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함께 읽는 책



  만화책이든 동화책이든 문학책이든, 어느 책은 ‘표현이 너무 지나쳐’서 차마 아이한테 보여주기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싸움터를 아주 낱낱이 그리면서 죽거나 다치는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있어요. 살섞기를 낱낱이 보여주려고 하는 책도 있어요. 학교에서 괴로운 아이들을 보여주는 책이라든지, 동무끼리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있어요. 이런저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런저런 끔찍하거나 그악스럽거나 지나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아리송하곤 합니다.


  어느 책은 끔찍하거나 그악스럽거나 지나친 모습이 하나도 없이 아름다이 흐릅니다.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모습은 안 보여주면서 ‘함께 나눌 이야기’를 더욱 깊고 넓게 파고들면서 넉넉히 보여주는 책이 있습니다. 이때에 가만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이야기 하나’를 알려주려고 온갖 끔찍한 모습을 끌어들이는 책이 있고, ‘이야기 하나’를 나누려고 사랑스러우면서 따사로운 숨결을 풀어내는 책이 있으면, 어느 책을 ‘아이와 함께 읽을’ 만한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려주려고 싸움터에서 죽는 갖가지 끔찍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요. 전쟁터에서 사람이 얼마나 그악스럽게 뒤바뀌는지 보여주면서 총질과 칼질과 주먹질을 보여준다든지, 가시내를 괴롭히거나 들볶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아닌 평화로 삶을 짓는 사람들이 얼마나 착하고 참다운가를 보여주면서 ‘평화로 나아갈 때에 삶이 빛난다’는 이야기를 조용히 깨우칠 수 있습니다.


  ‘끔찍한 표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을 살피면서도 배울 만합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헤아려 보면, ‘끔찍한 표현’은 자꾸 더 ‘끔찍한 표현’으로 잇닿지 싶어요. ‘끔찍한 표현’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꾸 더 ‘끔찍한 길’로 가는구나 싶어요.


  문학은 어떠할 때에 문학일까 궁금합니다. ‘표현 기법’을 살리거나 북돋우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표현 기법에 얽매여 막상 ‘이야기’하고는 자꾸 멀어진다면, 이러한 문학은 어린이와 어른한테 얼마나 빛과 바람과 숨결이 될 만한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함께 나아갈 길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함께 지을 삶을 찬찬히 살필 줄 아는 어른문학이 되고 어린이문학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어린이책이면서도 어린이와 보기 힘든 책이 많고, 어른책이라지만 어린이와 함께 보면서 웃고 노래할 만한 책이 많습니다. 4348.2.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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