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린네 15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77



너는 부자라서 네 꿈을 이루니?

― 경계의 린네 15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25.



  우리 집 방바닥에 있던 장난감을 아이들더러 손수 치우도록 시킵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한숨을 쉬었지만, 내가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면서 어떤 것을 치워야 하는지 알려주니 더 군말을 하지 않고, 어느덧 ‘장난감 치우기’를 재미난 놀이로 삼습니다. 그래,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모두 놀이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갖고 놀다가 저것을 갖고 노느라 어느새 방바닥은 온갖 장난감이 가득한데, 이렇게 늘어놓은 장난감을 하나하나 만지면서 제자리로 갖다 놓는 몸짓도 멋진 놀이입니다.


  방바닥은 어느새 말끔합니다. 걸레질을 여러 차례 하니, 봄을 맞이한 우리 집이 한결 빛나는구나 싶습니다. 나는 걸레질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은 ‘큰 장난감 통’을 하나 들고 마당으로 나가서 놀겠노라 합니다. 날이 폭하고 바람이 싱그러워서 마당에 천막을 펼쳤어요. 아이들은 마당에 펼친 천막에 들어가서 오순도순 놉니다.



- “정말로 아주 강력해. 그러고 보니 확실히, 학교의 공기가 아주 맑아졌고, 부유령도 하나 안 보여.” “즉 렌게가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란 말이지?” “그래. 내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만 빼면.” (14쪽)

- ‘어떻게 된 거지? 스트랩이 사기를 빨아들여서 영들을 끌어들일 줄 알았는데.’ “이건. 이방에 가득 차 있던 가난의 기운?” “뭐야?” “그렇구나. 그래서 영들이, 슬쩍 들여다보더니 질린 얼굴로 나가 버린 거야.” (41쪽)





  겨울이 끝나며 찾아오는 봄은 따스합니다. 새벽이나 밤에 부는 바람은 쌀쌀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주 보드라우면서 포근하구나 싶은 바람이 가득합니다. 봄이네, 봄이로구나, 봄이야, 하고 생각하다가, 이 봄은 어디에서 왔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늘이 베푼 선물일까요? 바람이 내미는 선물일까요? 지구별과 해님이 나누어 주는 선물일까요?


  우리 집 큰아이가 ‘봄은 언제 와요?’ 하고 물을 적에 ‘네가 봄을 부르면 봄이 오지.’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요, 봄은 나 스스로 봄과 같은 마음이 되어 봄과 같은 노래를 부를 때에 옵니다. 봄은 내가 스스로 봄과 같은 숨결이 되어 봄과 같이 웃음을 지을 때에 옵니다.


  걸레질을 마친 뒤 기지개를 켭니다. 기지개를 켜고 주전부리를 그릇에 담습니다. 그릇에 담은 주전부리를 들고 아이들한테 갑니다. “천막 열어 주셔요.” “네.” “자, 받으셔요.” “고맙습니다.” 두 아이는 마당에 펼친 천막에서 오순도순 놀이꽃과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 ‘아니, 뭣보다 이 두 짠돌이가 돈으로 경쟁을 하다니! 속삭임 공주가 그렇게까지 할 만큼 명품이란 말인가?’ (52쪽)

- ‘바보지만 부잣집 딸인 아게하는, 언제나 반 아이들을 몰고 다녔다.’ … “렌게는 옛날부터 왠지 나를 바보 취급했지.” “왠지고 나발이고 들어 보면 몰라?” “들어 보니 그냥 네가 바보네.” “흥, 아니거든?” “아니야?” “렌게는 가난 때문에 성격이 꼬인 거야.” “아냐, 바보야.” “그보다 공부를 잘해서 사신 제일고 합격은 맡아놨던 렌게가, 이런 데서 뭘 하는 거니?” (71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이 빚은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5) 열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열여섯째 권도 잇달아 나옵니다. 아직 일본에서 나온 책을 따라잡지 못하지만, 이렇게 다음 권을 꾸준히 만날 수 있어 반갑습니다.


  《경계의 린네》 열다섯째 권에서는 ‘부잣집 딸’과 ‘가난뱅이네 딸’ 사이에서 맞물리는 실타래 이야기가 흐릅니다. 부잣집 딸은 다른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제 하고픈 일을 하고, 가난뱅이네 딸은 다른 걱정이 많은 채 제 하고픈 일을 못합니다.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픈 일을 못 할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부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픈 일을 할까 궁금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꿈을 못 키우고, 부자인 사람은 꿈을 키우는지 궁금합니다.



