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안 먹기’와 책읽기



  사람이 밥을 안 먹고 살아도 되면, 밥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 모두 사라진다. 사람이 밥을 안 먹고 살아도 되면, 집에는 부엌을 들이지 않기 마련이다. 이때 시골에서는 힘들게 논밭을 일굴 까닭이 없다. 이때 도시에서는 고단하게 회사를 다닐 까닭이 없다. 밥을 안 먹어도 되는데, 왜 논밭을 일구고, 왜 회사에 가서 돈을 벌어야 하겠는가?


  밥을 안 먹어도 되는 삶이라면, 아이들을 학교에 넣거나 학원에 보낼 까닭도 없다. 왜 그러하겠는가? 밥 때문에 마음이나 생각이나 머리를 쓸 일이 없으니, ‘먹고살(생계)’ 걱정이 아무한테도 없다. 이러한 삶이 되면, 어버이는 아이한테 ‘먹고살려고 흙을 일구는 일’이나 ‘먹고살려고 돈을 버는 일’을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이때 어버이는 아이한테 꿈과 사랑을 가르치면 된다. 스스로 삶을 짓고, 스스로 삶을 가꾸며, 스스로 삶을 노래하는 길을 몸소 누리면서 보여주면 된다.


  오늘날 지구별 현대 문명과 사회는 모두 ‘밥 먹는 문명’이지 싶다. 그래서, 지구별 모든 나라는 권력과 정치와 군대와 교육과 문화를 내세우지 싶다. 밥을 얻으려고 다투고, 밥을 가로채려고 싸운다. 밥을 더 가지려고 툭탁거리며, 밥으로 이웃을 종처럼 부리려고 윽박지른다.


  우주에서는 지구별처럼 밥을 먹지 않는다. 지구별 중력과 같은 데가 없기도 하고, 우주에 무슨 풀이나 고기가 물이나 불이 있겠는가. 지구별 몸으로 우주에 가면 ‘어쩔 수 없이 배고플’ 테니, 먹을거리를 챙기겠지만, 다른 우주에 있는 목숨이라면 ‘지구별 사람처럼 밥을 먹는 일’은 없으리라 본다. 지구별에서는 ‘밥을 지어서 먹는 삶’을 ‘문화’로 여기는데, 밥이란 문화이면서 쇠사슬(족쇄)이라고 느낀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얽어매는 쇠사슬이 바로 밥이라고 느낀다. ‘밥을 먹어야 해’ 하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밥을 먹는 몸으로 바꾸고, ‘밥을 먹으려면 뭣뭣이 있어야 해’ 하고 생각하면서 집안에 부엌을 두고 이 살림 저 살림을 늘린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어차피 먹는 밥이니 더 맛있게 먹어야지’ 하면서 이렇게도 꾸미고 저렇게도 손질한다.


  나는 ‘밥 먹는 문화’가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밥 먹는 일’은 나쁠 수 없다. 다만, ‘밥 먹는 일’을 생각하느라 정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일을 잊거나 잃지 않는가 돌아볼 수 있어야지 싶다. ‘밥 먹는 일’에 너무 많은 품과 겨를을 바치면서 막상 우리가 나누거나 즐기거나 일굴 아름다운 삶이나 사랑하고는 차츰 동떨어지거나 멀어지지 않는지 헤아릴 수 있어야지 싶다.


  밥을 먹는 까닭을 생각한다. ‘밥을 먹으려’고 밥을 먹지 않는다. 삶을 일구려면 몸을 움직여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하니 밥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맨 먼저 ‘삶 일구기(삶짓기)’이다. 삶을 일구려면 몸을 써야 하니까, 몸을 움직일 기운을 얻고자 밥을 먹는다고 할 만하다. 여기에서 하나 더 살펴야 한다. 삶은 몸으로만 짓는가? 마음은 무엇을 할까? 마음은 아무것도 안 할까? 생각으로는 무엇을 하는가?


  몸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른다. 마음이 시키지 않으면 몸이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까, 몸을 움직여서 삶을 일군다고 한다면, 마음이 몸한테 일을 시켜야 하는데, 마음이 몸한테 일을 시키려면 ‘어떤 일을 시킬는지 생각해야’ 한다. 마음이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몸한테 어떤 일도 못 시킨다.


  그러면, 실마리를 풀기 쉽다. 마음이 몸한테 일을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은 ‘어떻게 기운을 얻’는가? 마음도 밥을 먹어야 기운을 얻는가? 아니다. 마음은 밥을 안 먹는다. 마음은 오직 사랑을 먹는다. 마음은 오직 사랑을 먹으면서 꿈을 키운다. 마음은, ‘마음이 지은 꿈’을 몸을 움직여서 이루도록 일을 시킨다.


  차근차근 짚으면서 곰곰이 생각을 기울인다. 내가 할 일은 아주 쉽고 또렷하다. 나는, 마음이 사랑으로 꿈을 짓도록 일을 시키면 된다. 이 같은 일은 일이면서 ‘놀이’라 할 만하다. 내 몸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즐겁게 따르면 되고, 기쁘게 노래하면서 움직이면 된다.


  내 이웃과 동무가 ‘밥 안 먹는 삶(문화)’을 헤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다. 내 이웃과 동무가 ‘밥 짓고 차리고 치우고 하는 데에 들일 품과 겨를과 돈’ 모두를, 저마다 삶을 곱게 지어서 환하게 나누는 길에 쓰면 얼마나 멋스러울까 싶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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