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책밭 가꾸기

35. 책을 읽는 고운 매무새



  나는 어릴 적에 놀면서 자랐습니다. 나는 어릴 적에 ‘학교에서 공부한 일’은 거의 안 떠오르지만, 동네에서 동무들과 실컷 뛰논 일은 거의 낱낱이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연을 날리려고 창호종이와 대나무살과 풀을 마련해서 집에서 한두 시간쯤 낑낑대면서 손수 만들었고, 연을 다 만든 뒤 실로 이어서 신나게 이리저리 달리면서 하늘로 띄우려고 했습니다. 제대로 만들었으면 높이 날면서 5층짜리 아파트 너머로 올라가고, 제대로 못 만들었으면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폭 처박힙니다. 골목에 자동차가 거의 없으면서 노는 아이들만 가득하니 연날리기를 하면서 거리낄 일이란 없습니다.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온통 연을 날리려고 달리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연날리기를 하며 힘을 쪽 뺐으면 딱지를 들고 나와서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쩌렁저렁 길바닥을 울리면서 칩니다. 해가 넘어가면 ‘밤에 하는 숨바꼭질’이 재미있어서 슬금슬금 밖에 모입니다. 으슥한 곳에 숨으면 으레 박쥐가 푸드득 날아올랐는데, 깜짝 놀라면서도 숨소리를 죽이고 술래 눈길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집과 동네에서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언제나 놀이에 폭 빠집니다. 수업을 할 적에는 교과서를 책상에 펴고 얼굴은 칠판을 바라보되, 마음은 꿈나라로 갑니다. 담임 교사가 신나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옵니다. 나는 내 꿈나라에 온마음을 쏟습니다. 하늘을 난다든지 괴물과 싸운다든지 씨름을 한다든지 달리기를 한다든지, 다음에 공놀이를 할 적에 이리저리 몸을 잘 놀려서 제대로 공을 차 넣어야겠다든지, 온갖 놀이만 생각합니다. 손가락을 꼬물꼬물 놀리면서 놀고, 연필로 공책 귀퉁이에 그림을 그리면서 놉니다. 이렇게 놀다가 들키면 골마루로 쫓겨나가 꾸지람을 받지만, 골마루에 나가서 두 손을 들고 꾸지람을 받아도 마음속으로는 놀이를 그립니다.


  오카다 준 님이 글을 쓰고 이세 히데코 님이 그림을 넣은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보림,2006)라는 책을 읽다가 “전에 살던 데는 보기에는 복닥복닥해도 다들 한 가족 같아서 마음이 편했어. 학교 끝나고 와도 외톨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지. 그랬는데 그 골목이 난데없이 사라진다는 거야. 이유는 나도 몰라. 아무튼 다 허물어 버린다고 해서 골목길 사람들은 죄다 뿔뿔이 흩어져 이사를 갔어(23쪽).” 같은 대목을 봅니다. 나도 이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내가 코흘리개 적부터 함께 뒹굴며 뛰놀던 동무들과 서로 헤어져야 했습니다.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한 집 두 집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재개발을 마치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간 집도 있으나, 우리 집은 예전 동네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나 푸름이 뜻하고 어른 뜻은 달랐을 테니까요. 나는 놀이동무를 다시 만나서 어울리고 싶지만, 어른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그러고 보면, 나라에서 ‘주택 재개발’을 한다거나 어떤 건물이나 공장이나 발전소 같은 곳을 큼지막하게 짓는다고 할 적에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묻는 일이란 없습니다. 나랏일을 하는 어른은 으레 어른끼리만 이야기합니다. 게다가, 재개발이 되는 동네에서 사는 어른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정책을 펴거나 개발을 밀어붙이는 어른은 책상맡에 땅그림을 펼치고 죽죽 금을 그어서 여기는 개발하고 저기는 남기고, 이런 투로 이야기할 뿐입니다.


