흙이 살아나지만, 시멘트를 들이붓거나 시설을 박은 자리는 흙이 죽습니다. 그대로 묵히는 밭은 흙이 기름지게 거듭나지만, 비닐을 씌우거나 시설을 박은 자리는 흙이 살아날 길이 막힙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먼 앞날을 내다보거나 바라보지 않는다면, 마을에 함께 깃드는 사람은 먼 앞날을 그릴 수 없습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오늘 이곳을 제대로 살펴보거나 헤아리지 않는다면, 바로 마을사람 스스로 맑으면서 밝은 바람을 마실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높은 학교를 모두 마치고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시골에 남은 늙은 어버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가요? 4348.4.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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