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 책숲 느끼기

19. 아이를 낳고 돌보며 읽는 책



  오늘날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교육’은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은 푸름이가 앞으로 어버이가 되어 새로운 아이를 기쁨으로 맞이해서 사랑스럽게 돌보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얼거리’와 ‘피임’을 어떻게 하는가를 알려주면서 성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이루는 삶과 사랑과 꿈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나마 오늘날 학교는 대학입시에 목을 매달다 보니, 대학입시하고는 많이 동떨어진 성교육조차 제대로 안 하거나 못 합니다. 그러면 푸름이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대학교에 가면 성교육이나마 할까요. 여성과 남성이 서로 어떻게 다른 몸인가를 헤아리지 못하면서, 또 여성과 남성이 서로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삶과 사랑과 꿈을 읽지 못하면서, 스무 살 젊은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성교육도 사랑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몸으로 사내는 군대에 갑니다. 군대에 간 젊은 사내는 총과 칼로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여러 해에 걸쳐 배워야 합니다. 계급과 신분에 따라 사람을 갈기갈기 쪼개는 틀에 길들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젊은 사내는 무엇을 보고 배우는 어른이 될까 궁금합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푸름이는 대학교에 가거나 일자리를 얻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거나 대학교까지 마친 젊은이가 일자리를 얻어 여러 해 지나면 여느 어버이는 젊은이한테 ‘시집·장가’를 가야 한다고 말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스물다섯이나 서른이 되었어도 성교육은커녕 사랑이 무엇이고 삶과 꿈이 무엇인지 배우거나 듣거나 마주한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젊은이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더러 시집과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으라고 여느 어버이마다 닦달하곤 합니다.


  짝꿍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요. 살림은 어떻게 꾸려야 할까요. 짝을 만나 제금을 난다면, 살림뿐 아니라 밥은 어떻게 지어서 먹고, 집안은 어떻게 돌보아야 할까요. 시집이나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은 젊은이는 아이를 어떻게 돌보거나 키워야 할까요. 갓 태어난 아기를 유아원에 넣거나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유치원을 다니게 하면 될까요.


  어버이로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삶을 생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버이로서 스스로 아름답게 삶을 지어 즐겁게 하루하루 누릴 수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푸름이가 저마다 스스로 삶을 짓고 즐겁게 하루를 누릴 수 있는 힘을 내도록 도와야 한다고 느낍니다.


  대학입시를 걱정할 노릇이 아니라, 앞날을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시험성적을 따질 일이 아니라, 우리 마음밭에 사랑과 꿈이 싹틀 수 있도록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람타, 현실 창조를 위한 입문서》(아이커넥 펴냄,2012)라는 책을 읽습니다. 어른으로서 우리 집 아이들과 즐겁게 살아갈 길을 생각하려고 읽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찾도록 이끌자고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나는 ‘육아서’라는 책은 읽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삶을 책으로는 배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그랬어요. 어떤 어버이도 책을 읽으면서 아이를 돌보지 않습니다. 어떤 어버이도 책에 따라 살을 섞어서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어떤 어버이도 아이한테 밥을 차려 줄 적에 책에 따라 밥을 짓지 않아요. 젖을 물린다든지 기저귀를 간다든지 빨래를 하거나 걸레질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모든 집일을 책으로 배우는 사람은 없어요. 아니, 책으로 쓸 수 없고, 책으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삶은 오직 삶으로 가르칩니다.


  “당신 존재가 순수한 상태에 있을 때에는 낮은 차원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71쪽).”와 같은 이야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내 마음이 맑고 정갈한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내 눈길은 어떠할까 헤아려 봅니다. 맑고 정갈한 사람은 맑고 정갈한 삶을 바라보겠지요. 맑고 정갈한 길을 걸으려 할 테며, 맑고 정갈한 사랑을 나누려 하겠지요.


  맑고 정갈한 삶을 맑고 정갈한 넋으로 가꾸는 사람은 허튼 짓이나 엉뚱한 짓이나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허튼 짓이나 엉뚱한 짓이나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은, 삶과 넋이 모두 허튼 길로 빠졌거나 엉뚱한 곳으로 기울어졌거나 어리석게 뒤틀렸기 마련입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스러운 일과 놀이를 합니다.


