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7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읽으며

― yesterday

 박신흥 사진

 공간 루 펴냄,2012./비매품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읽습니다. 오늘 찍은 사진을 오늘 읽을 수도 있으나, 오늘 찍고 나서 곧바로 사진을 읽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곳에서 찍은 사진조차, 디지털사진기 화면에 뜰 적에는 적어도 1초는 지나야 하고, 1초가 지나면 언제나 ‘어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사진찍기를 으레 ‘기록’으로 여기는데, 사진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보셔요. 오늘 이야기를 글로 쓴다 하더라도 언제나 ‘지나간 때 이야기’입니다. 오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도 언제나 ‘지나간 때 모습’입니다. 바로바로 돌아보지 못해요. 그때그때 지나가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박신흥 님이 찍은 사진으로 엮은 《yesterday》(공간 루,2012)는 책이름부터 아예 ‘어제’라고 밝힙니다. 참말 이 사진책에 깃든 모습은 우리가 ‘어제’ 살았던 모습입니다.





  다만, 어제라고 할 때에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어제가 되지 않아요. 쉰 살인 사람한테 어제하고 열 살인 사람한테 어제는 다릅니다. 일흔 살인 사람한테 어제하고 마흔 살인 사람한테 어제는 달라요.


  누군가한테는 스무 해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합니다. 누군가한테는 하루나 이틀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합니다. 누군가한테는 마흔 해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하지요. 누군가한테는 달포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해요.


  나는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놀도록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나들이를 다니고, 아이들과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저잣마실을 다니기도 합니다. 오월을 맞이해서 들딸기 따러 소쿠리를 들고 아이들하고 숲을 헤칩니다. 비 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집에서 놉니다. 밤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달콤하게 꿈나라로 날아갑니다. 언제나 오늘은 ‘오늘’ 누리는데, 오늘 이곳에서 ‘오늘’을 누리고 보면, 모든 이야기는 새삼스레 어제로 바뀝니다. 앞날은 언제나 오늘이 되고, 오늘은 다시 어제가 되어요.


  흐르는 삶입니다. 지나가는 삶입니다. 차근차근 거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기록을 하기 때문에 뜻있지 않습니다. 어느 한때를 잘 담은 사진이기 때문에 값있지 않습니다. 1975년 어느 날 찍은 사진을 2012년에 선보일 수 있어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2012년에 찍은 사진을 앞으로 2049년에 선보여야 대단하지 않아요. 이야기가 있으면 ‘하루 앞서’ 찍은 사진을 꾸려서 오늘 사진책을 선보일 수 있어요. 이야기가 아름다우면 ‘달포 앞서’ 찍은 사진을 엮어서 오늘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읽을 만한 까닭이란 오직 하나입니다. 이야기가 있으면 사진을 읽을 만합니다. 글(문학)을 왜 읽을까요? 이름난 작가가 썼으니 읽는 글일까요? 이야기를 살피지 않고 작가 이름에 따라 책을 장만해서 읽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림을 왜 들여다볼까요? 비싼값에 사고팔리는 작품이라서 그림을 들여다보나요?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림을 말할 일이 없어요. 예술이거나 문화이기 때문에 그림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사진을 읽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기록이 되기에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지나간 어느 한때 모습을 남겼기에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마음에 아로새긴 애틋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조곤조곤 들려주기에 사진을 읽습니다. 마음에 깊이 새긴 살가운 이야기를 노래하듯이 글로 썼기에 문학을 읽습니다. 마음에 넓게 드리운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꿈꾸듯이 그림으로 그렸기에 빙그레 웃으며 반깁니다.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읽으며 생각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까닭은 오늘 어떤 모습 하나를 앞으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는 까닭은 앞으로 아이들이 어른이 된 뒤 저희 어릴 적 모습을 남겨 주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뛰놀며 활짝 웃고 좋았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즐거우며 좋은 기운이 시나브로 사랑으로 피어나기에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립니다. 노래하듯이 사진을 찍고 춤추듯이 글을 쓰며 밥을 짓듯이 그림을 그려요.


  박신흥 님은 꽤 지나간 예전에 찍은 사진을 ‘오늘’ 선보이면서 어떤 ‘어제’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박신흥 님이 마음에 담은 ‘어제’는 이녁 삶에 어떤 이야기로 드리운 노래일까요.


  엄청나다 싶은 모습이기에 오늘 돌아보는 어제가 아닙니다. 동생을 업고 노는 아이 모습은 수수합니다. 나무를 타거나 소꿉을 하거나 책을 들여다보는 아이 모습은 수수합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며 빨래를 하는 모습은 수수합니다. 그저 수수하지요. 다만, 수수한 삶자락 하나에 사뿐사뿐 이야기를 실으면 따사롭습니다. 수수한 삶빛에 살몃살몃 이야기를 담으면 살갑습니다. 이야기가 빛으로 번지면서 곱게 퍼집니다. 이야기가 빛이 되어 촉촉히 드리웁니다. 4347.5.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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