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입는 옷에서 풍기는 세제 냄새



  이웃한테서 옷을 물려입을 적에는 늘 세제 냄새를 맡는다. 세제 냄새를 빼려면 며칠쯤 옷가지를 해바라기 시킨다. 그러고 나서 물에 담가 하루를 불리고서 이튿날 복복 비벼서 손빨래를 한다. 잘 빨고 헹구어 물기를 짠 옷가지를 마당에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킨다. 이렇게 하면 세제 냄새가 많이 가신다. 그렇지만 다 가시지는 않는다. 두 번 세 번 네 번쯤 빨래를 하고 해바라기를 시키면, 어느새 세제 냄새는 거의 사라진다.


  그런데, 이웃한테서 물려입는 옷에서 나는 냄새는 세제 냄새뿐이 아니다. 그러면 무슨 냄새일까? 수돗물 냄새이다. 세제와 수돗물이 섞인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곰곰이 돌아본다. 내가 제금을 나기 앞서, 우리 어버이와 살아가는 동안 우리 집에서도 빨래기계와 세제를 썼다. 우리 어머니(아이들 할머니)는 오늘날에도 세제를 쓰신다.


  빨래를 마친 옷에서 보송보송한 햇볕내음과 바람내음이 묻어나자면, 화학세제가 아닌 비누를 써야 한다. 그리고, 졸졸 흐르는 맑은 물을 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햇볕을 쬐어야 하고, 풀내음과 흙내음을 먹어야 한다. 이때에 빨래가 가장 싱그러우면서 맑은 빛을 띤다.


  요즈음은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산다. 도시에서도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에 산다. 도시에서 빨래를 할 적에 수돗물 아니고는 쓸 물이 없다. 게다가 햇볕에 빨래를 말리기란 얼마나 힘든가. 도시에서 지내는 이웃은 세제와 수돗물을 쓸밖에 없고, 옷가지를 햇볕에 말리는 일은 꿈조차 꾸기 어렵다. 도시에서 빨래를 널어서 말리더라도, 둘레에 흙이나 풀이나 나무가 얼마나 있는가. 나뭇가지에 줄을 잇고 바지랑대를 받쳐서 바람에 한들한들 옷가지를 말릴 만한 보금자리는 도시에 몇 군데쯤 있을까.


  선물받은 ‘아이들이 물려받아 입을 옷’ 가운데 양말을 스무 켤레 즈음 빨아서 마당에 너는 동안 곰곰이 생각한다. 옷을 옷답게 건사할 만한 터전에서 살아야 몸을 몸답게 건사할 수 있을 테고, 마음을 한결 맑으면서 밝게 돌볼 만하겠지. 옷과 밥과 집은 동떨어지지 않는다. 늘 함께 흐른다. 지구별 모든 이웃이 맑은 물과 볕과 바람과 풀과 숲을 누릴 수 있기를 꿈꾼다. 4347.6.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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