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 -담談 1


헤어진 뒤에 학생들이 돌아와서 여행담을 들려줄 수는 있다

《파멜라 메츠/이현주 옮김-배움의 도》(민들레,2001) 33쪽


 여행담을

→ 여행 이야기를 

→ 여행 얘기를

→ 여행했던 이야기를

 …



  어릴 적 일을 돌이키면, 어른들은 우리한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면서, 으레 ‘무용담’이나 ‘체험담’이나 ‘경험담’을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우리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무슨무슨 담’이라고 말하는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 말하니 그리 듣고, 이리 말하니 이리 들을 뿐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왜 ‘여행 이야기’나 ‘여행 얘기’처럼 말하지 못했을까 궁금합니다. ‘겪은 이야기’나 ‘치렀던 이야기’나 ‘부대낀 이야기’처럼 말하기는 힘들었을까요. ‘싸운 이야기’나 ‘꿈 이룬 이야기’처럼 새롭게 말을 지을 마음은 없었을까요.


 경험담 → 겪은 이야기

 무용담 → 싸운 이야기

 성공담 → 성공한 이야기 / 꿈을 이룬 이야기

 체험담 → 겪은 이야기 / 몸소 겪은 이야기


  ‘무용담’ 같은 이야기를 들을 적에는, 소리값은 같으면서 다른 한자말인 ‘舞踊’이 먼저 떠오르곤 했습니다. 이러면서 ‘춤 이야기’라는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체험(體驗)’이나 ‘경험(經驗)’이란 “스스로 몸으로 부딪힌 이야기”이지만, 어느 어른도 ‘겪은 이야기’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글쓰기에서도 ‘체험글’이라 할 뿐, ‘겪은글’처럼 새말을 지으려 하지 않아요.


 노래이야기 . 책이야기 . 삶이야기 . 사진이야기 . 그림이야기

 노래얘기 . 책얘기 . 삶얘기 . 사진얘기 . 그림얘기


  살아가는 그대로 말하거나, 보는 그대로 글을 쓰거나, 부대끼는 그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나 싶어 아쉽습니다. 지난날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또는 앞으로는 우리 스스로 다른 삶을 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생각과 넋으로 다른 삶을 여미면서 말넋과 글넋을 북돋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학교를 오래다니거나 많이 배운 사람만 주고받는 말이 안 되도록 차근차근 추스르면 좋겠습니다. 아는 사람만 즐겨쓰는 글이 안 되도록 돌보면 고맙겠습니다. 끼리끼리 나누는 이야기가 안 되도록 알뜰살뜰 손질한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4338.4.4.달/4341.11.26.물/4347.10.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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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뒤에 학생들이 돌어와서 여행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있다


‘이후(以後)’라 하지 않고 ‘뒤’로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담(談) : ‘이야기’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경험담 / 무용담 / 여행담 / 성공담 / 체험담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682) -담談 2


이밖에도 귀신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일화와 단장곡에 관한 맹열과의 연애담이 또한 그를 유명하게 하고 있다

《박황-판소리소사》(신구문화사,1976) 25쪽


 연애담

→ 연애 이야기

→ 사랑 이야기

→ 애틋한 이야기

→ 사귄 이야기

 …



  ‘연애(戀愛)’는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한국말로는 ‘사랑’이나 ‘그리움’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는 이야기라면 ‘사랑 이야기’입니다. 서로 애틋한 이야기라면 ‘애틋한 이야기’이고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라면 ‘그리운 이야기’나 ‘그리워 하는 이야기’가 될 테지요. 한자말 ‘연애’라는 낱말을 꼭 쓰고 싶으면 ‘연애 이야기’로 적어 줍니다. 누군가와 사랑을 했던 이야기라면, 서로 좋아하며 ‘사귀었던’ 이야기이니, “사귄 이야기”라 하거나 “사랑을 나누던 이야기”로 풀어내어도 잘 어울립니다. 4339.10.22.해/4342.1.24.흙/4347.10.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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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귀신한테서 배웠다는 얘기와, 단장곡하고 얽혀 맹열과 나눈 사랑 이야기로 그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귀신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귀신한테서 배웠다”로 다듬습니다. ‘일화(逸話)’는 ‘이야기’로 손보고, ‘단장곡(斷腸曲)’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애끊는 노래’로 손볼 수 있습니다. ‘-에 관(關)한’은 ‘-에 얽힌’으로 손질하고, “그를 유명(有名)하게 하고 있다”는 “그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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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192) -담談 3


축구 할 때 자기가 어떻게 다쳤는지를 무용담처럼 얘기했다

《박효미-길고양이 방석》(사계절,2008) 51쪽


 무용담처럼 얘기했다

→ 자랑처럼 얘기했다

→ 으쓱거리며 얘기했다

→ 떠벌이면서 얘기했다

→ 아주 큰소리로 얘기했다

→ 어깨를 우쭐거리며 얘기했다

 …



  ‘무용담(武勇談)’은 “싸움에서 용감하게 활약하여 공을 세운 이야기”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싸웠던 이야기”를 가리키는 ‘무용담’입니다. “무용담처럼 얘기했다”라는 글월은 겹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말 ‘談’과 ‘얘기’가 잇달아 나옵니다. 살짝 다독여야겠지요.


  ‘싸운 이야기’인 무용담입니다. 이를 한 낱말로 추슬러 ‘싸움이야기’로 적을 수 있습니다. 이 뜻 그대로 적으면 넉넉합니다. 다만, 보기글에서는 싸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축구를 하면서 제가 얼마나 잘 뛰거나 멋졌는가를 놓고 자랑하면서 이야기하니까, “자랑을 늘어놓았다”라든지 “자랑처럼 떠벌였다”로 풀어냅니다. 4341.11.26.물/4347.10.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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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할 때 제가 어떻게 다쳤는지를 자랑처럼 얘기했다


‘자기(自己)가’는 ‘제가’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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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35) -담談 4


교무실에 모여 앉아 아이들 뒷담이나 하고 있다니

《경남여고 아이들-기절했다 깬 것 같다》(나라말,2011) 20쪽


 뒷담

→ 뒷말

→ 뒷이야기

→ 뒷얘기

→ 뒷소리

 …



  ‘뒷담(-談)’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우리가 쓰는 ‘뒷담’이라면 ‘앞담’이나 ‘옆담’이라는 낱말과 아울러 쓰는 “울타리”를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적잖은 이들은 ‘뒷담화(-談話)’라는 낱말을 지어서 씁니다. 한국말 ‘뒤’에다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음”을 뜻하는 한자말 ‘담화(談話)’를 붙여서 쓰는 낱말인데, 이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안 실립니다. 실을 까닭이 없겠지요. 왜냐하면, 한국말에는 ‘뒷말·뒷이야기·뒷얘기·뒷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국말을 알맞게 써야지, 뜬금없이 ‘談話’ 같은 한자를 끌어들여 새 낱말을 지을 일이 없어요. 더군다나, ‘뒷담화’를 줄여, 이 보기글처럼 ‘뒷담’으로 쓸 일도 없습니다. 4347.10.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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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에 모여 앉아 아이들 뒷얘기나 하다니


“하고 있다니”는 “하다니”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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