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북녘 갈린 한국에서 책이란



  한국이라는 나라로 본다면, 남녘과 북녘이 갈립니다. 그러나 사람이 가른 금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안 보입니다. 높이 높이 올라갈수록 금은 흐릿합니다.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바라보면 금은커녕 어떤 것도 안 보입니다.


  이 땅을 밟으면서 나들이를 하더라도 마음은 하늘을 날면서 널리 바라볼 수 있으면, 둘 사이를 가르는 ‘금’이란 그저 금이지, 아무것도 가를 수 없으리라 느껴요.


  남녘과 북녘은 서로 다른 사회 얼거리요 정치 얼거리입니다. 교육 얼거리나 경제 얼거리도 다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같아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다르고, 고장말은 다르지만, 서로 말로 나눌 수 있는 생각은 같습니다. 사회·정치·교육·경제·문화라고 하는 껍데기를 내려놓고 ‘마음·사랑·삶’이라는 넋으로 서로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생각은 아주 넓고 깊습니다.


  남녘에서는 온갖 책이 쏟아집니다. 남녘에서는 아름다운 책도 나오지만, 돈벌이를 다루는 책도 엄청나게 나옵니다. 남녘에서는 사랑스러운 책도 나오지만, 돈만 끌어모으려고 하는 책도 나옵니다. 북녘은 어떠할까요? 북녘에서도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책이 곧잘 나올 테지만, 사회나 정치나 교육이나 경제나 문화라는 울타리에 가로막히는 일도 잦습니다. 다만, 북녘에서는 남녘과 달리 돈벌이를 다루는 책이나 돈만 끌어모으려고 하는 책은 안 나옵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책도 북녘에서는 안 나와요.


  남녘 책마을을 살펴보셔요. 동네책방뿐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책방에서도 ‘대학입시 교재’가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남녘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대학입시 교재’로 온통 짓눌려야 해요. 이런 남녘에서 어린이문학이나 청소년문학은 어떤 몫을 맡을 만할까요. 이런 남녘에서 겨우 입시지옥을 벗어난 젊은 넋은 어떤 ‘어른문학’이나 ‘어른인문학’을 누릴 만할까요.


  삶은 오롯이 책입니다. 사랑으로 가꾸는 삶이든, 사랑으로 못 가꾼 삶이든, 모두 오롯이 책입니다. 삶을 읽을 수 있으면 삶을 바꿉니다. 삶을 읽는다면 삶을 슬기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남녘에 있는 이웃은 ‘대학입시 교재’를 손에서 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녘에 있는 이웃은 ‘대학입시 교재가 되기 앞서, 숲에 있던 나무’인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녘에 있는 이웃은 ‘삶에서 태어나는 책’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과 땅과 바람과 비와 숲과 풀을 읽는 밝고 또렷한 눈썰미를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북녘이 한자리에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손길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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