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451) 정성

어쩌면 그렇게도 정성들여 썼단 말인가. 주옥 같은 시조를 써서 예술의 높은 경지를 개척한 가람은, 원고 자체도 예술품으로 결집시킨 것이다
《김성재-출판 현장의 이모저모》(일지사,1999) 39쪽

 그렇게 정성들여 썼단
→ 그렇게 정갈하게 썼단
→ 그렇게 깔끔하게 썼단
→ 그렇게 알뜰히 썼단
→ 그렇게 힘들여 썼단
→ 그렇게 온힘을 바쳐 썼단
 …


  한국말사전에는 모두 열세 가지 ‘정성’이 실립니다. 이 가운데 우리들이 알 만한 ‘정성’은 몇 가지가 될는지 헤아려 봅니다. ‘精誠’ 하나를 뺀 다른 열두 가지 가운데 우리들이 한 번이나마 들었던 ‘정성’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하늘에 있는 별을 가리킨다는 ‘정성(井星, 定星)’이라는 두 가지 한자말은 얼마나 쓰임직한지 궁금하며, 불교와 음악에서 쓴다는 ‘정성(定星, 停聲)’도 전문 낱말이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正聲’이라 하기보다는 ‘바른소리’라 하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鄭聲’이라 할 때보다는 ‘궂은소리’라 하면 훨씬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인정과 성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情性)이나, “한창 나이라서 혈기가 매우 왕성”하다는 말(鼎盛)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와 같은 말은 안 쓰지 싶은데요.

  도무지 언제 이와 같은 말이 쓰여서 한국말사전에 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먼 옛날, 오로지 한문으로만 글을 쓰고 생각을 펼치던 선비들이 읊조리던 낱말을, 오늘날 한국말사전에 고스란히 실어 놓은는 셈 아닌가 모르겠어요. 아니면, 일본사람이 일본에서 만든 ‘일본말사전’에 실린 한자말을 한국말사전에 슬그머니 옮긴 셈이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마음 어린 선물 . 마음 담은 선물
 힘을 들인 선물 . 땀을 들인 선물
 뜻을 모은 선물 . 마음을 모은 선물
 마음을 바친 선물 . 땀방울을 바친 선물
 마음이 대단한 선물 . 마음이 갸륵한 선물

  한자말 ‘精誠’을 풀이하는 말을 보면, ‘온갖 힘을 다하려는’과 ‘참되고’와 ‘성실하고’가 보입니다. 이 가운데 ‘성실(誠實)’을 한국말사전에서 다시 찾아보면, “정성스럽고 참됨”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그러면 ‘정성’은 ‘성실’이고, ‘성실’은 ‘정성’이라는 이야기일까요?

 온힘 다하는 . 참된 . 애쓰는 . 힘쓰는 . 마음 쏟는 . 마음 기울이는

  한국사람들은 한국사람 나름대로 한국말을 살피면서 얼과 넋을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익히 쓴다고 할 만한 ‘정성’과 ‘성실’이지만, 정작 우리들은 이 한자말이 어떤 뜻인지, 또 어떤 쓰임인지, 또 어떤 뿌리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쓰는 셈입니다. 얼마나 쓸 만한지, 얼마나 알맞는지, 얼마나 살가운지를 살피지 않으면서 쓰는 셈입니다.

  꼭 한 낱말로만 써야 하지 않으니, “마음 다하는”이나 “온힘 다하는”이라고 해도 어울립니다. “마음 쏟는”이나 “온힘 쏟는”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마음 바치는”이나 “온힘 바치는”이라 해도 좋습니다. ‘애쓰다’나 ‘힘쓰다’나 ‘마음쓰다’를 넣어도 됩니다.

  하나씩 말문을 열고, 하나씩 말길을 트며, 하나씩 말살림을 가꾸는 동안, 비로소 한국말은 새로워지고 거듭나며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4341.7.12.흙/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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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렇게도 알뜰히 썼단 말인가. 구슬 같은 시조를 써서 높은 예술을 일군 가람은, 붓으로 쓴 글도 예술품으로 일구었다

‘주옥(珠玉)’이란 “구슬과 옥”을 가리킨다는데, “구슬 같은”이나 “빛나는 구슬 같은”으로 담아내면 어떨까 싶습니다. “예술의 높은 경지(境地)를 개척(開拓)한”은 “높은 예술을 일군”으로 손보고, “원고 자체(自體)도”는 “원고도 곧”으로 손봅니다. “결집(結集)시킨 것이다”는 “일구었다”나 “빚어냈다”나 “모아 놓았다”로 다듬습니다. ‘원고(原稿)’는 그대로 둘 만하지만, 글흐름을 잘 살리려면 “붓으로 쓴 글”이나 “붓으로 종이에 쓴 글”로 손질하면 한결 낫습니다.


 정성(井星) : [천체] 이십팔수의 스물두째 별자리의 별들
 정성(正聲)
  (1) 바른 목소리. 또는 바른 곡조의 음악
  (2) 음탕하지 아니한 음률
 정성(定性) : 물질의 성분이나 성질을 밝히어 정함
 정성(定星) : [불교]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 가운데 하나만 되도록 타고난 본성
 정성(定星) : [천체] = 항성(恒星)
 정성(定省) = 혼정신성
 정성(政聲) : 훌륭하고 바른 정치로 소문난 명성
 정성(停聲) : [음악] 거문고 연주에서, 소리를 낸 다음 그 소리를 잠시 멈추는 방법
 정성(情性) : 인정과 성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정성(鼎盛) : 한창 나이라서 혈기가 매우 왕성함
 정성(精誠) :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
   - 정성 어린 선물 / 정성을 들이다 / 정성을 다하다 / 정성을 모으다 /
     정성을 바치다 / 정성이 지극하다 / 정성이 갸륵하다
 정성(鄭成) : [인물] 고려 현종 때의 무장
 정성(鄭聲) : 음란하고 야비한 음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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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56) 사과

