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놀부전 - 新 고전열전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90



‘새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삶’

― 놀부전

 고우영 글·그림

 애니북스 펴냄, 2008.12.26.



  고우영 님이 새롭게 빚은 만화책 《놀부전》(애니북스,2008)을 읽습니다. 우리는 흔히 ‘흥부전’으로만 알고, ‘흥부 이야기’만 생각하지만, 고우영 님은 흥부 이야기에 가려진 놀부 이야기를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새로운 만화를 빚습니다.


  흥부 이야기는 무엇이고, 놀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흥부는 어떤 삶을 누렸고, 놀부는 어떤 삶을 누렸을까요? 흥부는 그저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었을까요? 놀부는 마냥 마음씨가 모진 사람이었을까요? 흥부 이야기는 어떤 눈길로 바라본 이야기일까요? 놀부 이야기라면 우리는 어떤 눈길로 바라볼 만할까요?



- “이 봐. 엄마. 새 꽃을 꺾었지. 그리구 까마중 먹어 엄마. 있잖아, 접때 엄마 묻던 날, 엄마 줄려구 까마중 많이 땄었는데, 놀부 짜식이 깽깽거려서 내가 콱 먹어 버렸다. 화가 나서 그랬지 뭐.” (23쪽)

- ‘바보 같은 기집애. 어쩌자고 그 험한 산을 저 혼자서 다녔다는 거야! 바보 같은 기집애. 제, 그 작은 몸으로 엄마 무덤을 덮어서 비를 가리겠다는 거야? 바보 같은 기집애! 제까짓게 덜컥 감기에나 걸리지 별 수 있겠어?’ (43쪽)





  고우영 님이 빚은 만화책에는 놀부와 놀순이가 나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시골일을 하는 놀부와 놀순이가 나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사람들이 흔히 듣거나 아는 흥부 이야기에 ‘흥부가 하는 일’은 제대로 안 나옵니다. 흥부가 흙을 짓거나 가꾸는 이야기라든지, 흥부가 비탈밭을 일군다거나 기름진 논밭을 가꾸려고 힘쓰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비다리를 고친 흥부 이야기는 들을 수 있으나, 놀부와 흥부를 낳은 어버이 이야기는 들을 수 없습니다. 놀부와 흥부 사이에 다른 형제나 누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같은 이야기는 들을 수 없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는 어떤 삶을 지었을까요. 두 아이 어버이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요. 왜 큰아들 놀부는 커다란 집과 너른 들을 건사하면서 살고, 작은아들 흥부는 보잘것없는 집에 땅뙈기도 없이 살까요. 우리는 이 수수께끼를 어느 만큼 헤아리거나 살피면서 두 사람 이야기를 들여다볼까요.



- “저희들이 할 테니까, 주인님은 좀 쉬십시오.” “그런 소리들 말게. 신성한 근로의 즐거움을 자네들만 독차지하려는 거냐?” “남들 보기에 뭣해서 그럽니다.” “게으름 피우는 것도 하늘에 죄 짓는 일이 된다네.” (84쪽)

- 땅문서가 건너가고, 흥부는 신이 났다. “너희들 어딜 가니?” “읍내에 갑니다.” “거긴 뭣하러?” “독립 기념으로 자축파티를 하러 갑니다.” (91쪽)




  우리는 흥부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익히 들은 흥부 이야기는 참말 흥부 이야기가 맞을까요? 우리는 놀부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으레 들은 놀부 이야기는 참으로 놀부 이야기가 맞을까요?


  놀부와 흥부는 형과 동생이라 하는데, 두 사람은 왜 따로 지내면서 한 사람은 굶고 한 사람은 안 굶을까요. 한 사람은 왜 아이를 안 낳고 한 사람은 왜 아이를 자꾸 낳을까요.


  놀부와 흥부를 낳은 어버이는 두 아이를 가르치거나 기를 적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합니다. 흥부는 형 놀부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놀부는 동생 흥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둘은 서로 아낄 줄 모르는 사이일까요, 아니면 마음으로 깊이 아끼는 사이일까요? 우리가 읽거나 듣는 ‘흥부 이야기’에 가려진 깊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잊거나 잃은 ‘놀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요? 놀부와 흥부라는 두 사람 발자취를 떠나,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지거나 어깨동무하는 사랑 이야기를 잊거나 잃지는 않았을까요?



