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눈과 못 보는 눈


  바깥마실을 하느라 여러 날 집을 비울 적에는 온 집안을 치우려고 한다. 남은 밥이나 국이 있는지 살피기도 한다. 밥상에 아무것도 없도록 한다. 그런데, 집일을 도맡다 보니 나는 내가 건드린 것만 볼 뿐, 한식구가 건드린 것은 미처 못 보기 일쑤이다. 어젯밤에 쌀을 씻어서 불릴 때까지 못 알아채다가, 아침에 다시마를 불리려고 국냄비를 열다가, 아차, 곁님이 끓인 누룽지가 곰팡이꽃으로 가득한 모습을 본다.

  어째 못 봤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내가 누룽지국을 끓이지 않았고 먹지 않았으니 이 냄비를 보려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내가 누룽지국을 끓이지 않았으니, 가스불판에 올려놓은 냄비가 다 비었으리라 여기기만 했지, 그래도 다시금 뚜껑을 열어서 살피려 하지 않았구나 싶다.

  나흘 동안 바깥잠을 자고 돌아온 첫 아침이다. 큰아이는 여덟 시 반 즈음 일어난다. 작은아이는 아홉 시가 넘도록 잔다. 오늘 하루는 천천히 가자.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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