술꾼들은 노리아가 아들의 죽음에 대해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고 하면서 사과했다
《자케스 음다/윤철희 옮김-곡쟁이 톨로키》(검둥소,2008) 187쪽

 사과했다
→ 미안하다 말했다
→ 잘못했다고 했다
→ 뉘우쳤다
→ 두 손을 빌었다
 …


  온갖 한자말 ‘사과’가 있습니다. 먹을거리로도 ‘사과’가 있습니다. 우리 먹을거리는 ‘능금’이거나 ‘멋’이지만,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에 군홧발을 내딛는 그때부터 ‘능금’은 자취를 감추고 ‘사과’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그나저나, “잘못을 용서함(赦過)”과 “잘못을 빎(謝過)”을 가리키는 말이 똑같이 ‘사과’라는 한자말에 담깁니다. 한글로 ‘사과­’라고만 적으면서 말장난이 될 수 있겠습니다.

 사과의 말
→ 뉘우치는 말
 한마디 사과도 없다
→ 한마디 뉘우침도 없다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잘못했습니다
→ 잘못을 뉘우칩니다

  수세미외면 ‘수세미외’이지 ‘絲瓜’가 아닙니다. 네 가지 학과면 ‘네 학과’라 하면 넉넉하지 ‘四科’라 적을 까닭이 없습니다. 불교에서 네 가지 깨달음을 ‘四果’라 한다는데, ‘네 깨달음’이나 ‘네 가지 앎’이라 해도 되지 싶어요. 불교나 천주교나 기독교나 모두 나라밖에서 들여왔는데, 나라밖에서 들여온 믿음이라 해도, 이 믿음을 담아내어 보여주는 낱말은 한국말로 빛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1.7.21.달/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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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은 노리아가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까마득히 모르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뉘우쳤다

“아들의 죽음에 대(對)해”는 “아들이 죽은 줄을”이나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로 손질합니다.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은 “모르는 줄”로 다듬습니다.


 사과(司果) : [역사] 조선 시대에, 오위(五衛@)에 둔 정육품의 군직(軍職)
 사과(四果) : [불교] 소승 불교에서 이르는 깨달음의 네 단계
 사과(四科)
  (1) 유학의 네 가지 학과
  (2) [종교] 천도교에서, 도를 닦는 네 과정
 사과(沙果/砂果) : 사과나무의 열매
   - 빨갛게 익은 사과 / 사과 궤짝 / 사과 세 접
 사과(赦過) : 잘못을 용서함
 사과(絲瓜) = 수세미외
 사과(謝過) :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 사과의 말 / 한마디 사과도 없다 /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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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1) 분분

대학진학을 위한 재수생 대책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요즈음이기에
《성내운-다시, 선생님께》(배영사,1977) 147쪽

 의견이 분분한 요즈음
→ 이야기가 많은 요즈음
→ 말이 많은 요즈음
→ 말이 시끄러운 요즈음
→ 생각이 갈팡질팡인 요즈음
→ 이러쿵저러쿵 떠들썩한 요즈음
→ 떠들썩한 요즈음
 …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온갖 이야기가 떠돌기’도 합니다.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이 말 저 말 쏟아지기’도 합니다. 마음이 사나울 만큼 ‘말잔치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다 다른 사람이 어느 한 가지 일을 놓고서 다 다른 풀이법을 내놓으니 ‘뒤죽박죽’입니다.

 소문이 분분하다
→ 소문이 떠들썩하다
→ 소문이 시끌벅적하다
 공론이 분분하다
→ 여러 말로 떠들썩하다
→ 텅 빈 말로 떠들썩하다
 의견이 분분하여 끝이 없다
→ 말이 많아 끝이 없다
→ 온갖 말이 많아 끝이 없다

  ‘忿憤’이라 적는들 “분하고 원통하게 여김”을 나타내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적는 한자말로는 제 뜻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芬芬’이라 적으면 “매우 향기롭다”를 잘 나타낼 만할까 궁금합니다. “장미꽃이 芬芬하다”라 말할 일이 아니라 “장미꽃이 매우 향긋하다”라 말해야 제 뜻을 잘 나타내겠지요.

  ‘紛紛’이라는 한자말은 세 가지 뜻이 있다 하는데, 둘째 뜻을 보면 “‘다양하다’, ‘어지럽다’로 순화”처럼 나옵니다. 한국사람이 쓸 한국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꽃잎이 분분하게 떨어지다”라 말해 보셔요. 누가 알아들을까요? “꽃잎이 어지럽게 떨어지다”라 말해야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4341.4.3.나무/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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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가려는 재수생 대책을 놓고 말이 많은 요즈음이기에

“대학진학(進學)을 위(爲)한 재수생 대책”은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재수생 대책”이나 “대학교에 가기를 바라는 재수생 대책”이나 “대학교에 가려는 재수생 대책”으로 다듬습니다. ‘의견(意見)’은 ‘이야기’나 ‘말’이나 ‘생각’으로 손봅니다.


 분분(忿憤) : 분하고 원통하게 여김
 분분(芬芬) : 매우 향기롭다 
 분분(紛紛)
  (1) 떠들썩하고 뒤숭숭하다
  (2) 여럿이 한데 뒤섞여 어수선하다. ‘다양하다’, ‘어지럽다’로 순화
   - 꽃잎이 분분하게 떨어지다 / 필기도구, 복사지 따위가 분분하게 놓여 있었다
  (3) 소문, 의견 따위가 많아 갈피를 잡을 수 없다

   - 소문이 분분하다 / 공론이 분분하다 / 의견이 분분하여 끝이 없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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