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11.3.

 : 해는 일찍 떨어지고



- 우체국에 다녀오려 한다. 작은아이는 틀림없이 수레에서 잠들 듯하다. 그래서 아이들 저녁을 좀 일찍 차려서 주기로 한다. 배가 부르면 더 느긋하게 잠들 수 있을 테지.


- 우체국에서 부칠 책꾸러미가 제법 많다. 두 아이가 즐겁게 타기도 하고, 짐도 곧잘 싣는 이 수레는 두 개째인데, 바닥천이 많이 해졌다. 질기고 야무진 천이라 이듬해에도 괜찮을 듯싶기는 한데, 새봄이 오면 수레 바닥천을 더 단단히 여미는 길을 생각해야겠다고 느낀다.


- 우체국으로 달리는 길은 태평양을 바라보며 가는 길이다. 그래서 늦가을과 겨울에는 바람이 마파람이 된다. 우체국으로 달리는 길에는 수레가 무거우니 등에 바람을 지고 달리면 느긋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맞바람이니 몹시 힘들다.


- 두 아이가 서로 조잘거리면서 논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고개만 뒤로 돌려서 동생을 부르고, 동생은 수레에 앉아 앞에 있는 누나를 쳐다보며 대꾸한다. 해는 일찍 떨어진다. 그늘진 길에 차가운 바람을 옴팡 뒤집어쓰면서 달린다. 해가 일찍 떨어지지만 아직 하늘은 파랗다. 파란 하늘 한쪽에 달이 있다. “보라야, 저기 봐. 달이야. 달이 곧 동그래질 거야.”


- 우체국에서 뛰놀던 아이들. 수레에 태워 집으로 돌아가니 작은아이는 새근새근 잠든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느라 얼굴이 빨갛다. 모자를 안 쓰겠다고 했으니 얼굴이 더 시리지? 그래도 나는 앞에서 모든 바람을 맞아들이면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한다. 오직 노래만 생각한다. 바람이라든지 해 떨어진 쌀쌀한 날씨라든지 아무것도 더 생각하지 않고, 그저 노래만 생각한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이렇게 맞바람을 듬뿍 맞으면서 노래를 부르면 곧 숨이 차서 노래를 더 부르지 못했다. 지지난해에는 맞바람을 맞으면서 노래를 부를 엄두를 아예 못 냈다. 우체국에 있는 저울에 아이들이 올라가서 놀 때 슬쩍 살피니, 작은아이는 19.5킬로그램이 나가는 듯하고, 큰아이는 21.5킬로그림애 나가는 듯하다(옷 무게를 빼면). 나날이 몸무게가 느는 아이들이지만, 외려 나는 날이 갈수록 아이들을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다닐 적에 힘이 덜 든다고 느낀다.


- 집에 닿아 작은아이를 품에 앉아 잠자리에 누인다. 겉옷 한 벌 벗기고 이불을 덮는다. 많이 추웠지? 따스한 곳에서 쉬렴. 자전거를 바깥벽에 붙인다. 천막천을 씌운다. 마을고양이 여러 마리는 우리 집 자전거를 밤잠 자는 곳으로 삼는다. 어미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 집 자전거 밑에서 옹크리면서 잔다. 새끼 고양이 세 마리는 큰아이 자전거 앞에 둔 종이상자에 들어가서 서로 몸을 부대끼면서 잔다. 다른 어미 고양이 한 마리는 내 자전거 앞에 놓은 종이상자에 앉아서 잔다. 모두 여섯 마리 마을고양이가 우리 집 자전거 둘레에서 함께 지낸다. 오늘은 바람이 제법 찬데, 마을고양이들 모두 새근새근 잘 쉬기를 빈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