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머리카락



  머리숱이 그리 안 많은 채 태어났습니다. 우리 식구 가운데 왜 나만 머리숱이 적을까 하고 생각하며 어릴 적부터 여러모로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머리숱이 적어서 힘들 일이란 없을 수 있어요. 가만히 보면, 내가 머리숱이 적다고 해서 누가 나를 쳐다볼 일이 없으며, 내 머리카락 숫자를 셀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내 적은 머리숱을 쳐다볼는지 몰라’ 하고 혼자 생각할 뿐입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자꾸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숱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 이렇게 빠지면 어떡하나’ 하고 여겼습니다.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거울을 들여다보면 참말 머리숱이 훨씬 줄어들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머리숱 걱정으로 살던 어느 무렵, 아마 서른 살 언저리였을 텐데, 머리숱이 줄고 줄어 자꾸 줄면 ‘머리카락을 다 밀고 살면 되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머리숱이 자꾸 줄어든다고 걱정할 일 없이, 머리숱이 줄어들면 민머리로 살면 됩니다.

  그러고는 이때부터 거울을 안 보고 삽니다. 집에도 거울을 안 둡니다. 나는 내 머리숱도 안 보지만, 내 낯도 안 봅니다. 내 몸도 안 봅니다. 머리숱이라는 데에 마음을 빼앗길수록 정작 내 모습이 무엇인지를 놓친다고 느꼈어요.

  이렇게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문득 한 가지를 알아차렸습니다. 많이 줄었구나 싶던 머리숱이 꽤 늘었습니다. 그렇다고 머리카락이 수북해지지는 않았으나, 예전에는 가까운 이웃이나 동무가 “머리숱이 많이 줄었네.” 하고 말하곤 했는데 “얘, 네 머리숱 다시 늘었네.” 하고 알려주었습니다.

  내 손등과 발등을 뒤덮은 사마귀하고 똑같은 일이었습니다. 손등에 돋은 사마귀는 들여다보고 건드릴수록 늘어날 뿐입니다. 손등에 돋은 사마귀는 안 들여다볼 뿐 아니라 잊어버리면 사라집니다. 머리숱이 줄어든다고 걱정하면서 자꾸 쳐다보니 머리숱은 차츰 나한테서 사라집니다. 머리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스스로 걸어갈 길을 즐겁게 걸어가면 머리숱이 돌아옵니다. 4347.8.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내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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