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747) 대로


대로는 모든 지리적, 정서적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지표들을 쓸어 버리고 생겨난 것이며, 그 특유의 유동성으로 인하여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오고가기 때문에 정체성의 지표가 먼지가 앉듯이 쌓일 틈이 없는 것이다

《김기찬-골목 안 풍경》(눈빛,2003) 8쪽


 대로는

→ 큰길은

→ 한길은

→ 넓은 길은

→ 커다란 길은

 …



  한국말사전은 인명사전이나 역사사전이 아닙니다. ‘大老·大輅·對盧’는 한국말사전에서 털어야 합니다. ‘대백로’를 뜻한다는 ‘大鷺’를 생각해 봅니다. ‘큰해오라기’나 ‘큰왜가리’로 고쳐써야 올바르리라 느낍니다. 정 ‘백로’라는 한자말 이름을 쓰고 싶다면 ‘큰백로’라 쓸 노릇입니다.


  사람들이 우러르는 어르신을 ‘大老’라 한다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크게 성을 내는 일을 ‘大怒’라 한다는데, “크게 성을 낸다”라 하면 넉넉합니다. ‘代勞’ 같은 한자말은 쓸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大路’는 그저 ‘큰길’일 뿐입니다. 한국말은 ‘큰길’이거나 ‘한길’입니다.


 대로로 나서다 → 큰길로 나서다

 대로를 활보하고 다니다 → 큰길을 휘젓고 다니다

 넓은 대로에는 → 넓고 큰 길에는

 민주주의로 가는 대로 → 민주주의로 가는 큰길


  우리는 큰길을 걷습니다. 때로는 ‘작은길’을 걷습니다. 자그마한 길은 ‘작은길’이지, ‘小路’가 아닙니다. 한국말사전에서 ‘小路’를 찾아보면, “‘작은 길’, ‘좁은 길’로 순화”하라고 나옵니다. ‘큰길’을 올림말로 삼아 한국말사전에 싣듯이, 앞으로는 ‘작은길’도 올림말로 삼아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합니다. 4337.1.4.해/4347.8.1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큰길은 이 땅과 우리 마음을 바로세우는 바탕이 되는 모든 길잡이를 쓸어 버리고 생겨났으며, 그 커다란 길 때문에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오고가므로, 우리 바탕이 될 길잡이는, 먼지가 앉듯이 쌓일 틈이 없다


“모든 지리적(地理的), 정서적(情緖的) 정체성(正體性)의 근간(根幹)이 되는 지표(指標)”는 “이 땅과 우리 마음을 바로세우는 바탕이 되는 모든 길잡이”로 다듬어 봅니다. “생겨난 것이며”는 “생겨났으며”로 손봅니다. “그 특유(特有)의 유동성(流動性)으로 인(因)하여”는 큰길이 넓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오가기에 수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글월은 “그 커다란 길 때문에”로 손봅니다. “정체성의 지표가”는 “우리 바탕이 될 길잡이는”으로 손질합니다. “쌓일 틈이 없는 것이다”는 “쌓일 틈이 없다”로 다듬습니다.



 대로(大老) : 세상에서 존경받는 어진 노인

 대로(大老) : [인명] ‘흥선 대원군’의 존호

 대로(大怒) : 크게 화를 냄

   - 아버님께서는 동생의 철없는 행동을 들으시고는 대로하셨다

 대로(大路)

  (1) = 큰길

   - 대로로 나서다 / 대로를 활보하고 다니다 / 넓은 대로에는

  (2) 어떤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활동의 큰 방향

   - 민주주의로 가는 대로

 대로(大輅) : [역사] = 어가(御駕)

 대로(大鷺) : [동물] = 대백로

 대로(代勞) : 남을 대신하여 수고함

 대로(對盧) : [역사] 고구려에서 왕을 도와 국정(國政)을 도맡아 하던 벼슬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316) 질문


할머니 질문에 티나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박채란-까매서 안 더워?》(파란자전거,2007) 44쪽


 할머니 질문에

→ 할머니가 물으니

→ 할머니가 묻는 말에

 …



  “할머니의 질문”이나 “할머니의 물음”처럼 쓰는 분이 퍽 많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이처럼 ‘-의’를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러나 ‘질문’이라는 한자말에서 걸립니다. 왜 이 한자말을 쓸까요?


