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래 푸는 글쓰기



  오랫동안 엉킨 실타래를 푼다. 아마 이 실타래는 스무 해 동안 얽혔으리라 느낀다. 스무 해에 걸친 실타래가 어젯저녁에 비로소 풀린다. 아니, 엊저녁에 비로소 나 스스로 실타래를 푼다.


  어떤 실타래를 풀었는가 하면, ‘짓다(짓기·지음)’와 ‘만들다(만들기)’가 서로 어떻게 얽히는가 하는 실타래를 풀었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는 ‘글짓기 숙제’와 ‘만들기 숙제’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글짓기’라는 이름을 썼지만, 글을 짓도록 하지 않았다. 글을 억지로 짜맞추거나 만들도록 시켰다. 예나 이제나 똑같은데, 학교에서 시키는 짓은 ‘글 짜맞추기’나 ‘글 만들기’이다. 그러니, ‘공작 숙제’만 ‘만들기 숙제’로 이름을 붙일 노릇이 아니라, ‘글 쓰는 숙제’도 ‘글 만들기 숙제’로 이름을 붙여야 올바르다.


  요즈음은 ‘글쓰기’라는 낱말을 두루 쓰는데, 요즈음 학교나 사회나 문학에서 떠도는 ‘글쓰기’도 참다운 글쓰기는 아니다. 요즈음 떠도는 글쓰기는 허울만 글쓰기일 뿐, 속살을 살피면 ‘글 엮기’라고 느낀다.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글을 엮도록 이끄는 요즈음 ‘글쓰기 교육’이다. 많이 읽히거나 잘 팔리는 글이 되도록 글을 엮게끔 가르치는 오늘날 ‘글쓰기 강의나 교재’이다.


  예전에는 ‘글짓기’라는 이름을 엉터리로 썼다면, 오늘날에는 ‘글쓰기’라는 이름을 엉뚱하게 쓴다. 예나 이제나 똑같다. 이름은 바꾸었으나 속살이나 알맹이는 그대로라 할 만하다.


  글짓기는 삶을 새로 짓듯이 쓰는 글이다. 글쓰기는 삶을 수수하게 밝히면서 쓰는 글이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모르고서 글을 만지겠다고 한다면, 언제나 ‘글 만들기’나 ‘글 엮기’ 두 가지 가운데 하나에서 맴돌고 말리라.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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