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깃든 아름다운 힘


  《지구를 다 먹어 버린 날》(뜨인돌어린이,2011)이라는 그림책을 읽다가 한참 생각에 잠깁니다. 글은 얼마 없으나 책에 담은 이야기로 살피면 예닐곱 살 아이보다는 여덟아홉 살 아이, 또는 열 살 즈음 되는 아이가 이 그림책을 잘 헤아릴 만하리라 느낍니다. 이야기를 쉽게 잘 풀었고, 그림 솜씨도 여러모로 재미있구나 싶어요. 아주 짤막한 글 몇 줄과 그림 몇 가지로 두툼한 인문책으로 밝히는 이야기를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알려주는구나 싶어요. 참으로 멋스럽습니다.

  두툼한 인문책은 온갖 자료를 들면서 두툼한 쪽수가 됩니다. 짤막한 그림책은 굳이 온갖 자료를 들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나누자’는 생각으로 단출하게 책을 엮는다고 할 만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할 적에, 이런 자료와 저런 보기를 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자료와 보기가 있어야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밥을 먹으면서 ‘밥이 맛있다’고 말할 적에, 이런 까닭과 저런 대목을 들추어야 밥이 맛있구나 하고 깨닫거나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오직 한 마디 “아버지, 밥이 맛있어요!” 하고 한 마디만 하더라도 마음 가득 기쁨과 즐거움이 샘솟습니다.

  그림책 《지구를 다 먹어 버린 날》은 사람(어른)들이 지구를 다 잡아서 먹어치우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아주 간추려서 짤막하게 보여줍니다. 그뿐입니다. 더도 덜도 없습니다. 지구를 다 잡아서 먹어치우면 어찌 될까요? 맑은 물과 바람과 햇볕을 모두 먹어치우면 어찌 될까요?

  과학 논증이나 실험을 해서 보여주지 않아도 됩니다. 역사 자료나 인문 지식을 펼친다거나, 이런 과학자와 저런 지식인 말을 옮겨서 덧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만 하면 돼요. 지구를 다 잡아서 먹어치우면, 어른도 아이도 모두 죽어요. 지구를 살리고 사랑하려 하면 우리 모두 살아요.

  인문학을 살리고 인문책을 읽히는 일이 ‘뜻없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인문학을 살리거나 인문책을 읽히려면, 무엇보다 참다운 그림책을 우리 스스로 빚어내고 즐기면서 삭힐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가장 쉽고 똑똑하며 올바른 슬기를 밝히는 그림책을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고 누리면서, 삶빛을 밝혀야지 싶습니다.

  학문으로 파고드는 지식이 없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다만, 늘 한 가지입니다. 학문으로 파고드는 지식이 있어야 하더라도, 쉬우면서 또렷하고 올바른 슬기로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할 만한 지식이 되어야 합니다.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말로 감싸는 인문학이 아니라, ‘학교 지식’이 없는 모든 수수한 사람들이 환하게 알아차리고 밝게 알아들을 수 있는 빛이 될 때에 올바른 인문 지식이요 인문학이며 인문책이 되리라 느낍니다.

  그림책에는 아름다운 힘이 깃듭니다. 누구나 쉽게 읽으면서 쉽게 깨닫도록 이끕니다. 그림책은 누구나 홀가분하게 읽으면서 재빨리 고갱이를 알아보도록 돕습니다.

  자, 어떻게 하면 지구별을 살릴까요? 숲이 있어야지요. 도시를 줄여야지요. 숲은 어떻게 늘리고 도시는 어떻게 줄일까요? 나무가 자랄 흙땅을 넓히고, 아스팔트 찻길과 자동차와 아파트를 줄여야지요. 시골에서 스스로 흙을 사랑하면서 집숲을 이루도록 꾀하고,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짓는 길로 차근차근 나아가야지요. 4347.7.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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