  한국말사전 보기글을 보면 “질문이 있으신 분” 같은 글월이 보입니다. 이런 글월은 “궁금하신 분”으로 고쳐야 알맞습니다. 그래서, “궁금하신 분은 발표가 끝난 뒤에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처럼 통째로 다듬을 수 있어요. “질문 공세를 펴다”는 “마구 물어 보다”로 손보고, “질문을 던지다”는 “묻다”로 손보며, “질문에 답하다”는 “묻는 말에 대답하다”로 손봅니다.


 묻다

 여쭈다 / 여쭙다


  여느 자리에 쓰는 ‘묻다’를 쓰고, 손윗사람한테는 ‘여쭈다·여쭙다’를 씁니다. 한국말을 때와 곳에 알맞게 잘 살펴서 쓰기를 바랍니다. 4340.8.23.나무/4347.8.13.물.ㅎㄲㅅㄱ



 질문(質問) : 모르거나 의심나는 점을 물음

   - 질문 사항 / 질문을 받다 / 질문 공세를 펴다 / 질문을 던지다 /

     질문에 답하다 / 질문이 있으신 분은 발표가 끝난 후에 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719) 논자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논자들은 이에 대해, 세계 자본주의 위기의 필연적 산물, 국제 투기 자본의 장난질, 미국의 음모, 재벌 중심의 천민적 경제 구조의 허약성, 정부의 무능력 등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우리는 부패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삼인,2000) 17쪽


 논자들은 … 그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 사람들은 … 그 탓을 들기도 한다

→ 사람들은 … 그 탓을 꼽기도 한다

→ 사람들은 … 그 탓을 말하기도 한다

 …



  ‘논자’란 무엇일까요? ‘論 + 者’입니다.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 한자말을 쓰는 자리를 살핀다면, 그냥 ‘사람’보다는 ‘지식인’으로 손질할 때에 한결 잘 어울릴는지 모릅니다.


 논자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다

→ 사람에 따라 생각을 달리하다

→ 사람마다 생각을 달리하다

→ 저마다 생각을 달리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논자의 지적이 있었지만

→ 이 문제를 놓고 많은 사람이 말했지만

→ 이 일을 놓고 많은 사람이 꼬집었지만


  사람은 누구나 말을 합니다. 지식인도 말을 하고 시골 흙일꾼도 말을 합니다. 벙어리라면 말을 안 한다고도 할 테지만, 벙어리는 손으로 글을 쓰거나 손짓으로 손말을 합니다. 누구라도 말을 합니다. 말을 안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논자’는 그저 ‘사람’을 가리킬 뿐입니다. 우리는 가장 쉬우면서 알맞고 바른 한국말 ‘사람’을 쓰면 됩니다. 4336.10.31.쇠/4347.8.1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사람들은 이를 놓고, 세계 자본주의 위기 때문이고, 국제 투기 자본이 장난했으며, 미국한테 꿍꿍이가 있고, 재벌 중심 천민 경제 뼈대가 허술하며, 정부가 제구실을 못한 탓을 들기도 한다


“이에 대(對)해”는 “이를”이나 “이를 놓고”로 다듬고, “자본주의 위기의 필연적(必然的) 산물(産物)”은 “자본주의 위기 때문이고”로 다듬으며, “국제 투기 자본의 장난질”은 “국제 투기 자본이 장난했으며”로 다듬습니다. “미국의 음모(陰謀)”는 “미국한테 꿍꿍이가 있고”나 “미국이 꿍꿍이를 꾀하고”로 손보고, “재벌 중심의 천민적(賤民的) 경제 구조(構造)의 허약성(虛弱性)”은 “재벌 중심 천민 경제 얼거리가 허술하며”나 “재벌 중심 경제 뼈대가 허술하며”로 손보며, “정부의 무능력(無能力) 등(等)을”은 “제구실을 못하는 정부 들을”이나 “정부가 제구실을 못한 탓을”로 손봅니다. “그 원인(原因)으로 지적(指摘)하기도 한다”는 “탓을 들기도 한다”로 손질합니다.



 논자(論者) : 이론이나 의견을 내세워 말하는 사람

   - 논자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다 /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논자의 지적이 있었지만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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