  우리가 책을 바란다면 어떤 책을 바라는지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마음이 착한 사람은 착한 책을 바라면서 즐겁게 읽겠지요.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책을 바라면서 기쁘게 읽겠지요. 마음이 착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치고 박고 죽이고 싸우는 이야기 그득한 책이나 영화’를 볼 일이 없습니다. 이른바 막장연속극을 착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즐길 일이 없습니다. 방송이 막장연속극으로 가득하다면, 착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은 텔레비전을 끌 뿐 아니라, 집에서 텔레비전을 치우겠지요.


  “물, 물고기, 꽃이 활짝 핀 나무, 가시덤불, 새, 도마뱀, 아이들과 함께 정원에 두고 아이들이 숨을 수 있는 동굴을 만들어 주면, 삶이 얼마나 아름답게 펼쳐지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날씨로부터 배웠고, 낮으로부터 배웠고, 밤으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파괴와 전쟁의 와중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연약하고 하찮은 생명으로부터 배웠다. 내 존재의 스승은 절대 근원이었다(95, 96쪽).”와 같은 이야기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시험공부만 하던 젊은이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학교를 다니더라도 들길과 숲길을 걸어서 오간 젊은이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학교를 안 다녔으나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은 젊은이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우리 삶자락을 돌아보면,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흙을 만졌습니다. 1940년대라면 더 많은 사람이 시골에서 흙을 만졌고, 1900년대라면 몇몇 사람을 빼고는 모두 시골에서 흙을 만졌습니다. 이무렵 학교를 다닌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학교를 안 다닌 사람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바로 비와 바람과 해를 보고 배우겠지요. 흙과 풀과 나무를 보고 배우겠지요. 새와 벌레와 짐승과 물고기를 보고 배우겠지요. 《람타, 현실 창조를 위한 입문서》라는 책을 더 읽어 봅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생을 통해서 이미 실패라고 입증되었던 믿음, 이해, 삶과 사고방식들을 여전히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변형된 에고로 인해 비틀거리고,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며, 단지 죽음으로밖에 이끌 수 없는 위선 속에 살아간다(97쪽).”와 같은 이야기를 밑줄을 그으며 읽습니다. “신으로서 살라. 그러면 진정으로, 당신은 자신을 용서할 수 있고,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를 알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116쪽).”와 같은 이야기도 밑줄을 그으며 읽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짓밟히면서 종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어떠했을까요? 소작을 짓던 수많은 시골지기는 일제강점기에서나 조선에서나 똑같이 소작을 지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소작쟁의’라는 이름으로 시골지기가 들고 일어선 일이 잦았지만, 조선에서도 ‘농민항쟁’이 그치지 않았어요. 내 땅이 없어 땅 부자한테서 땅을 조금 얻어 흙을 일구던 사람들은 땀값을 거의 못 받았어요. 엉터리처럼 짓밟힌 채 지내다가 도무지 견딜 수 없어 낫과 쟁기를 손에 쥐고 벌떡 일어섰어요.


  일제강점기에서 풀린 한국 사회이지만, 요즈음은 돈 때문에 쪼들리는 사람이 많아요. 사장님 앞에서 굽신거려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비정규직이 아주 많은데,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공장에서 똑같이 여덟 시간씩 기계를 만집니다. 한 주에 닷새를 일한다 하더라도, 다른 이틀은 ‘닷새 동안 일을 안 쉬고 공장에 나와서 기계를 만질 수 있도록 몸을 되살리는 겨를’일 뿐입니다.


  어버이는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일까 궁금합니다. 어른은 삶을 어떻게 꾸리는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어린이와 푸름이는 무엇을 배워서 어떤 젊은이로 자라 꿈과 사랑을 키울 숨결일는지 궁금합니다.


