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 도토리 어린이 도감 2
도토리 기획, 권혁도 그림, 김진일 외 감수 / 보리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9



풀벌레 한 마리도 우리 이웃

―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

 도토리 기획

 권혁도 그림

 보리 펴냄, 2002.1.4.



  온누리에 얼마나 많은 벌레가 살아가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온갖 벌레는 가짓수가 아주 많습니다. 크기가 저마다 다릅니다. 숫자는 지구별 사람 숫자하고 댈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벌레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벌레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한편, 저마다 일이 아주 많아서 벌레를 들여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만날 만한 벌레가 몇 가지 없기도 합니다. 흙바닥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는데다가, 숲을 밀고 들을 없애고 냇바닥에도 시멘트를 씌우거든요. 오늘날 문명 사회는 개미도 거미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문명 사회는 어떠한 벌레도 깃들지 못하도록 꽁꽁 틀어막습니다.



.. 농약을 치며 농사를 짓기 전에는 논이나 시냇물에 물방개나 물장군 같은 곤충이 무척 흔했다. 산에 길을 내고 큰 음식점이 들어서기 전에는 산골짜기 물 속에도 날도래가 살고 물가에는 반딧물이가 날아다녔다 ..  (19쪽)




  꽤 지난 옛일이 되었는데, 스님 한 분이 도룡뇽을 살리려는 마음을 담아 고속철도 공사를 막으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아주 많은 사람들은 ‘그깟 도룡뇽’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새 아주 많은 사람들은 ‘사람 아닌 목숨’한테는 ‘그깟 것’이라 말합니다. 새롭게 길을 낸다면서 나무를 아무렇지 않게 베지요. 새롭게 아파트를 짓는다면서 숲과 들을 아무렇게나 무너뜨리지요.


  참 웃기는 노릇이라 할 텐데, 옛날 유물이나 유적이 나오면 공사를 멈춥니다. 멀쩡히 있던 아름다운 숲이나 들은 무너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사슴벌레나 하늘소를 지키려고 고속도로 공사를 안 하는 일이 없습니다. 감나무나 은행나무 한 그루를 지키려고 건물을 안 짓는 일이 없습니다. 개구리와 맹꽁이와 두꺼비를 살리려고 도시를 안 넓히는 일이 없습니다. 꾀꼬리와 소쩍새와 제비를 헤아려서 도시를 줄이거나 아파트를 없애려고 하는 일이 없습니다.



.. 하루살이는 알이나 애벌레 때에는 물 속에서 살다가 어른벌레가 되면 물 밖으로 나온다. 애벌레는 물 속에 떨어진 썩은 나뭇조각이나 물풀을 먹고 산다. 애벌레가 맑은 물에서 사는 하루살이도 있고 더러운 물에서 사는 하루살이도 있다. 그래서 어떤 하루살이 애벌레가 사는지를 보고, 물이 깨끗한지 더러운지 가늠할 수 있다 ..  (50쪽)





  한두 대통령 때문에 4대강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꽤 많은 이 나라 여느 사람들이 이 일에 손을 들어주었기에 4대강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4대강사업은 온 나라 물줄기를 끊고 망가뜨리는 짓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적잖은 한국사람한테는 이런 토목공사가 돈벌이가 되고 일자리가 됩니다. 까부수는 일자리와 돈벌이 때문에 참말 한국에서는 까부수는 일만 생깁니다. 토목건설이 없다면 아마 도시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일도 없고 돈도 못 벌 테지요. 그리고, 직업군인 제도가 없으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도 없고 돈도 못 법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군대는 평화를 지켜 주지 않습니다. 군대가 전쟁을 막지 못하기도 합니다만, 군대도 ‘직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모로 아리송한 사회요 나라이며 정치라 할 만하지요. 일자리와 돈벌이를 바란다면, 숲과 들을 아름답게 지키면서 일자리를 마련하고 돈을 벌어야지요. 토목건설을 벌이거나 군부대를 거느리려면 누군가 돈을 내야 합니다. 돈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땅에서 샘솟을까요? 숲과 들을 지키면, 우리는 숲과 들에서 먹을거리를 넉넉하게 얻습니다. 먹을거리를 넉넉하게 해마다 꾸준하게 얻으면, 이동안 일자리가 있고 돈이 되지요. 너른 숲과 들에서 얻는 먹을거리를 혼자 못 먹으니 저잣거리에 내다 팔면 돈이 돼요.


  나라에서 4대강사업을 꾀한 까닭은, 도시에서는 더 토목건설로 돈이 될 만한 길이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 발전소와 송전탑을 자꾸 밀어붙이는 까닭도 오직 하나입니다. 자꾸 새로운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박아야 일거리가 생기고 돈벌이가 나옵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 한 가지뿐입니다.


