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290) 경우 1


책을 낸다는 일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터이나, 내 경우에 있어서는 내 글의 모양은 이런 것이요 혹은 나는 바로 이런 생각과 꿈을 가지고 있소

《김규동-어머님전 상서》(한길사,1986) 머리말


 내 경우에 있어서는 이런 꿈을 가지고 있다

→ 나한테는 이런 꿈이 있다

→ 나는 이런 꿈이 있다

→ 나는 이런 꿈을 꾼다

 …



  이 보기글에 나오는 ‘-에 있어서는’은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먼저 이 대목을 덜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경우(境遇)’인데, “내 경우에는”은 “나는”이나 “나한테는”으로 고쳐쓰면 됩니다.


 경우가 밝다 → 셈이 밝다 / 생각이 밝다 / 철이 들다 / 슬기롭다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마라

→ 자리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마라

→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마라

→ 올바르지 않은 짓은 하지 마라

→ 철없는 짓은 하지 마라


  한국말사전에서 ‘경우(境遇)’라는 한자말을 찾아보면 “사리나 도리”로 풀이합니다. ‘사리(事理)’는 “일의 이치”라 하고, ‘도리(道理)’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이라 합니다. ‘이치(理致)’는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 도리에 맞는 취지”라 하고, ‘조리(條理)’는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라 합니다. 여러모로 살피면 ‘경우’란 ‘바른길’이라든지 ‘앞뒤가 맞는 갈피’라고 할 만합니다. 짧게 간추리면 ‘셈’이나 ‘철’이나 ‘슬기’입니다.


  ‘경우’가 밝다면, 셈이나 생각이나 밝거나 철이 들거나 슬기롭다는 소리입니다. ‘경우’에 어긋난다면, 자리에 어긋나거나 어리석거나 올바르지 않거나 철없다는 소리입니다.


 만일의 경우 → 만일 / 어쩌다가 / 때로

 대개의 경우 → 대개 / 흔히 / 으레

 어려운 경우에 처하다 → 어렵다 / 어려워지다


  ‘경우’는 ‘조건·형편·사정’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쓴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보기글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런 뜻으로 쓰는 ‘경우’는 군더더기입니다. ‘-의 경우’ 꼴로 쓰는 말투는 일본 말투이기도 합니다. 4337.7.19.달/4348.3.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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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낸다는 일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을 터이나, 나는 내 글은 이런 모습이요 또는 나는 바로 이런 생각과 꿈이 있소


‘의미(意味)’는 ‘뜻’으로 손보고, “내 글의 모양(模樣)은 이런 것이요”는 “내 글은 이런 모습이요”로 손봅니다. ‘혹(或)은’은 ‘또는’이나 ‘아니면’으로 손질하고, “이런 생각과 꿈을 가지고 있소”는 “이런 생각과 꿈이 있소”로 손질합니다.



경우(境遇)

1. 사리나 도리

   - 그는 늘 경우가 밝다 /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마라

2. 놓여 있는 조건이나 놓이게 된 형편이나 사정

   - 만일의 경우 / 대개의 경우 / 어려운 경우에 처하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395) 경우 2


대개의 경우 엄마들은 직장일, 아이의 양육, 가족 문제 그리고 집안일과 관련하여 이중의 부담을 지는 아주 힘든 경우에 처하게 된다

《안드레아 브라운-소비에 중독된 아이들》(미래의창,2002) 51쪽


 대개의 경우

→ 흔히

→ 으레

→ 거의 모든

 아주 힘든 경우에 처하게 된다

→ 아주 힘들다

→ 아주 힘들기 일쑤이다

 …



  ‘대개(大槪)의 경우’ 같은 말투는 일본 말투입니다. 적어도 ‘대개’로만 적어야 할 텐데, 한자말 ‘대개’는 한국말로 ‘거의 모두’를 가리키고, ‘흔히’나 ‘으레’로 손보아야 합니다. “아주 힘든 경우에 처하게 된다”도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이때에는 번역 말투입니다. “아주 힘든 자리에 놓인다”는 뜻일 텐데, “아주 힘들다”다 “아주 힘들기 일쑤이다”나 “아주 힘들고 만다”나 “아주 힘들기 마련이다”쯤으로 손질해 줍니다. 4338.2.27.해/4348.3.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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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어머니들은 바깥일, 아이 키우기, 식구 돌보기에 집안일까지 얽혀 겹겹이 짐을 지면서 아주 힘들다


“대개(大槪)의 경우”는 “흔히”나 “으레”로 손질하고, ‘직장(職場)일’은 ‘바깥일’로 손질하며, “아이의 양육(養育)”은 “아이 키우기”로 손질합니다. “가족(家族) 문제(問題)”는 “식구 돌보기”로 손보고, ‘-과 관련(關聯)하여’는 ‘-과 얽혀’로 손보며, “이중(二重)의 부담(負擔)을 지는”은 “겹겹이 짐을 지는”이나 “여러 겹으로 짐을 지는”으로 손봅니다. “아주 힘든 경우에 처하게 된다”는 “아주 힘들다”나 “아주 힘들기 일쑤이다”로 다듬어 줍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523) 경우 3


우리 나라의 경우 사정이 여의치 않다

《박병상-녹색의 상상력》(달팽이,2006) 7쪽


 우리 나라의 경우

→ 우리 나라는

→ 우리 나라에서는

 …



  ‘경우’를 붙인 보기글인데, 아무래도 군말입니다. ‘-는’이나 ‘-에서는’ 같은 토씨를 알맞게 붙이면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만큼은”이라든지 “우리 나라에서는 아무래도”라든지 “우리 나라는 참으로”처럼 꾸밈말을 보태어도 잘 어울립니다. 4339.3.12.해/4348.3.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 나라에서는 여러모로 어렵다


한자말 ‘사정(事情)’은 “일의 형편이나 까닭”을 뜻한다 하고, ‘여의(如意)하다’는 “마음먹은 대로 되다”를 뜻한다 합니다. 그러니까,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다”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좋지 않다”나 “여러모로 힘들다”나 “그다지 알맞지 않다”나 “퍽 어렵다”쯤으로 다듬을 만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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