  책은 무엇을 가르칠까요. 책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나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나요. 졸업장을 따야 하기에 학교를 가야 한다면, 학교란 곳은 매우 쓸쓸합니다. 졸업장을 따야 한다면 억지로 몇 해를 버티지 말고, 돈을 주고 졸업장을 살 노릇이지 싶습니다. 학교에서 참다운 삶을 배우고 아름다운 사랑을 익히며 맑은 꿈을 키울 수 있다면, 우리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잘 다니고서 졸업장은 안 받아도 됩니다. 학교가 참답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다면, 일곱 학기를 다닌 뒤 마지막 학기는 안 다닌 채 그만두어도 됩니다. 우리는 졸업장이 있어서 어떤 일을 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을 배우고 사랑을 익히며 꿈을 키울 때에 어떤 일이든 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을 책이라면, 내 삶을 나 스스로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어야지 싶습니다. 내가 스스로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본 뒤, 제대로 깨닫고, 제대로 알아채서, 제대로 하루를 짓도록 이끄는 책이라면 얼마든지 읽을 만하지 싶습니다.


  지식을 알려주거나 정보를 보여주는 책은 굳이 안 읽어도 된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더 나은 지식이나 더 빠른 정보를 다른 책이 알려줄 테니까요. 그리고, 더 나은 지식이나 더 빠른 정보가 있어도 또 다른 책이 이런 책을 앞지르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지식이나 정보를 다루는 책은 어떤 책이든 한 가지조차 볼 만한 까닭이 없습니다.


  “삶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가 당신은 자신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밤이나 일요일 아침 그리고 직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143쪽).”와 같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은 대학입시만 생각하며 하루를 맞이합니다. 아이를 대학교에 넣고 싶은 어버이는 늘 대학입시만 생각하며 하루를 맞아들입니다. 다른 길이나 다른 삶이나 다른 꿈은 생각하지 않아요. “마음이 현실을 창조한다. 당신의 모든 나날은 지금까지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일어난 결과이다(152쪽).”와 같은 이야기를 여러 차례 되읽은 뒤 마음에 새깁니다. 참으로 그렇거든요. 대학입시에서 손을 뗄 적에는 대학교라는 길은 갈 수 없을 테지만, 다른 길을 열어요. 대학입시에서 눈길을 거둘 적에는 대학교라는 길을 더 볼 수 없을 테지만,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나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두었습니다. 아예 안 갈 수도 있었으나, 대학입시를 치러 대학교에는 들어갔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교라는 곳에 들어가서 ‘학문을 익히’려 하는데, 교수뿐 아니라 동무와 선·후배 모두 학점 아닌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오직 학점을 따려고 ‘숙제 베껴쓰기’를 하고 ‘시험 때 훔쳐보기’를 합니다. 학문을 하고 배움길 찾는 교수와 학생이 아예 없지 않습니다만, 참으로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나는 혼자 배움길을 가겠노라 생각하며 대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학기마다 큰돈을 학교에 바치기보다, 이만 한 큰돈으로 내 넋과 삶을 북돋울 만한 책을 스스로 한 권씩 찾아서 장만하여 읽어서 스스로 배우자고 생각했어요.


  내가 즐거운 마음일 때에 삶이 즐겁습니다. 부잣집 아이로 태어났기에 내 삶이 즐겁지 않아요. 부잣집 아이로 태어났어도 스스로 어두운 마음이면 삶이 어두워요. 마음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시험성적이 잘 나왔어도 마음이 어두우면 즐거울 일이 없고,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도 어둡고 슬픈 마음으로 삶이 어둡고 슬픈 길로 흐른다면 그저 어둡고 슬프기만 합니다.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도 마음이 따스하지 않다면, 나중에 하는 일도 따스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은 따스한 마음으로 합니다. 사랑은 포근한 손길로 나눕니다. 사랑은 아름다운 꿈으로 짓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삶을 즐겁게 누리도록 이끄는 책을 읽을 때에 즐겁습니다. 푸름이는 푸름이로서 삶을 곱게 누리도록 북돋우는 책을 읽을 때에 고운 넋이 됩니다. 어버이와 어른은 삶을 참되게 누리도록 돕는 책을 읽을 때에 참삶을 가꿉니다.


  이 땅 모든 푸름이는 곧 스무 살이 됩니다. 이 나라 모든 푸름이는 머잖아 어른이 되거나 어버이 자리에 들어섭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을 헤아리면서 어떤 책을 곁에 두고 어떤 동무를 둘레에 두며 스스로 어떤 넋이 될 때에 아름다운 삶을 일굴 만한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 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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