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11.7.

 : 빈들을 천천히



- 빈들을 천천히 달려 우체국으로 간다. 곁님이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손을 놀려 뜨개옷을 한 벌 지었는데, 이 옷을 오랜 동무한테 보내기로 했다. 값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뜨개옷이다. 뜨개질을 잘하는 이라면 우리 곁님처럼 열흘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새우듯이 손을 놀리지 않았을 테지만, 품이 아주 많이 가는 겨울 털옷이다.


- 이제 고흥 들녘에 샛노란 나락이 남은 논은 몇 군데 안 남는다. 거의 모두 베었다. 나락을 벤 논을 일컬어 ‘빈논’이라 하는데, 막상 시골에서 이 논을 바라보노라면, ‘빈’ 채 있지 않다. 나락은 베었어도 볏모가지가 있고, 볏모가지에 새로운 줄기가 올라온다. 꽁당이만 남은 둘레로 여러 들풀이 돋고, 가을볕을 받으며 유채나 갓도 돋는다. 억새가 바람 따라 나부끼고, 강아지풀이랑 여뀌고 한들한들 춤추기도 한다.


- 늦가을을 맞이한 시골들이 고즈넉하다. 벼 베는 기계도 없고, 논을 돌아볼 할배도 없다. 논에 마늘을 심는 바지런한 분이 더러 있지만, 해마다 나이를 먹는 시골지기는 이제 마늘심기를 많이 줄인다. 마늘을 심을 기운이 모자라기도 하고, 마늘값이 예전 같지 않기도 하다. 군청에서 벌이는 경관사업 때문에 빈논에 기계를 끌고 나와서 골을 내어 유채씨를 뿌리는 할배가 몇 있지만, 이마저도 모두 일을 마치고 가을들이 아주 호젓하다.


- 바람을 타고 면소재지로 나들이를 갔다가, 바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온몸에 가을바람을 묻힌다. 오늘 저녁에 지을 밥은, 그래, 가을밥이겠네. 늦가을밥.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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