  재개발을 하는 어른 가운데 ‘재개발 예정 지구’가 된 오래된 골목동네에서 사는 어른은 있을까요? 아마 없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동네를 내가 스스로 망가뜨리거나 허물 일은 없을 테니까요. 내가 안 살고 내 이웃이 안 살며 내 동무가 안 사는 동네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재개발 계획을 세워서 이러한 정책을 밀어붙인다고 느낍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지구별이 서로 사이좋게 어울리는 이웃이요 동무라 하면, 옆나라를 괴롭히려고 쳐들어가는 짓, 그러니까 전쟁이 터질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와 이웃이 사는 저 나라가 있으면, 두 나라는 그야말로 ‘이웃’일 테니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사랑하는 길을 갑니다. 이웃이니까요. 이웃이라면 한쪽이 가난할 적에 기꺼이 돕습니다. 이웃이라면 맞은편을 도우면서 돈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내가 받을 적에도 저쪽에서 돈이나 대가를 안 바라고, 내가 저쪽을 도울 적에도 돈이나 대가를 받을 마음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면서 ‘전쟁무기와 군대가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 하고 말하는 까닭은, 옆나라를 이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옆나라를 이웃으로 안 여기기도 하고, 우리와 이웃한 옆나라도 우리를 이웃으로 안 여기는 셈이에요. 그래서 남녘과 북녘은 서로 전쟁무기와 군대를 엄청나게 키우지요.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와 미국도 전쟁무기와 군대를 어마어마하게 키워요. 나라를 이끄는 어른들 마음속에는 ‘이웃’을 살피는 사랑이 없습니다.


  나는 어릴 적에 늘 신나게 뛰놀면서 개구진 놀이도 자주 했습니다. 온몸이 그예 땀으로 흥건히 젖으면 땀을 식히느라 나무 그늘에 드러눕기도 하고, 때로는 좀 드문 일이지만 교실이나 집으로 들어가서 낯과 손을 씻은 뒤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놀이를 쉬고 책을 읽을 적에 때때로 배가 살살 고프다고 느낍니다. 한창 뛰놀고 나서 책을 손에 쥐었으니 배가 고프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책을 손에 쥐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주전부리를 쥐고 싶습니다. 이때에 이런 모습을 둘레에서 다른 어른이 보면 늘 따끔하게 한마디를 합니다. 책을 읽을 적에는 다른 일을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를테면,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지 말라거나, 손에 먹을거리를 쥔 채 책을 읽지 말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손에 다른 것을 들면서 책을 쥐면 책이 지저분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다가 책에 무언가를 쏟아서 책을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밥이나 주전부리를 다 먹고 나서 책을 읽으라 했어요. 둘 모두 하고 싶어서 서운하지만, 이 말을 안 따를 수 없습니다. ‘안 흘릴 수 있는데!’ 하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어머니나 다른 어른이 없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책을 가지고 와서 한손에 주전부리를 쥐고 책을 읽습니다. 이러다가 으레 먹을거리를 책에 톡 떨어뜨립니다. 과자 부스러기를 흘립니다. ‘안 흘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안 흘리고 책을 함께 읽’은 적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어른이 된 오늘 곰곰이 돌아봅니다. 어른이 된 오늘 나는 한손에 책을 곱게 쥐고 다른 한손에 주전부리를 쥘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된 만큼 손이 크고 아귀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어른이 된 오늘은 ‘한손으로 책을 쥘 적에 책이 안 다치도록 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익혔습니다. 아직 어릴 적에는 손이 작고 아귀힘도 작습니다. 작은 손인데 책을 한손으로 쥐자면 으레 책이 다칩니다.


  한 번 다친 책은 옛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김칫국물이 묻거나 과자 부스러기가 박힌 책은 예전처럼 깨끗해지지 못합니다. 책을 책대로 아끼려면 책을 읽을 적에는 다른 것을 하지 않을 노릇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아 배가 고프구나’ 하고 느낀다면, 내가 손에 쥔 책에 제대로 빨려들거나 마음을 쏟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해요. 놀이를 할 적에 놀이에 모든 마음을 쏟아서 신나게 누리듯이, 책을 읽을 적에는 책에 모든 마음을 쏟아서 알뜰살뜰 누릴 노릇입니다.


  동무와 놀면서 자꾸 딴짓을 하면 동무는 서운하고 재미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한손을 딴 데에 보내면 책도 우리한테 서운해 하거나 재미없어 하리라 느낍니다. 책은 ‘죽은 물건’이 아닙니다. 책은 ‘숲에서 자란 나무’입니다. 숲에서 자란 나무가 모습을 바꾸어 ‘책’이 되어 우리한테 동무가 되어 줍니다.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면서 곱게 살찌우도록 돕는 기쁜 마음동무가 책입니다. 마음동무와 만날 적에는 오롯이 마음동무한테 사랑을 기울이면서 고운 매무새가 되어야 빙그레 웃으면서 책을 읽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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