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웃는 매미 문학동네 시인선 25
장대송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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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3



시와 텔레비전

― 스스로 웃는 매미

 장대송 글

 문학동네 펴냄, 2012.9.24.



  손가락을 움직여 또각또각 돌리면 텔레비전 화면이 바뀝니다. 손가락을 놀려 똑똑 단추를 누르면 텔레비전 화면이 움직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 있든 텔레비전이라는 기계를 두면 가만히 눕든 앉든 서든 온갖 이야기가 쉬지 않고 흐르는 물결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됩니다. 글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고,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춤을 추지 않아도 되며, 게다가 밥을 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멍하니 마음을 다 놓고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 저 텔레비전 / 혹시 살아 있는 척하는 거 아냐 / 실은 나도 살아 있는 척하는 것 아냐 ..  (옛날 연속극)



  학교에 가면 교과서를 줍니다. 학교에 가면 교사가 교과서로 수업 진도를 나갑니다. 학교에 가면 다른 학교로 가도록 시험문제를 알려줍니다. 학교에 가면 다음 학교가 나오고, 다음 학교에 가면 다시 다른 학교가 나옵니다. 마지막에 있는 학교까지 나오면, 이제 회사가 우리 앞에 나오고, 우리는 회사에 들어가서 예순 살 남짓이 될 때까지 시키는 일을 하면 됩니다. 시키는 일을 다 하고 예순 살 남짓 되면, 이제 회사에서 나와 연금을 받으면서 자가용을 몰고 ‘연금 쓰는 삶’을 보내다가 죽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죽어서 땅에 묻히거나 불로 태워 재가 남으면 어떻게 될까요. 죽고 난 뒤 우리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죽어서 땅에 묻히려고 살아가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학교에 가려고 태어난 목숨일까요. 우리는 회사원이 되어 스물대여섯 살부터 예순 살 남짓까지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사람일까요.



.. 뻐기는 듯 걸음을 걷는 개에게 끌려가는 저 여자 질질 끌려다니는 것을 참 좋아하나보다 ..  (풍경)



  텔레비전을 켜면 지구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운동경기가 흐릅니다. 한국에서는 깜깜한 밤이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다른 나라는 환한 낮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야구나 축구나 배구나 농구나 골프나 갖가지 운동경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텔레비전 하나만 곁에 두면 온갖 운동선수 이름을 꿸 수 있고, 이름난 선수가 벌이는 묘기에 가까운 몸재주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끄면? 텔레비전을 끄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야구를 마음 놓고 할 만한 빈터가 없습니다. 축구를 신나게 할 만한 빈터가 없습니다. 농구나 배구나 탁구나 골프를 할 만한 너른 터는 우리 둘레에 없습니다. 맨몸으로 할 수 있다는 달리기조차 홀가분하게 할 만한 데가 우리 둘레에 없습니다.


  헤엄을 칠 냇물이나 못이 없습니다. 냇물이나 못이 있어도 냇바닥을 죄 시멘트로 들이부었어요. 시멘트로 들이붓지 않은 냇물이나 못이 있더라도 공장과 발전소에서 뱉은 쓰레기물로 지저분할 뿐 아니라 농약에 찌들었습니다.



.. 벌써 며칠째다. 안개를 잡으려 철사 줄을 비틀다가 내 손가락이 비틀어졌다. 바지 주름을 세 줄로 잡아놓았는데도 헐렁한 자세로 서 있는 안개, 헐렁한 안개를 쳐다보다가 ..  (합성인간)



  오늘날 한국에서 사람들은 몸을 움직여 일하거나 놀지 못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손전화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켜서 ‘구경하는 나날’을 보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짓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이 노닥거리는 짓을 구경합니다. 다른 사람이 수다를 떠는 모습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이 알리는 온갖 이야기를 고스란히 듣습니다.


  그러면, 우리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요. 우리 삶은 어디에 있고, 우리 사랑은 어디에서 피어날까요.


  동네에, 학교에, 마을에, 사회에, 그러니까 이 나라 어느 곳에 삶이 있다고 할는지 알 길이 없어요. 스스로 삶을 찾거나 생각하거나 바라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지네에 중독된 자네는 / 지리산을 돌아다니는 게 싫증 나면 /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에 오곤 했는데, 요즈음도 그런가 / 삼보일배는 자네 마음에 자네가 질려서였겠지 ..  (술 한잔하게나-이원규 시인에게)



  장대송 님이 빚은 시를 엮은 《스스로 웃는 매미》(문학동네,2012)를 읽습니다. 장대송 님이 오늘 누리는 하루가 고스란히 드러난 시를 읽습니다.


  장대송 님은 스스로 웃는 하루일까요? 장대송 님은 스스로 웃음꽃을 피우는 나날일까요? 장대송 님은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 이 사랑을 이웃과 오순도순 나누는 삶일까요?



.. 불 꺼진 부엌, 나는 / 밤마다 방황하나니 / 정수기, 냉장고, 시계, 오븐, 정화기, 가습기…… / 그 푸른 LED 불빛 / 푸른 바다가 되어 나를 감시하나니 ..  (디지털의 흔적)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시는 삶 그대로 나옵니다. 시는 삶에서 고스란히 흐릅니다. 텔레비전을 켜는 사람은 텔레비전에 휩쓸리는 넋이 되어 시를 씁니다. 텔레비전을 끄는 사람은 텔레비전을 끄면서 다른 것을 바라보는 눈길로 시를 씁니다.


  숲에 깃들어 숲바람을 마시는 사람은 숲바람을 시로 길어올립니다. 흙을 두 손으로 만지면서 씨앗을 심는 사람은 흙내음과 씨뿌리기를 시로 추스릅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웃는 사람은 아이와 함께 짓는 웃음을 시로 그립니다. 아이한테 밥 한 그릇 차려서 건네는 사람은 아이와 나누는 밥내음을 시로 엮습니다.



.. 서재 불을 끄고 / 책장의 책들을 더듬으며 빠져나온다 ..  (서재)



  시를 쓰는 사람이 도시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마음을 밭으로 일구어 씨앗을 심는 넋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도시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며 컴퓨터를 켜거나 텔레비전을 켜더라도 마음을 숲으로 가꾸어 바람과 햇볕과 빗물을 머금는 몸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래야, 시가 노래가 되니까요. 이렇게 할 때에, 시가 사랑으로 거듭나니까요.


  노래가 되지 않는 시는 어쩐지 싱겁습니다. 사랑이 되려 하지 않는 시는 어쩐지 무뚝뚝합니다. 겉으로는 웃는 얼굴일는지 모르나, 참웃음은 겉웃음이 아니라 마음 깊은 데에서 따사로이 샘솟는 속웃음이라고 느낍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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