- “하여간 비닐재배 그거 우리도 해 볼 만 하던데요?” “쏴랍! 쌰꺄!” “엄동설한에도 시금치, 파, 상치, 깻잎, 막 키워서 시장으로 반출시켜요.” “스키야! 원래 식물이란 햇볕을 받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따뜻한 계절에 자라야만 사람 몸에 이로운 거야!” “그러나, 비닐 재배, 저 사람들, 눈부신 흑자를 올리고 있던데요?” (134쪽)

- “우리야 배가 좀 고플 뿐이지, 자유가 있잖아! 이 보라구! 청풍 맑은 집 속에 아이들과 함께 편히 누워 있잖소?” “편해요?” “편하지! 마음이 편하니 몸도 편하고 몸이 편하니 말도 편하다.” “아이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마음이 편해요?” “말이 그렇다는 것 아닌가!” (157쪽)





  고우영 님이 빚은 《놀부전》에 나오는 놀부는 착하면서 듬직합니다. 그저 시골내기로서 착하면서 듬직합니다. 만화책 《놀부전》에 나오는 흥부는 약삭빠르면서 못 미덥습니다. 《놀부전》에 나오는 놀부는 온 집안을 두루 살피면서 깊이 마음을 쓸 줄 알고, 흥부는 집안일에는 젬병일 뿐 아니라 노닥거리기만 즐길 뿐입니다. 어버이가 힘껏 일군 땅이 넓다 보니 놀부는 이 땅을 잘 건사하려고 마음을 쓰는데, 흥부는 넉넉한 삶을 탱자탱자 보내려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놀부는 차츰 걱정이 늘어납니다. 아버지를 걱정하고 어린 동생을 걱정합니다. 놀부는 착한 마음이지만 걱정이 늘고 느는 삶이 됩니다. 흥부는 바보스럽지만 걱정이 없습니다. 땅이고 돈이고 털어먹기 일쑤이지만 언제나 걱정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손에 흙을 안 묻힐 생각입니다. 약삭빠르게 머리를 쓰면서 살 생각입니다. 흥부한테는 걱정이 없고, 걱정이 없는 만큼 이웃이나 동무나 형이나 누이를 생각하는 마음까지 없습니다.



- “아, 문 열어! 문!” “어떤 개망나니 같은 놈이 와서 무조건 문을 열라는 거야? 너는 예의도 범절도 없냐?” “아쭈 아쭈? 요놈 보게? 넌 아래위도 없냐?” “나라에는 왕이 주인이요, 집에서는 가장이 주인이다! 나는 이 집의 가장이므로 이곳의 주인이다. 너는 뭐냐?” (184쪽)

-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을 이렇게 알뜰히 지키며 가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큰아들은요, 오늘날 촌놈 농사꾼 바보 얼간이가 되어 초가집에서 푸성귀 먹고 삽니다.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사치와 낭비만 일삼던 둘째 놈은요, 형이 베풀어 준 도움 속에서 나태하게만 살더니 저런 갑부가 되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예? 아버지. 동생이 잘 사는 것이 배가 아파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아픕니다만, 허나 제가 싫은 것은요, 어째서 일만 하던 개미는 초라해지고, 깽깽이 켜던 여치는 얼어죽지 않고 아방궁에 살게 됩니까?” (188쪽)




  걱정이 많던 놀부는 《놀부전》 끝자락에서 걱정을 비로소 털어냅니다. 마음속에 깊이 또아리를 틀었던 걱정과 시름을 말끔히 털어냅니다. 바야흐로 놀부는 시골에서 수수하게 삶을 사랑하는 투박한 시골내기로 나아갑니다. 흥부는 흥부대로 노닥거리는 재미로 죽 나아갑니다. 흥부한테는 ‘죽은 어버이와 누이’ 생각이 없고, ‘시골에서 흙을 파는 형’ 생각도 없습니다. 흥부는 제 꾀를 잘 살린 대로 어마어마한 돈을 누리고, 흥부네 아이들은 버릇없이 큽니다.


  ‘원작’과 대면 여러모로 비틀거나 고친 《놀부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새롭게 읽어서 새롭게 지은 이야기라고 해야 더 알맞으리라 느낍니다. 시골지기 놀부와 도시내기 흥부를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멋스럽게 빚은 만화책인 《놀부전》이라고 느낍니다.


  놀부는 늘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면서 ‘삶찾기’로 나아갑니다. 흥부는 늘 꾀와 꾀를 거듭하면서 ‘삶놀이’로 나아갑니다. 어느 쪽이 낫거나 나쁘거나 궂거나 좋지 않습니다. 그저 ‘다른’ 삶입니다.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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