- “정신이 들자 다시, 벤치에 앉아 있었어. 하지만, 어쩐지 주위가 온통 흐릿하고, 부원들도 모르는 사람뿐이었지. 나는 어떻게 된 걸까? 이긴 것도 꿈이었을까?” (127쪽)

- “좋아하는 사람을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말고,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전해 주는 게 좋아.” “고마워. 용기가 생겼어.” (132쪽)





  부자인 사람은 돈으로 여러 가지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으로 여러 가지를 못 합니다. 부자인 사람은 돈으로 여러 놀이를 즐깁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으로는 여러 놀이를 못 즐깁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습니다. 부자인 사람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도 즐길 만한 놀이를 누립니다. 부자인 사람은 돈이 없을 적에 즐길 만한 놀이를 모릅니다.


  소꿉놀이를 할 적에 돈이 들지 않습니다. 자리에 누워 꿈을 꿀 적에 돈이 나가지 않습니다. 공책에 글을 쓸 적에 돈이 들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달려 나들이를 다녀올 적에 돈이 들지 않습니다.


  돈이 있다면 더 멋진 사진기를 장만할 수 있을 텐데, 사진기가 고급이어야 ‘고급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좋은 종이나 붓을 장만하기 어려울 텐데, 낡은 종이나 붓이 있기에 그림을 못 그리지 않습니다.



- “돈을 벌다니, 사기신 일을 하러?” “당연하잖아! 정체를 숨기기 위해 동전지갑의 전재산 700엔마저 날렸는데!” “700엔이라는 거액과 바꿔서라도 정체를 숨기고 싶었단 말인가.” (146∼147쪽)

- “오늘 속여도 내일은 들킬지 몰라. 그래도 들키기 싫은 거냐? 그렇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네 순수한 마음을 봐서.” (165쪽)





  부자라서 꿈을 이루지 않습니다. 꿈을 생각하기에 꿈을 이룹니다. 가난하기에 꿈과 멀어지지 않습니다. 꿈을 생각하지 않으니 꿈과 멀어집니다. 《경계의 린네》에 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꿈을 키웁니다. 돈으로 짓는 꿈이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꿈입니다. 어떤 물질이나 물건으로 키우는 꿈이 아니라, 즐겁게 어우러지려는 꿈입니다. ‘가난뱅이 린네’는 가난하니까 가난한 살림을 꾸리지만, 돈을 많이 모아서 동무들한테 기쁨을 베풀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동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기쁨은 돈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줄 압니다. 린네 곁에서 함께 어울리는 동무들도 이런 생각은 같아요. 돈을 쓴대서 더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돈을 안 쓴대서 덜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따사로운 마음이 반갑고, 넉넉한 품이 그립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손길이 고맙습니다.



- “후후, 하나하나라면 그렇지. 하지만 아이템이란 짜맞추기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 (169쪽)

- ‘동전지갑의 내 전 재산, 예산 700엔으로 이 정도의 장치를. 로쿠도 린네, 없는 살림 꾸리는 솜씨가 대단한걸.’ (176쪽)



  아이들은 키가 자랍니다. 아이들은 몸이 자랍니다. 아이들은 생각이 자랍니다. 아이들은 꿈과 사랑이 자랍니다. 어른인 우리들도 모두 아이였습니다. 어른인 우리들도 모두 키와 몸과 사랑과 꿈과 사랑이 자랐습니다.


  우리가 누릴 삶은 기쁨입니다. 야무진 살림꾼이 되든 헤픈 부자가 되든, 구두쇠 소리를 듣든 자선사업가 소리를 듣든, 우리는 기쁜 웃음꽃을 지으려는 길로 나아갑니다. 봄볕이 내리쬐는 하늘을 바라보고, 봄바람이 부는 들을 바라보아요. 도시에서도 밤하늘을 살펴 별빛을 찾아요. 길바닥 쪼개진 틈에서 돋는 풀꽃을 살피고, 나무마다 새로 돋는 겨울눈을 들여다봐요. 내가 선 이곳에서 오늘 하루를 스스로 알차게 가꾸는 마음이 되어요. 4348.3.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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