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내가 쓰는 글은 ‘한국말사전 새로 쓰기’인 터라, 나는 내가 글을 쓰면서 ‘내가 다루는 모든 낱말’을 언제나 한국말사전에서 새롭게 찾아본다. 아주 자주 쓰는 낱말조차 으레 다시 찾아보면서 사전을 읽는다. 이러다 보니, 나는 나 스스로 아무 낱말이나 쓰지 못한다. 내가 쓸 낱말을 나 스스로 아주 꼼꼼하게 살펴서 빈틈없이 가린다. 그러나 한꺼번에 모두 알아차리지는 못해서, 으레 ‘아차, 예전에 쓴 그 낱말을 내가 잘못 알고 썼구나’ 하고 뉘우치기 일쑤이다.


  글 한 줄을 쓰려고 책 다섯 권을 읽는다고 하는 분이 있었는데, 나로서는 말 한 마디를 하려고 사전 다섯 가지를 살핀다고 할 만하다. 그러면, 말 한 마디를 하려고 사전을 다섯 가지 살피는 일은 힘이 들까? 말 한 마디 때문에 사전을 다섯 가지 살필 뿐 아니라, 때로는 열 가지나 스무 가지 사전을 뒤지기도 해야 하고, 낱말 하나를 쓸까 말까 망설이면서 여러 달을 보내기도 하는데,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은 번거롭거나 성가실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여길는지 모르나, 나로서는 낱말 하나를 바로세워서 쓰는 일이 힘들거나 번거롭거나 성가신 적이 없다. 그동안 제대로 몰라서 옳게 못 쓴 말마디를 알면, 맨 먼저 눈이 확 뜨이면서 기쁨으로 넘치고, 다음으로는 ‘아이고, 그동안 잘못 쓴 글은 어쩌나’ 싶어서 부끄럽다. 이러고 나서 ‘앞으로는 더 찬찬히 살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우리가 저마다 숲집을 가꾸어 삶을 손수 짓는다면, 어떤 말마디를 골라서 글을 쓰는가를 놓고 걱정하거나 망설일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오늘날 우리는 거의 다 ‘밥과 옷과 집’을 돈으로만 풀면서 살기 때문에, 학교를 오래 다니고 책도 많이 읽으며 이래저래 책상맡에서 ‘글 만들기’를 한다고 느낀다. 이러니, 책상맡에 온갖 사전을 수십 수백 가지를 놓고, 수천 수만 가지에 이르는 책을 돌아볼밖에 없다.


  먼 옛날부터 지구별 누구나 스스로 숲집을 가꾸어 살던 사람은 사전도 책도 없이 수많은 이야기를 날마다 즐겁게 지으면서 웃음노래를 누렸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레 숲집을 가꾸는 길을 생각하고 찾는다. 사전도 책도 기대지 않으면서 글노래를 부르는 길을 헤아려 본다. 4348.3.1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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