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케익 먹기, 눈 먹기



  나는 1995년 11월 6일에 군대에 갔습니다. 나는 오른눈이 나쁘고 코가 나빠서 현역군대면제 대상이었지만, 내 앞뒤로 ‘미리 면제를 받을’ 누군가 있은 탓에, 오른눈으로는 4급 현역을 받고 코로는 3급 현역을 받았습니다.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기 앞서 내 눈은 ‘1.5(왼눈) + 0.1(오른눈)’이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마땅히 면제가 나오리라 여겼는데, 신체검사를 한 군의관은 30분 동안 ‘눈 검사 기계’에 내 눈을 들이대고 나서 ‘1.0 + 0.1’로 바꾸었습니다(다른 사람은 눈 검사를 1분만에 끝냈으나 저한테만 30분 동안 했습니다). 면제를 안 주려는 숫자였어요. 내 코는 수술을 해도 만성축농증을 고치지 못한다 했고, 그무렵 늘 병원에 다녔으나 이 또한 군의관은 5급이 아닌 3급을 주었습니다. 이때 군의관은 나한테 ‘7급(재검 자격)을 받아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가지고 오면 5급(면제)을 주겠다’고 몰래 얘기했습니다만, 나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려면 그때에 10만 원씩 든다고 했는데, 도무지 이만 한 돈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진단서를 떼어 오면 면제를 주겠다는 말이란, 진단서가 없어도 면제를 주어야 마땅하다는 뜻이니까요. 덧붙여, 그 자리에서 이녁한테 10만 원을 주면 병원에 다녀오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진단서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1995년 11월에 군대에 들어가서도 줄을 잘못 섰는지, 논산에서 18시간을 기차를 타고 이리저리 돌다가 성북역에서 한 차례 쉬면서 오줌을 누었고, 다시 기차를 달려 춘천역에 내렸습니다. 그러고는 춘천에서 군대 짐차를 타고 두 시간 달렸고, 배를 타고 소양강을 가로질렀으며, 다시 군대 짐차를 타고 저녁 내내 달렸습니다. 눈이 워낙 많이 내려서 더디게 가야 했고, 춘천에서 내린 지 이레만에 드디어 내 ‘자대(복무할 부대)’에 닿았습니다. 이동안 밤에 잠을 자던 곳에서 언제나 눈쓸기를 했는데, 태어나서 이토록 많은 눈은 처음 보았습니다. 자대에 닿으니, 곧 지오피(비무장지대)에 들어간다면서 마지막 훈련이 한창이었습니다. 자대에 온 지 하루나 이틀밖에 안 된 이등병은 훈련에서 면제라 했지만, 이때에도 어떤 까닭에서인지 더블백을 풀지도 않았으나 소총부터 받고 겨울훈련(혹한기훈련)을 뛰었습니다.


  제가 배치를 받은 중대를 거느리는 중대장은 ‘똘아이’라고 했습니다. 제풀에 미쳐서 날뛰면 대대장이나 연대장 앞에서도 삿대질을 하는 놈이었습니다. 연대장이 ‘너무 추우니 훈련을 멈추고 어서 천막을 치고 병사를 재우라’고 명령했지만, 중대장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일 때문에 혼자 창피하고 짜증이 난다면서 밤샘걷기를 했어요. 18시간 동안 강원도 양구 멧골짜기를 쉬지 않고 오줌도 누지 못하는 채 완전군장을 메고 걷기만 했습니다. 먹지도 쉬지도 오줌을 누지도 못하는 채 또 ‘18’(왜 18이라는 숫자가 되풀이되었을까요? 나중에 알아차릴 날이 오겠지요?)시간을 걷다가 문득 눈을 주워서 먹자고 생각했습니다. 옛날에 물이 없으면 하얀 눈을 녹여서 마셨다고 했으니, 물을 마시는 셈치고 눈을 먹자고 했어요.


  병장을 단 고참이 ‘눈을 먹으려면 조금만 먹어야 한다’고, 많이 먹으면 배앓이를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듣지 않기로 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팠거든요. 둘레에 가득 쌓인 이 하얀 눈을 눈이 아닌 ‘먹을 것’으로, 먹을 것 가운데 ‘케익’으로 그리기로 하면서 먹었어요(나는 배앓이를 안 했습니다).


  나는 군대에 가기 앞서까지 케익을 못 먹었습니다. 생크림조차 못 먹었습니다. 빵을 먹어도 크림빵은 안 먹고 단팥빵만 먹었어요. 생크림이나 케익을 먹으면 늘 배앓이를 하거나 물똥을 여러 날 누었습니다. 생일잔치를 할 적에 어릴 적에 크림케익을 꼭 한 번 먹고 크게 배앓이를 해서, 그 뒤로 늘 롤케익만 먹었어요. 그런데 왜 크림케익이 떠올라, 크림케익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눈을 집어먹었을까요?


  비무장지대에 들어가기 앞서 짧게 휴가를 받았습니다. 닷새 말미로 나온 휴가에서 동무들이 “뭐 먹고 싶니? 고기 먹고 싶지? 고깃집 가자?” 하고 말했지만, 나는 “아니, 케익.”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동무들은 깔깔 웃으면서 나를 고깃집으로 데려갑니다. 동무 하나가 밖에 나가서 생크림케익을 사 주었습니다. 1초쯤? 망설이다가 세겹살 고깃점과 케익을 나란히 먹었습니다. 케익을 먼저 혼자 다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동무들은 케익을 하나 더 사 주었고, 또 혼자서 고깃집에서 케익을 다 먹었습니다.


  군대에서 사회로 돌아온 지 어느덧 스무 해 가까이 됩니다. 이제 나는 생크림케익을 먹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먹은 눈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고깃집에서 먹은 케익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느 때에 그냥 물 한 잔을 마실 적하고, 물 한 잔에 이마를 대고 조곤조곤 사랑스러운 말을 속삭인 뒤 마실 적하고, 내 몸은 어떻게 맞아들일까요.


  군대를 마친 뒤 내 눈은 더 나빠졌으나, 내 코는 나아졌습니다. 깊디깊은 멧골짝에서 스물여섯 달을 살았기 때문일까요? 아마 그러하리라 느낍니다.


  좋은 것은 무엇이고 나쁜 것은 무엇일까요. 좋은 길은 무엇이고 나쁜 길은 무엇일까요. 1995년 3월에 신체검사를 받고 11월에 군대에 가기로 했기에, 깊은 멧골에서 스물여섯 달을 오롯이 보낼 수 있었고, 이때 기운이 바탕이 되어 나는 오늘 깊은 시골에서 네 식구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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