  생각을 넓히지 않습니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삶을 지으려 하지 않습니다. 경제발전과 돈만 헤아리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수많은 목숨들이 애꿎게 죽습니다. 이러면서 사람살이도 메마르지요. 이웃 풀벌레와 숲짐승을 헤아리지 않는 마음씨로는, 같은 사람끼리도 서로 돕거나 아끼는 길하고 어긋나요. 사람살이에서도 따돌림과 괴롭힘이 흔히 벌어집니다. 이웃을 밟고 올라서려는 사람이 득시글거립니다. 동무를 속이거나 등치는 짓도 잦습니다.



.. 게아재비가 물풀 사이에 가만히 있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먹이가 다가오면 낫처럼 생긴 날카로운 앞다리로 재빠르게 잡는다. 작은 물고기나 올챙이나 장구벌레같아 살아 있는 물벌레를 잡아서 침처럼 뾰족한 입을 찔러서 즙을 빨아먹는다. 봄이 오면 물 밑 진흙 속이나 썩은 나무 틈에 알을 낳는다 ..  (98쪽)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보리,2002)을 읽습니다. 이 책이 나올 무렵이나 요즈음이나 거의 비슷한데,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땅 풀벌레와 물벌레와 숲벌레를 살펴서 하나하나 그림으로 담아 엮은 책은 드뭅니다. 경제와 정치와 사회와 교육이 이러저러하다는 목소리는 많지만, 정작 한국사람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어떤 빛이 있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곤충도감》은 어떤 책일까요? 벌레 한 마리를 이웃으로 여겨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마음을 담는 책입니다. 《나무도감》은 어떤 책일까요? 나무 한 그루를 동무로 삼아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넋을 싣는 책입니다.


  벌레를 지식이나 정보로 살피려는 책은 도감이 아닙니다. 아니, 벌레 한 마리를 살펴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붙여 책으로 엮는 사람이라면, 벌레 한 마리를 이웃이나 동무로 느낄 노릇입니다. 벌레 한 마리를 살피는 일은 과학도 생물학도 아닙니다. 삶입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할 이웃과 동무를 살피면서 사귀듯이 벌레 한 마리를 만나고 살피며 사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림 한 장을 그리고 한살이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 삼을 많이 심어 기를 때는 마을 근처에도 삼하늘소가 흔했다. 지금은 삼을 기르지 않아서 마을에서는 삼하늘소를 볼 수가 없다. 지금도 산 속에 집이 있던 자리는 어쩌다 삼이 남아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삼하늘소를 볼 수 있다. 삼하늘소는 봄부터 가을까지 나타나는데 6월에 가장 많다 ..  (196쪽)





  나는 개똥벌레와 이웃으로 지내고 싶습니다. 개똥벌레 이야기가 책 하나로, 도감 하나로, 영화 하나로 나올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섣불리 시멘트를 흙땅에 들이붓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깊은 골짜기와 논도랑에 시멘트를 퍼붓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나는 사마귀하고 여치랑 이웃으로 지내고 싶습니다. 숲과 들이 제 빛을 지키면서 아름답게 우거지기를 바랍니다. 경쟁과 돈과 군대로 버티는 사회가 아니라, 아름다운 꿈과 사랑으로 서로 새롭게 짓는 하루로 밝히는 마을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 미사일을 퍼붓는 사람하고, 풀숲에 농약을 뿌리는 사람은 서로 똑같은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새로운 전쟁무기를 만드는 사람하고, 발전소와 고속도로와 송전탑 때문에 숲과 들을 밀어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은 서로 똑같은 넋이라고 느낍니다.


  이제 허튼 짓은 그만둘 때가 아닌가요. 식량자급율 100퍼센트는커녕 30퍼센트도 안 되는 이 나라에서 언제까지 도시를 더 늘리고, 언제까지 시골을 시멘트덩이로 만들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여름과 가을에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나라 어디에서든 개똥벌레가 반짝반짝 밝은 춤을 출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나라 어디에서나 나비와 잠자리가 날며, 제비와 꾀꼬리가 노래하는 삶터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는 이제 줄여야 합니다. 도시는 몸집을 줄이고, 일자리를 바란다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야 합니다. 내 이웃이 누구인지 제대로 바라보아야 하고, 내 동무가 어떻게 지내는지 옳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곤충도감》은 참 멋진 책입니다. 다만, 처음 나온 지 열 해가 훨씬 지난 만큼, ‘어린이한테 읽히려는 책’을 넘어서 ‘어른 누구나 읽을 책’이 되도록 더 많은 풀벌레와 물벌레와 숲벌레 이야기를 집어넣는 고침판을 선보일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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